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2500년 전 키케로의 경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오로지 바보만이 그 실수를 고수한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남긴 이 말이 2025년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는 매일 이런 모습을 목격하고 있으니까요. 명백한 근거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 반박당해도 계속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만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 교수가 발표한 연구 “Understanding Human Stupidity in a Post-truth Area”는 바로 이런 현상의 본질을 파헤칩니다. 왜 가장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조차 때로는 놀랄 만큼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는지, 그리고 왜 우리 시대에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어리석음의 정의: 단순한 무지를 넘어서
진짜 문제는 ‘학습 거부’에 있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어리석음을 단순히 지능이 낮은 상태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어리석음을 “추론, 계획, 문제 해결, 추상적 사고, 복잡한 생각,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영역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이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직장에서 만나는 학습 거부 사례:
- 항상 동료들에 대해 불평만 하면서도 이직은 절대 시도하지 않는 사람
- 새로운 기술로 승진한 동료를 부러워하면서도 본인은 교육 프로그램 참여를 거부하는 사람
-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방법을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현실의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행동을 수정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경제 분야의 고집스러운 믿음들
경제학 분야에서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여전히 “세금을 깎으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면 세금 감면의 혜택은 주로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아요.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그녀는 근거 없는 감세 정책을 고집하다가 영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실패는 영국 국민들에게 무분별한 감세 정책의 위험성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 우리는 왜 비합리적일까?
생존을 위한 직감적 판단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해하려면 진화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수십만 년 동안 생존해온 환경에서는 빠른 직감적 판단이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원시시대 생존 시나리오:
덤불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그림자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세요. 이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 신중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 일단 도망치고 나중에 생각하기
첫 번째를 선택한 조상들은… 아마 우리의 조상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 그림자가 맹수였다면 분석이 끝나기 전에 아침 식사가 되었을 테니까요.
현대 사회에서 역효과가 되는 원시적 본능
문제는 이런 직감적, 감정적 반응 시스템이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경제 정책이나 과학적 사실을 판단할 때도 우리는 여전히 ‘직감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어요.
소셜미디어 시대: 어리석음의 증폭기
과거 vs 현재: 전파 속도와 범위의 차이
과거에는 음모론이나 잘못된 정보를 믿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동네 술집에서 몇 명의 사람들에게만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X(구 트위터), 틱톡,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순식간에 정보를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사례에서 보듯이, 부자이거나 유명하다고 해서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에요.
마을 광장에서 바보들의 축제로
머스크가 트위터를 ‘디지털 마을 광장’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바보들이 모이는 광장’에 가까워 보입니다. 여기서 협잡꾼들과 포퓰리스트들은 자신들의 거짓말과 잘못된 정보를 산업적 규모로 퍼뜨릴 수 있어요.
집단 심리의 위험성:
- 개인은 비교적 합리적이지만, 집단이 되면 감정에 휩쓸리기 쉬워집니다
- 누군가 집단의 결점을 지적하기가 어려워집니다
- 집단 본능이 개인의 비판적 사고를 억누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나치는 이를 대규모 군중집회를 통해 체계적으로 악용했습니다. 현재 소셜미디어는 전 세계 포퓰리스트들에게 같은 도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음에 맞서는 4가지 전략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1. 강력한 제도적 견제장치
독일의 엄격한 언론 규제 사례:
독일이 언론 자유에 대해 가장 엄격한 법률을 가진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나치 시대에 견제받지 않은 무제한 언론 자유가 국가에 끼칠 수 있는 피해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죠.
그 결과가 놀랍습니다. 메타(페이스북)의 전체 콘텐츠 조정자 중 약 13%가 독일어를 담당하지만, 전체 페이스북 게시물 중 독일어는 1-2%에 불과해요. 이는 독일인들이 더 공격적이어서가 아니라, 법적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2. 비웃음거리로 만들기
야유와 조롱은 언제나 폭군과 어리석음에 대항하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누군가를 비웃는다는 것은 그들의 주장의 허점을 알고 있다는 신호이며, 이는 고집스러운 신념의 갑옷에 균열을 만들 수 있어요.
3. 교육을 통한 점진적 변화
교육이 항상 효과적이지는 않지만, 때로는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사실과 데이터로 바꿔나가는 모든 사람과 함께할 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집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입니다. 오히려 반대의 증거 앞에서도 신념을 고수하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에요.
4. 역설적 개입: 실패를 통한 학습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할 때는 바보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도록 놔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벽에 부딪혀야 깨닫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리즈 트러스의 실패가 좋은 예입니다. 그녀의 무모한 감세 정책이 영국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었지만, 덕분에 영국 국민 대다수가 그런 정책의 위험성을 확실히 깨달았어요.
어리석음과의 끝없는 싸움
탈진실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바로 이런 고집스러운 어리석음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동시에 잘못된 정보의 전파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어요.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강력한 제도, 건전한 비판 정신, 지속적인 교육, 그리고 때로는 실패를 통한 학습이라는 도구들이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부터 변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증거 앞에서 기존의 믿음을 수정할 용기, 그리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최근에 자신의 생각을 바꾼 경험이 있나요? 그런 경험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참고 자료: Klement on Investing, “Understanding human stupidity in a post-truth 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