승자 효과와 패자 효과: 뇌과학이 밝힌 투자 심리의 정체

승자 효과와 패자 효과: 뇌과학이 밝힌 투자 심리의 정체

0

한 번의 투자 실패로 자신감이 무너진 적 있을 거다. 반대로 몇 번 연달아 맞히고 나서, 평소라면 안 했을 무리한 베팅에 손을 댄 적도 있을 거다. 이걸 그냥 멘탈 문제라고 넘기기 쉽다. 그런데 최근 신경과학은 다른 답을 내놓는다. 우리 뇌 속 특정 회로가 승패 경험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음 행동을 바꾼다는 거다. 승자 효과와 패자 효과, 둘 다 뇌가 만든다.

승자 효과와 패자 효과를 만드는 것은 단순한 멘탈 문제가 아니다.
승자 효과와 패자 효과를 만드는 것은 단순한 멘탈 문제가 아니다.

생쥐 튜브 실험이 드러낸 보이지 않는 서열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대학(OIST)의 제프리 위켄스 교수 연구팀이 수컷 생쥐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투명한 튜브 양쪽 끝에 생쥐 둘을 넣고 마주보게 한 뒤, 누가 먼저 물러서는지 본 거다. ‘우세 튜브 실험’이라 부른다. 며칠을 반복하자 일관된 승패 패턴이 나왔고, 그걸로 각 생쥐의 서열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핵심 발견이 하나 있다. 서열을 가른 건 덩치가 아니라 경험이었다. 위켄스 교수의 말이 인상적이다. 동물계에서 우세한 쪽은 크기 같은 신체 조건 때문이라고 보기 쉽지만, 실제로는 이전 경험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는 거다. 누가 더 센가가 아니라, 누가 이겨봤는가가 다음을 정한다. 이 연구는 iScience에 정식 게재01842-5)됐다.

승자 효과와 패자 효과는 서로 다른 회로다

논문 주저자 마오팅 쉬 박사가 찾아낸 두 현상은 이렇다.

  • 승자 효과. 이겨본 생쥐는 다음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 번의 승리가 다음 승리 확률을 높이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 패자 효과. 져본 생쥐는 이후에도 덜 나섰다. 심지어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까지 소극적이었다.

진짜 놀라운 건 따로 있다. 이 둘이 서로 다른 뇌 회로로 조절된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기저핵의 배내측 선조체 안에 있는 ‘콜린성 인터뉴런’이라는 세포군에 주목했다. 이 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자 패자 효과는 사라졌는데, 승자 효과는 그대로였다. 뇌가 승리와 패배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고 기억한다는 뜻이다. 승리는 보상 기반 학습에 가깝고, 패배는 상황을 살피는 유연한 의사결정 회로에 새겨진다.

기저핵은 보통 파킨슨병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행동 유연성을 조절하는 사령탑이다.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적응하고 무슨 결정을 내릴지를 정한다. 콜린성 인터뉴런이 활성화되면 과거의 패배를 근거로 더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반대로 이 회로가 눌리면, 실패한 적이 있어도 다시 과감하게 나선다.

승자 효과의 함정: 뇌가 만드는 과신

이게 투자랑 무슨 상관이냐고. 사실 아주 직접적이다. 투자는 승패가 끝없이 반복되는 경쟁이고, 투자자는 매번 그 안에서 자기 위치를 다시 잡는다.

연속된 성공은 뇌의 보상 회로를 강하게 켠다. 자신감이 오르는 건 좋은데, 동시에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무리한 레버리지를 쓰게 만든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많은 투자자가 보여준 모습이 딱 그랬다. 흥미롭게도 이건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신경학적 변화다. 투자자 기억을 분석한 연구를 보면, 사람들은 과거 수익을 실제보다 좋게 기억하고 손실보다 이익을 더 잘 떠올린다. 이 긍정 편향이 과신과 잦은 매매로 이어진다. 몇 번 맞힌 사람일수록 더 크게, 더 짧게, 더 공격적으로 베팅하기 시작하는 이유다.

패자 효과의 그림자: 기회를 못 보는 뇌

반대쪽도 있다. 한 번의 큰 손실은 콜린성 인터뉴런을 켜서 극도로 보수적인 태도를 만든다. 2020년 코로나 폭락에서 물린 투자자 상당수가 이후 역사적 상승장을 관망만 하다 놓친 게 대표적이다.

한 중견 투자자를 떠올려보자.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자산의 70%를 잃었다. 그 뒤 15년간 주식을 완전히 외면하고 정기예금과 채권만 들었다. 그사이 시장은 몇 번이나 새 고점을 갈아치웠지만, 그의 포트폴리오는 인플레이션조차 따라가지 못했다. 이게 패자 효과가 남긴 신경학적 각인이다. 손실 자체보다, 손실이 뇌에 새긴 회피 회로가 더 비쌌다. 비슷한 실수의 목록은 돈을 갉아먹는 7가지 투자 실수에서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기는 건 유연한 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마오팅 쉬 박사는 인간의 사회적 역학이 훨씬 복잡하다고 짚는다. 한 사람이 집에선 가장이지만 회사에선 서열 맨 아래일 수 있고, 지배 행동은 상황마다 바뀐다. 투자도 똑같다. 잘하는 투자자는 상황에 따라 전략을 유연하게 바꾼다. 강세장엔 공격적으로, 약세장엔 방어적으로, 불확실할 땐 관망한다. 경험이 많아서가 아니라, 행동 유연성 회로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이거다. 감정과 경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성과를 가른다. 승리와 패배는 그냥 사건이 아니라 회로를 바꾸는 경험이다. 그래서 자기 감정을 계속 모니터링해야 한다. 지금 과신하고 있나, 아니면 지나치게 위축됐나. 이건 추상적인 잔소리가 아니라 신경과학이 뒷받침하는 전략이다. 같은 맥락에서 감정을 이기는 투자의 10가지 황금률이나, 확률이 아닌 결과에 휘둘리지 말라는 투자에서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도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이 연구는 생쥐로 했지만, 인간과 생쥐의 뇌 구조는 꽤 닮았다. 특히 기저핵 회로는 진화적으로 잘 보존돼 있어서, 동물 실험의 통찰을 사람에게 적용할 근거가 충분하다. 우리 행동의 복잡함 아래엔 이렇게 오래된 기본 메커니즘이 깔려 있다.

오늘 점검: 나는 지금 어떤 회로에 있나

투자는 숫자와 차트의 게임 같지만, 실은 신경회로와 감정의 게임이다. 승자 효과와 패자 효과는 우리 모두의 뇌에서 지금도 돌아간다. 이걸 모르면 내 회로가 만든 편향에 그냥 끌려간다. 분기마다, 혹은 큰 매매 전에 이 네 가지만 자문해보자.

  • 최근 연승 뒤에 베팅 크기나 빈도가 슬그머니 커지지 않았나.
  • 과거의 큰 손실 때문에 지금 무조건 피하고만 있는 자산이 있나.
  • 지금 시장 국면을 정확히 읽고 있나, 아니면 옛 경험에 갇혀 있나.
  • 이 결정은 분석에서 나온 건가, 감정에서 나온 건가.

시장 분석 능력만큼이나 자기 인식 능력이 중요하다. 인내가 왜 부의 핵심인지는 억만장자들이 현금을 쌓아두는 이유에서, 흔들리지 않는 원칙은 지속 가능한 투자 전략에서 이어진다. 결국 뇌가 만든 편향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 그게 신경과학이 투자자에게 건네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당신은 지금 승자 효과의 황홀경에 있나, 패자 효과의 그림자에 있나.

참고 자료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