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고 투자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은 넘쳐나지만, 정작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는 경우가 드뭅니다. ‘돈의 심리학’의 저자 모건 하우절이 새롭게 제시하는 ‘돈 쓰기의 예술’은 단순한 소비 가이드를 넘어 인간의 본성과 행복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과학이 아닌 예술, 소비의 주관적 본질
모건 하우절이 새 책의 제목을 ‘돈 쓰기의 과학’이 아닌 ‘돈 쓰기의 예술’로 정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과학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을 전제하지만, 돈을 쓰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처럼 돈 쓰기는 모순적이고 복합적입니다.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만족도가 다르고, 같은 경험이라도 개인의 가치관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마치 같은 그림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행복의 전제조건: 이미 행복한 사람만이 더 행복해진다
흥미롭게도 연구 결과들은 일관된 패턴을 보여줍니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이미 행복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상황에서 돈의 한계
나쁜 결혼 생활을 하고 있거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긴 출퇴근 시간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준다고 해서 근본적인 행복이 찾아올까요? 답은 분명히 ‘아니오’입니다. 돈이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다른 문제들이 행복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기반 위에서의 시너지 효과
반면 훌륭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고, 일에서 보람을 느끼며, 건강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강력한 증폭 역할을 합니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건강을 챙기거나, 좋은 경험을 쌓는 데 돈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돈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좋은 것들을 더욱 강화하는 도구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정량화 함정: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 추구하는 오류
우리는 종종 측정 가능한 목표에 집착합니다. “10% 더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는 목표는 모호하고 측정하기 어렵지만, “연봉을 10% 올리겠다”는 목표는 명확하고 구체적입니다.
이러한 정량화의 편의성 때문에 우리는 돈을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삶의 질 향상은 측정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적 소비의 딜레마: 누구를 위한 과시인가?
핵심 관계에 집중하기
모건 하우절은 자신의 소비 철학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는 좋은 것들을 좋아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중요한 구분선을 제시합니다. 바로 ‘누구를 감동시키려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에게는 아내, 아이들, 부모님, 그리고 몇몇 친구들로 이루어진 7명 정도의 핵심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돈을 쓸 의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그룹을 넘어서면 관심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SNS 시대의 과시 소비
현대의 인스타그램과 틱톡 문화는 이러한 딜레마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푸에르토리코 해변에서 만난 인플루언서의 사례는 현대 소비 문화의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휴가를 즐기러 온 곳에서도 끊임없이 콘텐츠를 제작하며 ‘일’하는 모습은 과연 진정한 행복인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보이지 않는 부의 역설
진짜 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워렌 버핏의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가 세계 최고 부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없습니다. 진정한 부는 구매하지 않은 자동차, 사지 않은 거대한 집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는 소비하지 않고 저축한 돈, 미래의 자유를 위해 보존한 자산에 있습니다.
가시적 소비의 함정
우리가 길에서 보는 람보르기니나 맨션은 그 소유자의 진정한 재정 상태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금으로 구매한 것일 수도 있고, 과도한 레버리지로 위험을 감수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신체적 건강과 대조적입니다. 누군가의 체격은 바로 눈에 보이고, 그 사람의 노력과 결과를 직접적으로 반영합니다. 하지만 재정적 건강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 외적 지표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감정이 이끄는 결정의 힘
스프레드시트를 넘어선 직감
모건 하우절과 그의 아내가 첫 집을 구매할 때의 경험은 인상적입니다. 정보 수집을 위해 단순히 ‘구경’하러 간 집에서, 아내가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이 집 너무 좋아!”라고 외쳤던 순간, 모든 스프레드시트와 계산은 의미를 잃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감정적 결정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아침, 신생아를 집으로 데려온 소중한 순간들은 어떤 재정적 계산으로도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닙니다.
집의 진정한 가치: 공간이 아닌 관계
간접적 행복의 경로
큰 집 자체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집이 친구들을 초대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깊게 만드는 공간 역할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는 소비의 핵심 원리를 보여줍니다. 물건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그 물건이 가져다주는 관계적, 경험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라는 최고의 투자 수익
돈을 도구로 활용하기
모건 하우절이 15년간 일관되게 강조해온 철학의 핵심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그에게 돈은 복잡하고 스트레스받는 삶이 아니라 단순하고 평온한 삶을 위한 도구입니다.
여기서 ‘단순하다’는 것은 검소하거나 값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돈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통제권
그가 돈에서 원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자신의 일정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 원하는 때 원하는 사람과 일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시간에 대한 주도권입니다. 이는 돈을 수단으로 보는 성숙한 관점을 보여줍니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 위한 실천 방안
핵심 관계 파악하기
먼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들의 사랑과 존경을 얻기 위한 소비는 의미가 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난 과시적 소비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과 이성의 균형
중요한 소비 결정에서는 스프레드시트만큼이나 직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감정적 결정이 장기적으로도 만족스러운지 신중히 고려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부의 가치 인식
타인의 가시적 소비에 현혹되지 말고, 진정한 부는 소비하지 않은 돈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비를 통한 자아실현
돈 쓰기의 예술은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의미 있게 소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모건 하우절의 통찰은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돈을 쓰고 있는가? 그리고 그 소비가 진정으로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가?
진정한 부는 과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이라는 형태로 우리 삶에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참고 자료: Barry Ritholtz, “At the Money: Morgan Housel on The Art of Spending M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