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과 전기 요금 체계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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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기 요금 인상을 두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정부는 지난 3월 31일까지 2분기인 4~6월의 전기 요금 인상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언젠간 꼭 올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올리기는 곤란한 상황’이라며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이 덕분에 당분간은 동결된 요금으로 전력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정부는 추후 2분기 중에라도 요금을 인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은 이미 전기 요금이 꽤 많이 올랐기 때문인데, 지난해에도 세 번이나 인상되고, 올해에도 한 차례 인상된 상태입니다. 올 해 1월을 기준으로 전기 요금은 1년 전에 비해 30% 가량 오른 상태라고 합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높은 물가 상승률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 요금을 또 올리는 방안을 실행하기엔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렇다고 인상을 계속 늦출 수도 없는 상황인데, 전기 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국내에서 전력을 구매하여 판매하는 한국전력공사에 막대한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전력의 상황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한국전력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민간 발전회사들에서 전력을 생산하면 한국전력이 생산된 전력을 가져와서 각 가정이나 회사, 공장에 보내고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민간 발전회사 > 한국전력공사 > 소비자

국내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민간 발전회사는 여러 곳이 있지만 이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건 한국전력이 유일한데, 정부가 효율성을 위해 한국전력에 판매 권한을 몰아줬기 때문입니다.

만약 개별 민간 업체가 전력을 판매하려고 한다면, 전국 각지에 송전탑도 세우고, 전력을 배분하는 배전 시설도 만들어야 하는 등 비효율적인 경쟁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사회 전체로 봤을 때도 너무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한국전력에 판매 권한을 주는 대신, 전력을 독점 판매하는 한국전력이 마음대로 요금을 올리지 못하도록 공기업으로 전환했습니다. 한국전력의 존재 목적 자체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인 만큼 전력을 팔아 많은 이윤을 남기는 비즈니스가 아닌 셈이죠.

한국전력은 발전사들로부터 구매해오는 전력을 원가 수준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해왔는데, 원가가 달라질 때마다 요금이 오르락내리락 하면 혼란이 커질 수도 있는 만큼, 원가가 저렴할 땐 판매 가격을 비교적 조금만 낮춰 이익을 보고, 반대로 원가가 비쌀 땐 가격을 비교적 조금만 올려 손해를 보는 식으로, 일종의 전기 요금 완충장치 역할도 해왔습니다.

뉴스핌

한국전력은 이렇게 이익도 보고 손해도 보면서 운영해 오고 있는데, 문제는 최근에 전기를 만드는 원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것에 있습니다. 판매 가격을 한 번에 확 인상할 수는 없기 때문에 손해가 점점 커지면서, 결국 작년에 한국전력은 32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전기의 원가

전기 원가는 가스 가격이 결정합니다. 한국전력이 발전회사들로부터 전기를 사 오는 원가가 상승한 건 가스 가격이 올랐기 때문인데, 전기의 원가는 사실상 LNG의 발전 가격이 결정합니다.

물론 원자력 발전도 있고 석탄 발전도 있지만, 한국전력은 매일 필요한 전력을 ‘가장 저렴한 전력부터’ 차례대로 사옵니다. 그 이유는 에너지원별로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다르기 때문이죠.

원자력 발전 < 석탄 발전 < LNG 발전

제일 저렴한 것은 원자력 발전이고, 조금 더 비싼 것은 석탄 발전입니다. 원자력 발전과 석탁 발전보다 비싼 것은 LNG 발전인데, 원자력 발전이 저렴하긴 해도 현재는 이 원자력 발전만으로는 모든 수요를 충족시킬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추가로 화력 발전소에서도 사오고, LNG 발전소에서도 사오게 되는데, 이때 한국전력은 발전소의 종류에 상관없이 전기를 사 오는 가격을 통일합니다. 그 기준이 바로 가장 비싼 LNG 발전소의 전기인 것이죠. 참고로,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태양광·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은 별도로 가격이 책정된다고 합니다.

중앙일보

LNG 발전소를 기준으로 전력을 사오게 되면 원자력·석탄 발전소의 전력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사오는 상황이 되는데, 이들의 전기를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사주는 것은 이 발전소들이 LNG 발전소에 비해 건설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즉, 발전소의 막대한 건설 비용을 회수할 수 있어야 누군가가 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할테니, 과거에 발전소 건설을 유도하기 위해 이런 가격 책정 방식을 도입한 것입니다.

가스 원가의 가파른 상승세

최근에는 전기의 원가를 결정하는 LNG의 수입 가격이 급상승하며 발전 단가가 가파르게 오른 상황입니다. 1년 만에 약 40%가 올랐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또 최근에 국내 LNG 사용량이 많이 늘어난 상황인데,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된 석탄 대신 LNG를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물론 LNG도 ‘메탄’ 등의 일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자원이긴 하지만, 석탄보다는 친환경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

또 LNG는 전기를 만드는 데만 사용되는 자원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난방용으로도 많이 쓰이는데, 가스 원가의 가파른 상승으로 난방비 역시 급격하게 올라버린 상황이죠.

정부의 입장

정부 부처 간에도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 전력 관련 업무를 맡는 산업통상자원부는 하루라도 빨리 전기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고,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요금 인상에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물가가 빠르게 올라서 국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으니, 전기 요금만이라도 인상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정부 지지율에 대한 고민도 포함되어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기 요금을 동결하려면 한국전력이 빚을 더 내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한국전력은 적자를 메꾸고 발전회사에 지불할 돈을 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해 온 상황인데, 한국전력이 발행한 채권 규모는 2020년 3조 4000억 원에서 2021년엔 10조 4000억 원, 지난해엔 31조 8000억 원으로 급증했습니다.

이는 한국전력의 빚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빚은 결국 정부가 갚아야 하고, 이는 결국 국민들이 나눠서 부담해야 할 빚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한국전력이 채권을 너무 많이 발행하면 다른 기업들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한국전력이 발행한 채권은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너도나도 한국전력의 채권에 투자하게 되면 그만큼 다른 기업들은 채권을 발행하기가 어려워져, 기업들이 쉽게 돈을 빌리지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세금과도 같은 전기 요금

매달 내야 하는 전기 요금이 오르면 전반적인 물가도 상승합니다. 전기 요금은 개인이 직접 납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 비용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전기·가스 요금은 상승했을 때 특히 체감도가 높은 항목이라고 합니다.

전기 요금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으로, 전기 요금은 세금이 아님에도, 흔히 ‘전기세’라고 부릅니다. 이는 정부가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전력 판매에 대한 독점권을 줬고,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세금처럼 우리가 꼬박꼬박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죠.

정부는 과연 세금처럼 걷어가는 전기 요금을 어떻게 ‘경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까요? 정부의 역할과 결정이 중요해 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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