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시티피케이션: 디지털 플랫폼의 필연적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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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느끼셨을 겁니다. 처음에는 무료로 모든 것을 제공하던 그 플랫폼이, 어느 순간부터 광고를 강요하고 유료 결제를 유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이 주목한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 현상은 단순한 기업의 탐욕이 아닌, 네트워크 효과를 가진 모든 비즈니스의 필연적 생애주기라는 충격적 진실을 드러냅니다.

엔시티피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코리 닥터로우가 만든 ‘엔시티피케이션’이라는 신조어는 온라인 플랫폼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용자보다 수익에 우선순위를 두며 서비스 품질이 저하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닥터로우는 이 과정을 세 단계로 명확히 정의했습니다:

1단계: 사용자에게 친절한 시기

플랫폼은 사용자 확보를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페이스북 초기의 깔끔한 인터페이스, 우버의 파격적인 할인가, 넷플릭스의 저렴한 구독료가 대표적 사례죠.

2단계: 비즈니스 고객 우선 단계

충분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한 후, 플랫폼은 광고주나 파트너사 등 비즈니스 고객을 위해 일반 사용자를 희생시키기 시작합니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 광고가 넘쳐나고, 검색 결과에 광고가 먼저 노출되는 현상이 이에 해당합니다.

3단계: 모든 가치 독점 단계

마지막으로 플랫폼은 비즈니스 고객마저 착취하며 모든 가치를 자신에게 집중시킵니다. 구글의 광고비 인상, 애플의 앱스토어 수수료 정책이 이런 사례입니다.

인터넷 산업에 대한 순호감도, Gallup

네트워크 효과의 덫: 왜 엔시티피케이션은 필연적인가

크루그먼 교수는 이 현상이 단순히 기술 플랫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네트워크 효과를 가진 모든 비즈니스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생애주기라는 것이죠.

네트워크 효과란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할수록 그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가 증가하는 현상입니다. 카카오톡을 예로 들어보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카카오톡을 사용할수록, 새로운 사용자에게 카카오톡은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가 됩니다.

수익 극대화의 논리적 전략

기업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명확합니다:

  • 초기 단계: 파격적인 혜택으로 사용자 기반 확보
  • 성장 단계: 네트워크 효과를 통한 시장 독점력 구축
  • 수익화 단계: 구축된 독점력을 바탕으로 가격 인상 및 서비스 품질 저하

크루그먼의 수학적 모델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가격은 급격히 상승하지만 고객 기반은 완전히 붕괴되지 않고 정체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실제로 페이스북의 사용자 증가율은 둔화되었지만 여전히 막대한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엔시티피케이션 모델

우버 사례: 엔시티피케이션의 생생한 현실

우버의 ‘수익성 전환 전략’은 엔시티피케이션의 전형적 사례입니다. 초기 우버는 기존 택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후, 급격한 가격 인상과 수수료 정책 변경을 통해 수익성을 추구하기 시작했죠.

이 과정에서 운전자들은 더 적은 수익을 얻게 되었고, 승객들은 더 높은 요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구축된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사용자들은 쉽게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버의 수익성 전환

인터넷이 가속화시킨 엔시티피케이션

과거에도 네트워크 효과는 존재했지만, 인터넷의 보편화가 이 현상을 크게 가속화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보급률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네트워크 효과를 활용한 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셜 미디어, 전자상거래, 스트리밍 서비스 등 거의 모든 디지털 플랫폼이 이 사이클을 겪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피크 TV’ 시대 이후 콘텐츠 품질 저하와 가격 인상, 아마존의 프라임 회원 혜택 축소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인터넷의 보급률

도덕적 환상의 붕괴: 기업가들의 정신적 타격

엔시티피케이션의 또 다른 문제는 심리적 차원에 있습니다.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이 현상을 도덕적 프레임으로 해석합니다. “처음에는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돈에 눈이 멀어 타락했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크루그먼은 냉정하게 지적합니다. “그들은 결코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단지 사업이었을 뿐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초기부터 지금까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변한 것은 그의 도덕성이 아니라 사업 전략의 단계일 뿐입니다.

기업가들의 정체성 혼란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과정이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초기에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문화 영웅’으로 추앙받았습니다. 하지만 엔시티피케이션 단계로 접어들면서 대중의 비난과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가들로 하여금 점점 더 반민주적이고 분노에 찬 태도를 보이게 만듭니다. 일론 머스크의 최근 행보나 기술 업계 리더들의 공격적 발언들이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엔시티피케이션 시대의 대응 전략

소비자 관점에서의 대응

  • 다양한 대안 모색: 한 플랫폼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기
  • 비용-편익 분석: 서비스 품질 저하와 비용 증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 집단적 대응: 사용자들의 조직적 대안 플랫폼 모색

정책적 대응의 필요성

크루그먼은 이 문제가 정책적 개입을 필요로 한다고 시사합니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만으로는 네트워크 효과의 독점력을 견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 반독점 정책 강화: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남용 방지
  • 데이터 이동권 보장: 사용자들이 쉽게 플랫폼을 변경할 수 있는 환경 조성
  • 투명성 의무화: 알고리즘과 정책 변경 과정의 공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현실 인식

엔시티피케이션은 우리 시대의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현상을 단순한 기업의 탐욕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효과를 가진 비즈니스 모델의 구조적 특성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플랫폼들도 언젠가는 이 사이클을 겪게 될 것입니다. 무료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교훈을 우리는 엔시티피케이션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이 현실과 마주해야 할까요? 단순히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대응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참고 자료: Paul Krugman, “The General Theory of Enshit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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