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철학 박사가 방산 기업을 창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그것도 9.11 테러를 계기로 말이죠. 오늘 소개할 알렉스 카프(Alex Karp)는 신고전주의 사회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도였지만, 현재는 팔란티어(Palantir)라는 데이터 분석 기업의 CEO입니다. 2011년, 그의 회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미국 특수부대와 함께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고 사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철학자가 어떻게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테크 기업의 창업자가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가 평생 고수해온 신념은 무엇일까요?
아웃사이더로 시작된 삶
알렉스 카프는 독특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유대인 소아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흑인 예술가였죠. 그의 주변 대부분은 예술가들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제 유년 시절은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스탠포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유학을 떠나 신고전주의 사회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이건 솔직히 말해서 백수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배웠지만 가장 돈을 못 버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나 다름없었죠.
철학에서 사업으로, 그 전환점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카프는 명확합니다.
그 문제에 정말 열정적이었거든요. 저는 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선시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연구했던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구 사회의 토대는 무엇인가?
시민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하지만 학계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카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습니다.
남들에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일들로 연구자들은 치열하게 싸우죠. 제가 하던 일은 전 세계에서 30~40명 정도만 이해할 수 있는 분야였을 거예요.
실제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었던 그는 사업의 세계로 눈을 돌렸습니다. 처음에는 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사업 한번 해보는 건 어때요? 제가 도와줄게요”라고 제안하며 컨설팅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스탠포드 동문인 피터 틸(Peter Thiel, 페이팔 공동창업자)과 함께 팔란티어를 창업하게 됩니다.
9.11 테러가 바꾼 인생의 방향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카프는 결심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에 실리콘 밸리가 참여해야 하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팔란티어의 접근법은 독특합니다. 일반적인 데이터 마이닝이 아닌 ‘반(反)데이터 마이닝’ 방식을 사용합니다. 페이팔에서 사용하던 이 방법은 대규모 데이터 세트 전체에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대신, 예측 모델을 통해 특정 개인에 초점을 맞춥니다.
카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당신이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춰 범죄에 연루된 사람일 수 있다는 여러 데이터를 찾아낼 겁니다. 대규모 데이터에서 테러범을 걸러내려 한다면 무고한 시민들이 걸릴 수도 있죠. 반면 우리의 방법은 개인에 집중한 정확하고 정밀한 방법입니다.
팔란티어가 제공하는 두 가지 핵심 가치는 명확합니다.
- 첫째, 복잡한 데이터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바꿔 대규모 데이터에서 테러범을 정확히 찾아냅니다.
- 둘째, 데이터 세트를 투명하게 공개해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명확히 밝힘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보호합니다.
실리콘 밸리만이 할 수 있는 것
왜 정부가 직접 이런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을까요? 카프는 실리콘 밸리의 독특한 문화를 지적합니다.
우리에게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지만, 소프트웨어 제품이 성공하려면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사업을 키워나가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일단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사업을 만들고 나서, 어떻게 돈을 벌지 고민합니다.
팔란티어는 시장에 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3년 동안 수익이 전혀 없었죠. 다른 곳이었다면 사람들이 비웃었을 겁니다. 하지만 벤처 캐피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3년 동안은 수익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크게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팔란티어에는 영업사원이 없습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제품을 보여주고 그들이 가진 것과 비교해보라고 함으로써 제품을 판매합니다.
제품의 우수성 자체가 영업 도구인 셈입니다.
자유와 안보 사이의 균형
카프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테러 위험을 과소평가하거나,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한다면, 우리는 질 겁니다.
그는 민주주의의 승리는 국민의 단결과 지지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정부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시민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그것은 테러범들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테러범들의 공격은 계속될 겁니다. 우리가 그들을 막을 방법을 찾을 때마다, 그들은 다시 침투할 방법을 찾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개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 그들을 막을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순응하지 마라: 카프의 핵심 철학
알렉스 카프가 평생 고수해온 가치는 단 하나입니다.
순응하지 않는 것.
그는 현대 조직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오늘날 조직들은 마찰을 피하는 데 급급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문화를 지나치게 중시해 왔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결국 조직을 창의적인 성과가 아닌, 그 반대 방향으로 이끕니다.
카프는 코미디언 존 멀레이니의 말을 인용합니다.
호감을 받는 것은 일종의 감옥입니다(Likability is a jail).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순간, 우리는 창의성을 잃게 됩니다.
프랑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연구는 이를 뒷받침합니다. 지라르는 원숭이들이 똑같은 바나나 여러 개 중에서 한 마리가 선택한 특정 바나나를 두고 다투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그 바나나는 특별할 게 전혀 없었습니다. 첫 번째 원숭이가 선택했다는 사실만이 다른 원숭이들의 욕망을 자극했죠. 이것이 바로 ‘모방적 욕망(mimetic desire)’입니다.
카프는 말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세상을 배우는 방식은 모방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모방은 창의성에 독이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창조적 유아기의 단계를 평생 벗어나지 못합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혁신’이라고 불리는 것의 상당수는 사실 과거의 성공을 반복하려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창조는 다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반항적 행위는—백지에 시를 쓰든,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든, 화면에 코드를 짜든—본질적으로 기존의 것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새로운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연한 각오를 의미합니다.
비순응의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1841년,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그의 명작 <자기신뢰(Self Reliance)>에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비순응적인 태도에 대해 세상은 불쾌감이라는 채찍을 가한다(For nonconformity, the world whips you with its displeasure).
카프는 이 경고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스타트업이든 기존 강자를 위협하려는 조직이든, 집단의 비난을 감수하기를 꺼리는 무분별한 순응은 파국적일 수 있습니다.
철학도에서 테크 기업 창업자로, 학계에서 사업의 세계로, 카프의 여정은 순응을 거부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선택했고, 30~40명만 이해하는 연구 대신 세상에 실제 영향을 미치는 일을 선택했으며, 편안한 학계 대신 테러와 맞서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순응을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집단의 불쾌감이라는 채찍을 맞을 각오가 되어 있나요?
진정한 창조는 기존의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연한 각오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참고 자료:
- Charlie Rose Interview (2009)
- American Optimist Interview (2023)
- CNBC Interview (2025)
- “The Technological Republic”, Alex Ka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