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도 이런 경험 있으시죠? 온라인 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했는데, 정가 옆에 빨간 글씨로 ‘50% 할인’이라고 적혀 있으면 괜히 득템한 기분이 드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혹시 그 ‘원가’가 과연 진짜 가격이었을까요? 오늘은 우리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강력한 심리적 함정, ‘앵커링 편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400달러 신발에서 시작된 깨달음
최근 한 패션 블로거의 흥미로운 경험담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온라인에서 펜디 이브닝 샌들을 발견했는데, 가격이 무려 1,400달러였습니다. ‘베스트셀러’라는 라벨까지 붙어 있었죠. 그런데 검색을 계속하다 보니 비슷한 디자인의 샌들을 ‘세일가’ 850달러에 발견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850달러라는 가격이 ‘저렴하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385달러짜리 하이힐을 발견했을 때는 주저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죠. 1,400달러라는 처음 가격이 기준점이 되어, 그 이후 모든 가격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끼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앵커링 편향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실험의 놀라운 결과
앵커링 편향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실험이 있습니다. 1974년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진행한 연구인데요, 이 연구로 카너먼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실험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10 또는 65가 나오도록 조작된 룰렛을 돌리게 한 후, “유엔에 가입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비율이 몇 퍼센트일까요?”라고 질문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 10이 나온 그룹: 평균 25% 추측
- 65가 나온 그룹: 평균 45% 추측
완전히 무관한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본 숫자가 이후 판단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뇌가 처음 접하는 정보를 ‘닻(anchor)’으로 삼아 모든 후속 판단의 기준점으로 활용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상 속 앵커링 편향의 교묘한 작동
마케팅에서의 활용
소매업체들은 이미 앵커링 편향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상품에 ‘원가 100,000원’을 크게 표시하고 그 위에 선을 그어 놓은 다음 ‘특가 59,000원’이라고 적어놓는 것이죠. 소비자들은 100,000원이라는 앵커 때문에 59,000원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더 교묘한 경우도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을 500만원에 진열해 놓고, 바로 옆에 150만원짜리 가방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150만원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정치와 협상에서의 활용
최근 미국의 관세 정책 논란도 앵커링 편향의 좋은 사례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최대 1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금융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식시장은 2월 최고점 대비 20% 하락했죠.
하지만 몇 주 후 실제로는 30% 관세로 결정되자, 시장은 오히려 안도했습니다. 145%라는 극단적인 앵커 때문에 30%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30%도 1934년 이후 최고 수준의 높은 관세율인데도 말이죠.
투자에서의 함정
투자 분야에서 앵커링 편향은 특히 위험합니다. 주식을 100만원에 매수한 투자자는 그 가격을 기준점으로 삼아, 주가가 70만원으로 떨어져도 “원래 가격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손절을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여러분이 얼마에 샀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앵커링 편향에서 벗어나는 실전 전략
1. 비교 쇼핑의 힘
앵커링 편향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은 비교 쇼핑입니다. 한 곳에서만 가격을 확인하지 말고, 여러 판매처의 가격을 비교해보세요. 급여 협상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사한 직종의 시장 급여 수준을 충분히 조사한 후 협상에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첫 정보를 의심하는 습관
처음 제시된 정보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마세요. 1,400달러짜리 신발을 봤을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 이 가격이 정말 합리적인가?
- 실제로 몇 번이나 신을 것인가?
- ‘베스트셀러’라는 라벨이 진짜인가?
- 브랜드 프리미엄을 제외하면 실제 가치는 얼마인가?
3. 자신만의 가치 기준 설정
외부에서 제시된 앵커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만의 명확한 가치 기준을 세워두세요. 예를 들어 “신발에는 월 소득의 5% 이상 쓰지 않는다”와 같은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놓는 것입니다.
4. 감정적 거리두기
구매나 투자 결정을 내릴 때는 감정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세요. “지금 당장 사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루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통해 충동적인 결정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길
앵커링 편향을 이해한다고 해서 소비를 완전히 멈추라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물건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반응하는 대신 평가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 이 가격이 정말 좋은 가격인가?
- 공정한 제안인가?
- 적절한 기준인가?
처음 본 것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과 시장에서의 현실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앵커링 편향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지 과정이지만, 이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여러분의 다음 구매 결정에서 한 번 적용해보세요. 분명 더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 자료: Contesa, “this is how they get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