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했다. 연봉이 올랐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회사로 이직도 성공했다.
그런데 출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분명 원하던 곳에 도착했는데 왜 채워지지 않을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기가 애매하다. 배부른 소리로 들릴 테니까.
스티븐 코비가 썼던 말이 정확히 이 지점을 찌른다. – “사다리가 잘못된 벽에 기대어 있으면, 우리가 내딛는 모든 걸음은 우리를 더 빨리 잘못된 곳으로 데려갈 뿐이다.”

내재적 가치 찾는 법은 “더 높은 목표”를 추가하는 게 아니다. 지금 오르고 있는 사다리가 누구의 사다리인지, 그게 기대어 있는 벽이 진짜 내가 가고 싶은 곳인지부터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게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리 빠르게 올라도 도착하는 곳은 결국 남의 옥상이다.
“사다리가 잘못된 벽에 기대어 있으면, 우리가 내딛는 모든 걸음은 우리를 더 빨리 잘못된 곳으로 이끌 뿐이다.” – 스티븐 코비
왜 성취가 공허함으로 끝나는가
스티븐 코비가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에서 말한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Begin with the End in Mind)” 원칙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목적지를 정의하지 않고 달리기 시작하면, 속도가 빠를수록 엉뚱한 곳에 먼저 도착한다.
문제는 우리가 “목표”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수가 실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이다.
도구적 가치와 궁극적 가치의 혼동
심리학은 가치를 두 층으로 나눈다. 도구적 가치(instrumental value)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다. 연봉, 학위, 직함, 자산 규모 같은 것들. 궁극적 가치(ultimate value)는 그 자체가 목적인 것들이다. 평화, 성장, 연결, 자유, 지혜.
함정은 단순하다. 수단이 목적의 자리를 차지해버린다. “연봉을 올리고 싶다”는 목표의 원래 뿌리는 “가족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다”였을 수 있다. 그런데 승진 경쟁에 빠지면 연봉 그 자체가 목표가 되고, 궁극적 가치였던 “가족과의 시간”은 오히려 더 줄어든다.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목적지 자체가 바뀌어 있는 거다.
이 구조는 30세에 모든 성공 지표를 달성하고도 공허함을 느꼈던 사힐 블룸이 발견한 진정한 부의 5가지 유형과 정확히 같은 이야기를 한다. 돈만 많으면 자동으로 얻게 된다고 믿었던 시간, 관계, 건강, 의미가 오히려 돈을 쫓는 동안 다 빠져나간다는 것.
자기결정이론이 말하는 외재적 가치의 구조적 함정
가치가 수단이 되는 문제를 가장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에드워드 데시와 리차드 라이언의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이다.
외재적 목표는 웰빙을 깎는다
Self-Determination Theory의 원문 자료에 따르면, 목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외재적 열망(extrinsic aspirations)은 자아 외부에 있는 것들이다. 부, 명성, 외모 같은 것들. 내재적 열망(intrinsic aspirations)은 자아 내부에 있다. 의미 있는 관계, 개인적 성장, 공동체 기여, 건강.
문제는 이게 선호의 차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외재적 목표에 강하게 집중하는 사람은 자율성과 연결감이 낮아지고,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 모두 악화된다. 반대로 내재적 목표에 집중하면 활력(vitality)과 자율성이 높아진다. 즉, “무엇을 목표로 두느냐”가 “무엇을 이루느냐”보다 웰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2025년 4월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에 실린 직업교육 학생 대상 연구에서도 같은 방향이 확인됐다. 내재적 목표가 자율적 동기와 결합될 때만 웰빙이 의미 있게 상승했다. 같은 목표라도 “내가 선택해서” 추구하는지 “사회가 시켜서” 추구하는지가 결과를 갈랐다.
외재적 가치는 항상 끝이 없다
외재적 가치의 또 다른 문제는 비교의 무한 루프다. 승진을 해도 더 높은 자리가 있다. 좋은 차를 사도 더 비싼 차가 있다. SNS에서 동창 피드를 열면 끝나지 않는 경쟁 게임이 시작된다.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쾌락 트레드밀(Hedonic Treadmill)이라 부른다. 1971년 브릭만과 캠벨이 처음 제시한 개념인데, 외부 조건이 아무리 좋아져도 인간은 일정한 기준선으로 빠르게 적응한다는 이론이다. 연봉이 30% 오르면 3~6개월 안에 그 수준이 “당연한 것”이 된다. 다시 공허해진다.
후속 연구는 이 기준선이 완전히 고정된 건 아니라고 본다. 다만 외재적 성취로 기준선을 올리는 건 매우 어렵고, 설사 올라간 순간이 있어도 빠르게 다시 평탄화된다. Diener·Lucas·Scollon의 적응 이론 개정 연구가 정리한 핵심은 하나다. 외재적 성취로는 기준선을 움직이기 어렵지만, 내재적 가치의 추구는 기준선 자체를 재설계할 가능성을 연다.
비슷한 구조를 왜 똑똑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지 않은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제 해결 능력과 삶의 지혜는 다른 축이다. 지능이 높을수록 외재적 성취를 잘 달성하지만, 그 성취가 만족으로 이어지지 않는 갭이 오히려 커진다.
올바른 사다리를 찾는 3가지 질문 – 깊이 파기
원문에서 제안한 세 가지 질문은 간단해 보이지만, 제대로 답하려면 한 층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첫째, “아무도 모른다면 나는 이걸 할까?”
이 질문이 걸러내는 건 외재적 가치의 본질이다. 외재적 가치는 관찰자가 있어야 성립한다. 명품 가방은 누군가 알아봐야 의미가 생긴다. 직함도 명함을 내밀 대상이 있어야 기능한다. SNS에 올리지 않는다면 “좋아요”도 없다.
하지만 질문을 던질 때 한 번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아무도 모른다”는 조건 아래에서도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 답이 “하는 과정이 즐거워서”라면 순수한 내재적 가치다. “해내고 나면 내가 성장한 게 느껴져서”라면 역시 내재적이다. “그래도 내가 뿌듯할 테니까”라면 자기 검증형 내재적 가치다.
반대로 답이 “그래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혹은 “나중에 증명할 수 있으니까”라면, 결국 외재적 가치가 내재적 가치의 옷을 입고 있는 거다.
둘째, “이게 진짜 목적인가, 수단인가?”
목표 뒤에 “왜?”를 다섯 번 붙여 물어보는 연습이 유효하다.
- 연봉을 올리고 싶다 → 왜? 더 많은 선택권을 갖고 싶어서
- 선택권이 왜 중요한가? → 원할 때 일을 멈출 수 있으니까
- 왜 멈춰야 하나? →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 왜 그 시간이 중요한가? → 아이가 크는 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
- 그 시간을 얻는 다른 방법은? → 재택근무, 업무 조정, 이직, 프리랜싱
“왜?”를 다섯 번 내려가면 거의 항상 궁극적 가치가 나온다. 그리고 동시에, 그 가치를 얻는 경로가 지금 오르고 있는 사다리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연봉을 올려 자유를 얻는 길은 가장 직관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느린 길일 수도 있다.
셋째, “이걸 선택한 게 나인가, 누군가인가?”
이 질문이 가장 불편하다. 우리가 “내가 선택했다”고 확신하는 것들 상당수가 실은 물려받은 각본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맥락에서는 더 복잡해진다. 부모의 기대, 명문대 입학, 대기업 취업, 적정 나이의 결혼, 아파트 한 채. 각 단계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압력이 있다. 개별 선택지를 고민했지만, 선택지 자체의 구성을 의심해본 적은 거의 없다.
이 구조를 뚫고 나오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SNS 침묵의 나선에서 다룬 것처럼, 피드 환경은 이미 대다수에게 “생각할 이유”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사회적 압력은 알고리즘이 증폭한다. 내가 진짜로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의도적으로 시간을 떼서 정리하지 않으면 영영 묻힌다.
가치 명료화 – 불스아이 연습
질문이 머릿속 정리에만 머물면 오래가지 않는다. 가치를 실제로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 행동이 바뀐다. 임상심리학에서 쓰는 가장 실용적인 도구가 토비아스 룬드그렌의 불스아이(Bull’s Eye) 연습이다.
네 영역으로 삶을 분할한다
종이 한 장에 다트판을 그린다. 중앙이 “가장 중요한 가치”, 바깥쪽 고리로 갈수록 덜 중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판을 네 영역으로 나눈다.
- 일/공부
- 여가/취미
- 관계
- 개인 성장/건강
각 영역마다 “내가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한 문장씩 적는다. “성공”이나 “행복” 같은 추상어는 걸러낸다. “아이와 매일 저녁 30분 대화하기”, “일주일에 3시간 책 읽기”, “건강검진에서 A 받는 몸 상태 유지하기” 같이 구체적으로.
행동과 가치의 간격을 측정한다
그리고 지난 한 달을 되짚어본다. 각 영역에서 적은 가치에 내 행동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다트 점으로 찍는다. 중앙에 가까울수록 일치한다는 뜻이다.
대부분은 충격을 받는다. 입으로는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다트는 바깥 고리에 몰려 있다. “건강이 우선”이라면서 개인 성장/건강 영역은 텅 비어 있다. 이 간격이 클수록 사다리가 잘못된 벽에 기대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간격이 보이면 행동이 바뀔 여지가 생긴다. 안 보이면 그대로다.
내재적 가치로 전환하는 네 가지 실천
거창한 재설계보다 작은 실천이 더 오래간다.
주 1회 “아무도 모르는 시간” 블록
스케줄에 90분을 확보한다. 그 시간에 하는 활동은 단 하나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SNS에 올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 그림을 그려도, 악기를 만져도, 산책하며 녹음해도 된다. 중요한 건 결과물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다. 한 달쯤 지나면 그 시간이 주의 중심축이 된다.
월 1회 목표 점검 루틴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20분을 잡는다. 지금 추구하고 있는 목표 5개를 적고, 각각에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가?”를 물어본다. 답이 바로 안 나오면 일단 표시만 해두고 다음 달에 다시 본다. 두 번 연속 모호하다면 리스트에서 내려도 된다. 습관적으로 쫓던 목표일 확률이 높다.
비교를 멈추는 리프레이밍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를 볼 때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는 바로 튀어나오는 반응이다. 이걸 “저 사람의 가치와 내 가치는 어떻게 다른가?”로 바꿔 던지는 연습을 한다. 반복하면 뇌가 자동 비교 회로를 스스로 끊기 시작한다. 인생 역전을 위해 버려야 할 3가지 생각의 틀에서 다룬 확증편향·감정반응·학습태도 전환도 같은 훈련의 일부다.
작은 퇴장 실험
어떤 사다리가 잘못된 것 같다는 감이 오면, 전면 퇴장 대신 작은 실험부터 한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1개월 무급 휴가, 관계를 끊기 전에 2주 거리두기, 부업을 시작하기 전에 주말 4시간 파일럿. 실험 기간 동안 내 몸과 감정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한다. 머리로 판단한 것과 몸이 느끼는 것이 다른 경우가 훨씬 많다.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용기 – 결국은 시간 문제다
원문에서 가장 강력한 문장이 있다. “오르고 싶은 사다리의 바닥에 있는 것이, 오르고 싶지 않은 사다리의 중간에 있는 것보다 낫다.”
직관적으로 반발하기 쉽다. 바닥으로 내려가는 건 손해처럼 느껴진다. 쌓아온 걸 버리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 감각이 바로 매몰 비용의 왜곡이다. 잘못된 사다리의 중간에 있는 사람은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계속 오른다. 오를수록 더 깊어진다. 70세가 되어 돌아볼 때 후회의 총량은 “도전하지 않은 것”보다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오래 달린 것” 쪽이 훨씬 크다는 연구가 여럿 있다.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건 실패가 아니라 재설계다. 내재적 가치에 맞는 사다리를 새로 고르면, 출발점이 바닥이어도 오르는 모든 걸음이 원하는 방향을 향한다. 궁극적으로는 그게 더 빠르다.
오늘 해볼 수 있는 한 가지
지금 추구하고 있는 가장 큰 목표 하나를 적는다.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세 가지를 적어보자.
- 아무도 모른다면 이걸 여전히 할까?
- 이게 목적인가, 수단인가?
- 이걸 선택한 건 나인가, 누군가인가?
세 질문에 모두 자신 있게 “예, 내 선택이며 목적이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 사다리는 제대로 기대어 있다. 한 가지라도 망설이면, 벽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살펴볼 시간이 왔다는 신호다.
빠르게 오르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시작하는 게 먼저다. 내재적 가치 찾는 법은 결국 그 방향을 매월, 매주 조금씩 조정하는 작업이다. 한 번에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틀린 방향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도 5년 뒤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참고 자료
- FranklinCovey, “Habit 2: Begin With the End in Mind”
- Ryan & Deci, “Intrinsic and Extrinsic Motivations: Classic Definitions and New Directions”
-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 “The dual role of motivation on goals and well-being”
- Diener, Lucas & Scollon, “Beyond the Hedonic Treadmill: Revising the Adaptation Theory”
- Wikipedia, “Hedonic Treadmill”
- Tobias Lundgren, “Adapted From Tobias Lundgren’s Bull’s Eye Worksh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