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사인하기 전,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열정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막상 중반부터 클라이언트와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합니다.
이 기능도 당연히 포함되는 거 아니었나요?
처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서로 다른 기억, 서로 다른 기대. 결국 프로젝트는 분쟁으로 치닫고, 받아야 할 대금은 미뤄지고, 다음 프로젝트 일정까지 꼬이게 됩니다.
사실 이런 문제의 90%는 계약서에 사인하기 훨씬 전, 바로 첫 미팅에서 이미 예고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이죠.
오늘은 수많은 프리랜서 개발자들이 겪은 실패와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첫 미팅에서 반드시 감지해야 할 위험 신호들을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다면, 여러분은 프로젝트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진짜 좋은 클라이언트를 선별하는 안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프로젝트 분쟁의 진짜 원인: 동기화의 실패
많은 프리랜서 개발자들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 코딩 실력이 뛰어나면 프로젝트는 성공한다”는 믿음입니다. 물론 기술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프로젝트를 망치는 건 대부분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동기화의 실패’입니다.
클라이언트는 A를 기대하고, 개발자는 B를 준비합니다. 클라이언트는 “당연히 이 정도는 포함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개발자는 “이건 추가 과업이니 별도 비용이겠지”라고 판단합니다. 서로 다른 주파수에서 대화하는 거죠.
성공적인 미팅이란 이 동기화 수준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첫 단계는 바로 위험 신호를 정확히 감지하는 것입니다.
계약 전 단계: 이런 신호가 보이면 경계하세요
1. 불분명한 요구사항 – 가장 위험하지만 가장 흔한 함정
이 사이트랑 똑같이 만들어주세요.
얼핏 보면 명확한 요청 같죠? 하지만 이만큼 위험한 말도 없습니다. 그 사이트의 모든 기능을 여러분이 미리 파악할 수 있나요? 숨겨진 결제 시스템, 복잡한 쿠폰 로직, 회원 등급별 권한 관리… 막상 뜯어보면 엄청난 기능들이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불분명함의 기준은 단 하나, ‘서면으로 정리할 수 있느냐’입니다.
서면으로 만들 수 있어야 명확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불명확한 겁니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가 “SNS 로그인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면, 이는 “필요 없습니다”와 과업의 차이가 큽니다. 단순해 보이는 이 기능 하나가 실제로는 OAuth 인증, 사용자 정보 매핑, 보안 처리 등 상당한 개발 공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결제와 쿠폰 기능입니다. 클라이언트들은 “결제 기능 좀 넣어주세요”라고 가볍게 말하지만, 개발자에게 이건 엄청난 차이를 만듭니다. 단순 일회성 결제인가요, 정기 결제인가요? 부분 취소는 가능해야 하나요? 쿠폰은 정액 할인인가요, 정률 할인인가요? 중복 사용은요? 유효 기간 설정은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이 불분명한 진짜 이유
불분명한 요구사항 뒤에는 보통 두 가지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1. 바빠서 (또는 우선순위가 낮아서)
이 경우 클라이언트는 사실상 “알아서 해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알아서’와 클라이언트가 생각하는 ‘알아서’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명확한 정리를 요청했는데도 계속 거부한다면, 이 프로젝트는 예상치 못한 업무 범위와 퀄리티 요구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2. 정말 몰라서
이건 사실 해결 가능한 문제입니다. “이런 포맷으로 이 정도 수준으로 정리해주시면 됩니다”라고 가이드만 주면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정리를 시작합니다.
주목할 점은 개발 지식이 있는 클라이언트도 불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백엔드 몇 개만 하면 돼요”, “중간중간 협의하면서 가죠”… 이런 말 뒤에는 작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우선순위가 낮아서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2. 낮은 견적 요구 – “일단 시작하고 조정하죠”의 위험성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정 단가는 1,000만 원입니다. 그런데 클라이언트가 800만 원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800에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과업을 좀 줄여보시죠. 충분히 협조하겠습니다.
이런 구두 합의는 거의 대부분 분쟁으로 이어집니다. 왜일까요?
서로가 빼려고 하는 기능의 공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클라이언트는 ‘SNS 로그인’ 정도를 제외하려고 생각하고, 개발자는 ‘정산 기능’을 빼려고 생각합니다. 서로 200만 원짜리 작업을 빼려는 건데, 생각하는 작업이 전혀 다른 거죠.
더 큰 문제는 외주 프로젝트에는 항상 변수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합의한 800만 원이라는 견적은 “더 이상의 변수는 없다”고 가정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예상 그대로만 흘러가는 프로젝트는 정말 드뭅니다.
수행하면 손해인 견적의 프로젝트는 차라리 계약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3. 요구사항 대비 짧은 기간 – D-day의 압박
요구사항에 비해 기간이 현저히 짧고, 명확한 D-day가 정해진 프로젝트는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개발자는 “시간이 없으니 몇몇 기능은 빠지겠지”라고 가정하고, 클라이언트는 “모든 기능이 D-day까지 완성되겠지”라고 가정합니다. 이 어긋난 가정이 문제의 씨앗입니다.
특히 클라이언트에게 그 D-day가 비즈니스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시점이라면 더욱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 대상 서비스를 새 학기 시즌에 맞춰 출시해야 하는 경우, 그 시즌을 못 맞추면 클라이언트의 비즈니스 자체가 실패하는 거니까요. 이런 상황에서는 분쟁의 강도가 훨씬 더 커질 수 있습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계약 전에 D-day를 기준으로 ‘디데이 전까지 완성할 것’과 ‘디데이 이후 완성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세요.
4. “이 정도는 쉽잖아요” – 난이도를 낮춰 말하는 클라이언트
이런 건 요즘 다 하잖아요.
제 친구한테 물어보니 별로 안 어렵다던데요?
이 정도는 알아서 해주실 수 있죠?
이런 발언들은 강력한 위험 신호입니다. 클라이언트가 프로젝트의 난이도를 임의로 낮춰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문제는 이런 클라이언트와 일하면 나중에 추가 과업이 발생해도 ‘그것도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추가 비용 지급 자체를 설득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또한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니 미팅에 성실히 참여하지 않거나 피드백을 주지 않는 등 소통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5. 약속을 지키지 않는 클라이언트 – 계약 전 모습이 계약 후 모습
첫 미팅 일정을 어기거나, 주기로 한 자료를 제때 주지 않거나, 연락이 잘 안 되는 클라이언트.
계약 전에 보인 모습은 계약 후에도 반복됩니다. 오히려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계약을 하고 나면 클라이언트는 “이미 계약했으니까”라는 심리로 약속과 소통을 더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계약 전에 약속을 어겼던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 진행 중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결과물 검수를 차일피일 미뤄 대금 지급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건 개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약속된 미팅 일자와 소통 방식을 잘 지켜야 합니다. 클라이언트 역시 이를 통해 여러분의 신뢰도를 판단하니까요.
6. 사공이 너무 많은 배 – 의사결정권자가 여럿인 경우
2~3명의 공동 창업자나 친구들이 미팅에 함께 들어와서 각자 다른 질문을 하고, 현장에서 의견 합의가 안 되는 경우를 경험해 보셨나요?
주로 초기 스타트업처럼 팀을 꾸린 지 얼마 안 된 곳에서 발생합니다. 동등한 레벨의 의사결정권자가 많으면 프로젝트의 안정성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요구사항이 계속 바뀌고 프로젝트가 산으로 갈 확률이 높아지죠.
이런 경우, 정중하게 요청하세요.
프로젝트의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 최종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할 분이 한 분이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이 요청을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계약서 작성 단계: 마지막 관문의 위험 신호들
모든 확인을 마치고 이제 계약서를 작성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1. 계약서 작성 거부 – 가장 심각한 레드 플래그
“금액도 작은데 뭘”, “일정도 짧은데 그냥 하시죠.”
계약서 작성을 거부하는 건 가장 심각한 위험 신호입니다. 물론 구두 계약이나 카톡도 법적 효력은 있습니다. 하지만 분쟁이 생겼을 때 검수 기간, 하자보수 범위, 지적재산권 등 아무것도 합의된 게 없으니 양쪽 모두 극도로 불리해집니다.
특히 소규모 개인 사업자분들이 수주가 급해서 계약서 없이 진행하다가 탈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문제 해결하느라 다음 프로젝트 수주를 못하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계약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2. 이면 계약서 작성 요청 – 절대 수용하면 안 되는 제안
보여주기용 계약서를 하나 쓰고, 실제로는 다른 내용의 계약서를 따로 쓰자는 제안.
주로 정부 지원 사업에서 자금 집행 마감일 때문에 발생합니다. “일단 지원금 정산을 위해 A 계약서(완료된 것처럼)를 쓰고, 실제 업무는 B 계약서(이면 계약)로 따로 진행하죠”라는 식입니다.
이는 불법의 소지가 있으며, 분쟁이 생겼을 때 어떤 계약서가 우선인지 불분명해져 여러분의 권리를 지키기 어려워집니다.
자금 집행일이 정해진 경우에는 이면 계약이 아니라, 디데이까지 완료되지 못한 부분을 하자보수 기간에 진행하는 것으로 원본 계약서에 명시하는 게 정답입니다. 이렇게 해도 자금 지원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3. 대금 분할 거부 – 볼모 잡힌 개발자
일반적으로 금액이 1천만 원 이상 또는 기간이 2달 이상 되는 프로젝트는 과업을 나눠서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게 안전합니다.
예를 들어 3천만 원, 6개월짜리 프로젝트를 통으로 계약하면, 중간에 분쟁이 났을 때 3천만 원 전체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을 따져야 합니다. 하지만 1차, 2차로 나누면 1차는 완료된 것으로 끝내고 2차에 대해서만 논의할 수 있습니다.
이를 거부하고 ‘100% 잔금 지급’을 고수하거나 ‘잔금 비중 80%’처럼 과도하게 높게 설정하는 클라이언트는 경계해야 합니다. 개발자는 프로젝트 후반부로 갈수록 불리해지고, 추가 과업이 생겨도 전체 대금이 볼모로 잡혀 협상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대금은 실제 과업 비중에 맞춰 나누는 게 원칙입니다.
4. 현금 대신 지분이나 수익 셰어 –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우리 회사 지분을 주겠다”, “서비스 오픈하면 수익금을 나눠주겠다”, 혹은 ‘어음’으로 지급하겠다는 제안.
초기 스타트업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 끝날 사람이 아니라 동업자를 찾는다”는 말과 함께 자주 나옵니다. 클라이언트의 진심일 수는 있지만, 그 미래의 수익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계약서상의 현금 계약이 원칙입니다.
위험 신호를 감지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 일부는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위험 신호가 하나라도 있으면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하나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위험 신호는 ‘프로젝트를 드랍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더 철저히 준비하고 확인하라’는 신호입니다. 프로젝트의 성공은 하나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위험 신호들을 감지했을 때, 해당 부분을 더 꼼꼼히 문서화하고, 더 명확히 합의하고, 더 구체적으로 계약서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위험을 인지했다면 그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 됩니다.
코딩 실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 리스크 관리도 역량입니다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단순히 코딩을 잘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고, 이를 안전하게 유도하고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프로젝트 역량입니다.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은 그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 기회입니다. 오늘 살펴본 위험 신호들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클라이언트와 기대 수준을 꼼꼼하게 ‘동기화’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이런 철저한 준비는 여러분을 단순한 ‘개발 용역’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전문 파트너’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이 과정이 클라이언트와의 신뢰를 구축하고, 나아가 프로젝트를 안정적인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튼튼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다음 프로젝트가 성공적이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성공의 시작은 바로 오늘, 이 위험 신호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