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와 경매이론, 이기고도 망하는 이유

승자의 저주와 경매이론, 이기고도 망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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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서 이겼는데 그게 화근이 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부동산 경매판에서는 흔한 일이다. 시세보다 비싸게 낙찰받거나, 권리관계를 제대로 안 따지고 들어갔다가 법적 비용에 발목 잡혀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분명 경쟁에서 이겼는데 결과는 패배다. 경제학은 이걸 승자의 저주라고 부른다.

이 글은 이긴 사람이 왜 망하는지, 그리고 2020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매이론이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를 짚는다. 단순한 경제 상식 같지만,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사업이든, 값을 매기고 베팅하는 모든 판에 그대로 통하는 이야기다.

어두운 경매장에서 홀로 패들을 든 낙찰자가 부풀려진 가격 앞에서 불안해하는 승자의 저주 개념 이미지
경매장에서 홀로 패들을 든 낙찰자는 부풀려진 가격 앞에서 불안해지는 승자의 저주를 경험하게 된다.

승자의 저주, 이기고도 지는 함정

승자의 저주는 단순하다. 경매에서 이긴 입찰가가 물건의 진짜 값어치를 넘어서는 현상이다. 가치를 정확히 모르는 물건을 여럿이 두고 다투면, 가장 높게 부른 사람이 이긴다. 그런데 가장 높게 불렀다는 건, 그 물건을 가장 후하게 평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들 진짜 값을 모르는 상황에서 제일 비싸게 본 사람이 가져가니, 이긴 순간 이미 비싸게 산 셈이 된다.

스탠퍼드의 두 경제학자 로버트 윌슨과 폴 밀그럼이 파고든 게 바로 이 지점이다.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과도한 대가 탓에 오히려 위험에 빠지는 구조. 이건 부동산 경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번의 승리가 자신감을 부풀려 다음 판단을 흐리는 메커니즘은 승자 효과와 패자 효과에서 뇌과학으로 더 깊이 다뤘다.

경매이론과 노벨상, 보이지 않는 값을 매기다

경매이론은 게임이론의 한 갈래다. 시장에서 적정 가격을 알기 어려운 상품을, 경매라는 장치로 합리적인 값에 거래하게 만드는 이론이다. 윌슨과 밀그럼은 미술품 같은 데 쓰이던 경매를 라디오 주파수나 항공기 이착륙권 같은 ‘보이지 않는 상품’에 적용하는 법을 연구했다.

왜 하필 이런 무형의 권리였을까. 주파수나 활주로 이용권은 편의점 캔커피처럼 값이 정해진 재화가 아니다. 누구에게 얼마에 파느냐에 따라, 그걸 쓰는 국민의 편익이 크게 오르내린다. 무작정 높은 값만 받으려 들면 통신사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겨 사회 전체의 편익이 깎인다. 그래서 단순히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값에 파는 것’이 문제였다. 이 공로로 두 사람은 2020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핵심은 두 가지, 투명한 정보와 동시 경매

윌슨의 해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모든 참여자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주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부동산에 어떤 법적 불확실성이 숨어 있는지 모르면, 입찰자는 겁이 나서 자기 생각보다 낮게 써낸다. 참여자마다 아는 정보의 양이 다를수록, 정보가 부족한 쪽은 더 보수적으로 베팅한다. 결국 파는 사람만 손해다. 정보의 비대칭을 걷어내고 공정하게 다 공개할수록, 오히려 물건을 더 비싸게 팔 수 있다.

밀그럼은 여기에 경매 방식 자체를 손봤다. 그가 밝혀낸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스탠퍼드 리포트에 따르면, 낮은 값에서 시작해 점점 올리는 영국식 경매가, 높은 값에서 시작해 내리는 네덜란드식보다 승자의 저주를 더 잘 막는다. 입찰이 진행되는 동안 참여자들이 물건의 가치에 대한 정보를 서로에게서 얻기 때문이다. 정보가 많을수록 더 합리적으로, 더 높게 베팅한다.

두 사람은 이 원리로 ‘동시 다중 라운드 경매(SMRA)’라는 방식을 고안했다. 여러 물건을 한꺼번에 내놓고, 낮은 값에서 시작해, 더 이상 입찰이 없을 때까지 라운드를 반복한다. 강남 아파트 10채를 판다고 해보자. 한 채씩 순서대로 팔면 입찰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경쟁이 덜한 매물로 몰려, 어떤 건 값이 폭락한다. 반면 10채를 미리 공개하고 동시에 입찰받으면, 매물끼리 출혈 경쟁할 일 없이 저마다 적정가로 수렴한다.

5G 시대까지 이어진 현실의 경매

이론은 곧 현실이 됐다. 1993년 미국 정부는 주파수를 통신사에 경매로 팔기로 했는데, 방식이 문제였다. 정부 수입도 챙기면서, 낙찰자가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서비스하게 만들어야 했다. 일부 학자는 주(州)별로 하나씩 순차 판매를 권했지만, 밀그럼은 정반대로 50개 주의 정보를 미리 다 공개하고 한꺼번에 팔라고 조언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미국 FCC는 1994년부터 2014년까지 이 방식으로 1,200억 달러어치 주파수를 팔았고, 같은 기간 전 세계 경매액은 2,000억 달러에 달했다. 핀란드, 인도, 캐나다, 영국, 독일 등 거의 모든 나라가 이 방식을 쓴다. 마켓플레이스 보도에 따르면 지금의 5G 주파수 배분에도 이 경매 형식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30년 전 이론이 오늘날 손안의 인터넷을 떠받치는 셈이다.

스타트업 데모데이도 결국 경매다

현대 비즈니스에서 이 이론을 가장 잘 쓰는 곳이 스타트업 데모데이다. 여러 스타트업이 무대에 오르고, 벤처투자자들이 지켜보다 마음에 드는 곳에 투자한다. 행사를 여는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에는 정보를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하라 하고, 투자자에게는 기한을 정해 그 안에 결정하라고 한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동시 진행. 윌슨과 밀그럼의 두 원칙이 그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데모데이는 스타트업이 자기 주식을 제값 받고 팔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경매 시스템에 가깝다. 와이콤비네이터 회장이자 오픈AI 공동 설립자였던 샘 올트먼은 이렇게 말했다.

YC 데모데이는 스타트업이 투자자에게 구애하는 행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꾸로 투자자에게 ‘지금이 아니면 뛰어난 스타트업에 투자할 기회를 놓친다’고 선언하는 이벤트입니다.

이론적 배경을 모르는 스타트업은 데모데이를 꺼리기도 한다. 하지만 적정 가치로 거래될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하다. 데모데이를 제대로 쓰려면 그 전에 무엇을 풀지가 분명해야 하는데, 그 출발점은 12가지 문제 탐색 프레임워크에서 짚었다.

경매판 밖에서 써먹는 법

승자의 저주는 경매장에만 있지 않다. 부동산, 주식, 인수합병, 심지어 채용 경쟁까지, 값을 모르는 대상을 두고 여럿이 다투는 모든 곳에 도사린다. 오늘 바로 써먹을 점검 포인트만 남긴다.

  • 입찰이나 베팅 전에 “내가 이기면, 남들이 안 본 무엇을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한 번 묻기
  • 정보가 부족한 판에서는 일부러 한 박자 보수적으로 값 매기기
  • 파는 입장이라면 정보를 숨기지 말고 투명하게 공개하기. 그래야 더 비싸게 팔린다
  • 한 번 이긴 경험이 다음 판단을 부풀리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기

값을 모를수록, 이긴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 신호일 수 있다. 비슷한 함정으로 성공을 전부 내 실력으로 돌리는 심리는 자기귀인 편향의 함정에서 다뤘다.

이긴다는 건 무엇인가

승자의 저주가 주는 교훈은 명쾌하다. 경쟁에서 이기는 게 늘 좋은 게 아니라는 것. 무엇을 얼마에 가져왔느냐가 진짜 승부다. 윌슨과 밀그럼이 보여준 답도 단순하다. 정보를 투명하게 열고, 판을 제대로 설계하면, 파는 쪽도 사는 쪽도 더 나은 결과를 얻는다.

다음에 무언가를 두고 경쟁할 일이 생기면, 이기는 데만 매달리기 전에 한 번 멈춰서 묻자. 이겨서 얻는 것이, 치르는 값보다 정말 큰가. 그 질문 하나가 승자의 저주에서 나를 지킨다.

참고 자료: 매일경제, “주파수·활주로이용…무형 공공재 최적가격 이론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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