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를 기억할 거다. 어릴 때 배운 교훈은 분명했다. 진실을 외쳐라, 거짓에 속지 마라. 그런데 현대 금융 시장에선 이 교훈이 통째로 뒤집힌다. 여기선 “옳은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게 낫다”는 냉소가 작동한다. 시장의 비합리성이 정직한 분석을 자주 이긴다는 이야기다.

월스트리트는 기업의 기본 원칙 대신 분위기에 베팅한다. 목표는 하나, 숫자가 오르는 것이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외치는 아이가 되기보다, 군중을 따라가며 돈을 버는 쪽을 택하는 투자자가 늘었다. 이게 옳은 선택일까. 답하기 전에 두 가지 사례를 보자.
테슬라: 자동차 회사에서 AI 판타지로
테슬라만큼 이 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원조 밈 주식”이라 불릴 만큼 주가가 실제 사업과 동떨어져 있다. 핵심 제품인 전기차는 성장이 정체되고 경쟁사에 점유율을 내주는 중이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는 더 이상 자동차 회사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이제 AI·로봇 기업이라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분석은 더 충격적이었다. 테슬라 자동차 사업이 회사 가치의 단 12%, 로보택시가 45%, 완전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17%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제품들이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고객이 돈을 낼 의향이 없다는 점이다. 주가의 절반 이상이 아직 대규모로는 존재하지 않는 제품에 베팅돼 있는 셈이다.
2026년 들어서도 그림은 비슷하다. 모닝스타는 테슬라가 로보택시 기대만으로 고평가 영역에 있다고 분석한다. 선행 주가수익비율은 300배를 넘나들고, 텍사스에서 시작한 로보택시는 초기 주행에서 경로 오류와 저속 접촉 사고가 보고됐다. 회사조차 2026년 로보택시 매출이 유의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넘나든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이렇게 말한다. “가치는 있지만 PER 수백 배는 과하다. 이번엔 빠질게.” 워런 버핏의 관점에선 그들이 옳다. 하지만 그들은 버핏이 아니고, “욜로”를 외치며 머스크를 믿은 사람들보다 덜 부유할 뿐이다. 버핏이 60년간 지킨 투자 원칙이 틀린 게 아니라, 시장이 잠시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트코인: 회의론자들의 패배
암호화폐 회의론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과대광고로 거래되고, 변동성이 크고, 실제 쓰임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누가 신경 쓰나. 비트코인은 지난 5년간 700% 올라, 같은 기간 S&P 500의 110% 상승을 압도했다.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주류가 됐다. 오랫동안 비판적이던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조차 블록체인이 “실재한다”고 입장을 누그러뜨렸다.
암호화폐 쪽이 회의론자에게 “가난하게 사는 재미나 느껴라”라고 조롱했던 말이, 안타깝게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이 둘의 차이는 대가들이 남긴 조언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장의 비합리성과 저점 매수의 함정
이 시장에서 비관론자로 사는 건 돈이 안 된다. 저점 매수가 돈이 된다. 월스트리트를 뒤흔들 ‘나쁜 소식’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락이 와도 사두면 거의 항상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걸 투자자들이 학습했기 때문이다.
여기 거대한 함정이 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수석 전략가 스티브 소스닉은 경고한다. 모든 하락장을 다 매수했다면 결과가 좋았겠지만, 누구도 무한한 자금이나 무한한 투자 기간을 갖고 있지 않다고. 경제학자 케인스의 오래된 경구 그대로다. 시장은 당신이 버틸 수 있는 기간보다 더 오래 비합리적일 수 있다. 그래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시장이 요동칠 때 기억할 불변의 진실을 먼저 갖춰야 한다.
저점 매수가 위험해지는 지점은 분명하다. 레버리지를 끼는 순간이다. 빚 없이 산 주식은 하락장을 그냥 견디면 되지만, 빚으로 산 주식은 시장이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동안 강제 청산을 부른다. 비합리성이 합리성보다 오래간다는 말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 있다. 옳은 판단을 하고도, 버티는 도중에 자금이 먼저 바닥나면 그 옳음은 아무 쓸모가 없다. 결국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게임이고, 살아남으려면 베팅 규모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묶어 둬야 한다.
거품은 처음이 아니다
이런 광경이 낯설지 않다면, 그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때도 사람들은 “이번엔 다르다”고 했다. 매출도 이익도 없는 회사가 도메인 이름 하나로 수십 배씩 뛰었다. 2000년 시스코의 주가수익비율은 무려 400배를 넘겼고, 시장은 그걸 정당화할 서사를 끝없이 만들어 냈다. 그리고 거품은 터졌다.
흥미로운 건, 거품 한가운데서 “비싸다”고 외친 사람들이 대체로 옳았다는 점이다. 다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그들은 거품이 1~2년만 더 갈 줄 몰랐고, 그 사이 군중은 돈을 벌었다. 옳았지만 가난했고, 틀렸지만 부유했다. 시장의 비합리성이 만들어 내는 잔인한 비대칭이다.
여기서 진짜 교훈은 “거품에 올라타라”도 “무조건 피하라”도 아니다. 내가 지금 베팅하는 게 가치인지 모멘텀인지를 스스로 정직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모멘텀에 탔다면 모멘텀의 규칙대로, 빠질 시점과 손절 기준을 미리 정해 둬야 한다. 가치에 투자한다면 군중이 비웃어도 버틸 자금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둘을 헷갈릴 때 생긴다. 모멘텀에 타 놓고 가치 투자자처럼 “언젠가는 오른다”며 버티는 순간, 함정이 닫힌다.
진실과 수익 사이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은 진실을 말하라 했지만, 시장은 진실보다 수익을, 가치보다 모멘텀을 택하라고 속삭인다. 문제는 이 게임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다. 저점 매수가 늘 통하는 건,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다. 그리고 그 순간이 언제, 얼마나 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군중을 무작정 따라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핵심은 자기 게임을 아는 것이다. 모멘텀에 올라탈 자금과 기간이 있다면 그렇게 하되, 그게 영원하지 않다는 걸 잊지 않는 것. 복잡한 베팅에 휩쓸리기 전에 단순함의 힘을 점검하는 것이 오히려 멀리 간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나. 벌거벗었다고 외치는 아이가 될 것인가, 군중을 따라 부자가 되는 길을 갈 것인가. 답은 각자의 투자 철학과 감당할 수 있는 위험에 달려 있다.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자기가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모멘텀과 가치를 혼동하지 않고, 빚으로 베팅하지 않으며, 터질 때를 대비해 두는 것. 그게 비합리적인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최소한의 규칙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시장의 비합리성은 길게 갈 수 있지만, 모든 거품은 언젠가 터진다.
참고 자료:
- CNN, “It’s better to be rich than right”
- Morningstar, "Tesla Stock Is Riding Robotaxi Optimism, but Is It Overvalued?"
- The Motley Fool, "Tesla Stock Gets Wall Street Upgrade on Robotaxi Potent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