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 솔루션은 정말 혁신적인데, 왜 고객들이 선택하지 않을까?
기술력은 최고인데, 왜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지?
스타트업의 90%가 실패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고객이 원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서”라고만 설명되곤 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고객의 진짜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실제 스타트업 사례를 통해 ‘문제 정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제대로 된 문제 정의를 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억 원짜리 농업 로봇이 실패한 이유
친환경 농업의 혁신, 그리노이드의 등장
2018년, 블루포인트 데모데이에 한 스타트업이 등장했습니다. 이름은 그리노이드(Greenoid), 친환경 농업을 위한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하는 회사였습니다. 창업자는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비전을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농약 없이도 논에서 잡초를 제거할 수 있는 자율주행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AI 기술로 벼와 잡초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다리형 구조 덕분에 진흙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친환경 농업의 미래입니다.
듣고 있으면 정말 그럴듯했습니다. 기술도 혁신적이고, 친환경이라는 가치도 훌륭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노이드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이렇게 나열했습니다.
- 첫 번째, 농약의 건강 문제입니다.
- 제초제가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들, 미국에서 발생한 거액의 배상 소송 사례를 들며 농약의 위험성을 강조했습니다.
- 두 번째, 친환경 농법의 비효율성입니다.
- 우렁이를 이용하거나 오리를 풀어놓는 전통적인 친환경 농법은 비용이 60% 증가하고 노동 시간은 70%나 더 들어간다는 데이터를 제시했습니다.
- 세 번째, 소비자 불신 문제였습니다.
- 친환경이라고 팔리는 농산물에서도 농약이 검출되는 사례가 있어 소비자들이 불안해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 네 번째, 기술 적용의 어려움입니다.
- 논은 진흙 환경이라 일반 바퀴형 기계는 빠지기 쉽고, 강한 햇빛과 바람 때문에 첨단 기술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으로 1억 원짜리 자율주행 로봇을 제시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영농법인을 타겟으로 하고, 중기적으로는 일반 농민용 센서로 확장하며, 장기적으로는 스마트팜까지 진출한다는 야심 찬 계획도 함께 발표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완벽해 보였습니다. 문제도 명확하고, 해결책도 혁신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투자자들은 선뜻 투자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왜 후속 투자를 받지 못했을까요?
그리노이드가 놓친 세 가지 치명적 실수
발표를 자세히 뜯어보니 이유가 보였습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였지만, 문제 정의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던 겁니다.
첫 번째 실수: 타겟 고객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노이드가 나열한 문제들을 다시 보면, 사실 누구를 위한 제품인지 헷갈립니다. 농약 건강 문제는 주로 소비자가 걱정하는 것이고, 친환경 농법의 비효율성은 농민이 느끼는 문제입니다. 소비자 불신은 다시 B2C 시장 이야기인데, 정작 타겟으로 삼은 건 B2B인 영농법인입니다.
한 회사가 소비자, 농민, 영농법인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각자가 원하는 게 완전히 다른데 말입니다. 소비자는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고, 농민은 적은 비용으로 수익을 내고 싶어 하며, 영농법인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더 큰 문제는 사업 계획을 보면 고객이 계속 바뀐다는 점입니다. 2018년에는 대규모 영농법인, 2019년에는 일반 농민, 2020년에는 스마트팜으로 확장한다고 했습니다. 각 고객군마다 필요한 제품도, 가격대도, 판매 방식도 완전히 다를 텐데요.
두 번째 실수: 진짜 문제를 놓쳤습니다
발표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농약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도 맞고, 친환경 농법이 비효율적이라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정작 고객인 농민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만약 대규모 영농법인 대표를 직접 만나서 물어봤다면, 아마 이런 대답을 들었을 겁니다.
농약이 건강에 나쁘다는 건 알죠. 그런데 당장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제초 작업을 할 인력을 구하려면 하루에 10만 원 넘게 줘야 하는데, 적기에 사람을 못 구하면 수확량이 떨어지거든요.
친환경이 좋은 건 알아요. 근데 우렁이 농법 해보니까 관리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비용도 60%나 더 들고요. 친환경 인증을 받아서 쌀을 비싸게 팔 수 있다면 모를까, ROI가 안 나오면 지속하기 힘들어요.
1억 원 넘는 로봇이요? 글쎄요. 정말 효과가 있을지 확신이 서야 살 텐데요.
결국 농민이 진짜 고민하는 건 ‘건강’이나 ‘환경’보다는 ‘수익’과 ‘인건비’입니다. 물론 친환경이 중요하지만, 그건 수익이 나는 범위 안에서 고려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세 번째 실수: 진짜 경쟁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노이드는 우렁이 농법이나 오리 농법을 경쟁 상대로 봤습니다. 하지만 정말 큰 경쟁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제초제입니다.
농민들이 왜 여전히 제초제를 쓸까요? 간단합니다. 싸고 효과적이거든요. 1만 평 논에 제초제를 쓰는 비용이 30만 원 정도라면, 인력을 고용하면 300만 원이 듭니다. 우렁이 농법은 그보다 더 비쌉니다. 1억 원짜리 로봇은 또 어떻고요.
더 큰 경쟁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농민들은 잡초가 좀 있어도 그냥 둡니다. 수확량이 조금 줄어들긴 하지만, 돈과 시간을 들여서 제초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거죠.
그리노이드는 이런 진짜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 건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맥킨지가 알려주는 제대로 된 문제 정의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문제 정의를 할 수 있을까요? 세계 최고의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사용하는 방법론을 살펴보겠습니다.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단계가 전부를 결정합니다
맥킨지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때 네 단계를 거칩니다.
- 1단계: 문제를 정리하고 구조화하여 진짜 문제를 명확히 합니다.
- 2단계: 가설을 세워 분석합니다.
- 3단계: 가설을 검증합니다.
- 4단계: 해결책을 도출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첫 번째 단계입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문제를 정의하면, 나머지 단계가 아무리 완벽해도 의미가 없거든요. 마치 잘못된 목적지를 설정한 내비게이션처럼, 열심히 달려도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MECE 원칙: 중복 없이, 누락 없이
맥킨지에서 가장 기본으로 사용하는 원칙이 MECE입니다. Mutually Exclusive and Collectively Exhaustive의 약자인데요, 쉽게 말하면 ‘중복되는 부분 없이 명확하게 구분하되, 빠짐없이 전체를 포괄하라’는 뜻입니다.
그리노이드의 문제 정의를 MECE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명확합니다. 농약 건강 문제는 소비자 관점이고, 친환경 농법의 비효율성은 농민 관점이며, 소비자 불신은 다시 소비자 관점이고, 기술 적용 어려움은 기술 관점입니다. 관점이 뒤섞여 있어서 어떤 고객의 문제인지 불명확하죠.
만약 MECE 원칙을 적용했다면 어땠을까요? 먼저 고객별로 명확하게 구분했을 겁니다. 대규모 영농법인의 문제는 뭔지, 소규모 농가의 문제는 뭔지, 소비자의 문제는 뭔지 따로따로 정리하는 거죠. 그리고 그중에서 우선 집중할 타겟을 선택하는 겁니다.
3C 분석: 시장, 경쟁, 자사를 함께 봐야 합니다
문제를 정의할 때는 세 가지 관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바로 Customer(고객/시장), Competitor(경쟁자), Company(자사)입니다. 이걸 3C 분석이라고 부르죠.
그리노이드가 만약 대규모 영농법인을 타겟으로 명확히 정했다면, 3C 분석은 이렇게 됐을 겁니다.
- Customer 분석을 보면, 대규모 영농법인들은 연간 인건비 부담이 크고, 친환경 인증을 받으면 쌀을 50%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초 작업을 연 3~4회 해야 하는데, 1만 평당 약 300만 원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 Competitor 분석을 하면, 현재 영농법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제초제는 저렴하고 효과적이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인력을 고용하면 비용이 비싸고 적기에 구하기 어렵습니다. 우렁이나 오리 농법은 친환경 인증은 가능하지만 비용이 60% 증가하고 관리가 어렵죠.
- Company 강점은, 자율주행 로봇으로 시간당 1,000평을 처리할 수 있고, 1회 투자로 반복 사용이 가능하며,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하면 문제 정의가 명확해집니다.
대규모 영농법인은 친환경 인증을 받아 프리미엄 가격을 받고 싶지만, 기존 친환경 농법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수익성이 나지 않는다. 우리 로봇은 초기 투자 비용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인건비를 절감하면서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그리노이드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 실전 적용
이제 배운 방법론을 적용해서 그리노이드의 문제를 다시 정의해보겠습니다.
Step 1. 고객을 명확하게 나누기
먼저 농업 시장을 MECE 원칙에 따라 나눠봅시다.
- 대규모 영농법인은 15만 평 이상을 경작하는 약 2,800개 법인입니다. 이들은 자본력이 있고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중소규모 농가는 1만 평에서 15만 평 사이를 경작하는 약 50,000개 농가로, 가족 경영에 일부 인력을 고용합니다.
- 소규모 농가는 1만 평 이하를 경작하는 약 200,000개 농가로, 주로 가족만으로 운영합니다.
이 중에서 그리노이드는 우선 대규모 영농법인에 집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본력이 있어서 1억 원대 로봇을 구매할 여력이 있고, 규모가 크기 때문에 ROI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이들은 친환경 인증을 받아 프리미엄 가격을 받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Step 2. 그 고객의 진짜 문제 파악하기
대규모 영농법인 대표를 만나서 깊이 있게 인터뷰했다면,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우리 법인은 연간 제초 작업을 3~4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 구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적기에 제초를 못 하면 수확량이 10~20%나 떨어져요.
제초제를 쓰면 싸고 간편하긴 한데,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없어요. 친환경 인증을 받으면 일반 쌀보다 50%나 비싸게 팔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우렁이 농법도 시도해 봤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관리가 어려워서 포기했습니다.
만약 인건비를 크게 절감하면서도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다면, 초기 투자가 좀 있어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ROI만 맞는다면요.
이제 문제가 명확해졌습니다. 대규모 영농법인의 진짜 문제는 “친환경 인증을 받아 프리미엄 가격을 받고 싶지만, 기존 친환경 농법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수익성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Step 3. 명확한 문제 정의 문장 만들기
이 방법론을 적용하면 문제 정의 문장을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15만 평 이상 대규모 영농법인은 연 3~4회 논의 제초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초제를 사용하면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없어 프리미엄 가격(일반 쌀 대비 50% 더 비싼 가격)을 받지 못합니다. 인력을 고용하면 비용이 들고 인력 수급이 불안정해 적기에 작업하지 못해 수확량이 10~20% 감소합니다. 우렁이나 오리 농법을 시도하면 비용이 60% 증가하고 관리가 어려워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힘듭니다.
원래 그리노이드의 문제 정의와 비교해보세요. 어떤가요? 훨씬 명확하지 않나요? 누구의 문제인지, 왜 기존 방법으로 안 되는지, 얼마나 심각한지가 구체적인 숫자와 함께 드러납니다.
Step 4. 시장 규모도 구체적으로
이제 시장 규모도 명확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겪는 고객은 전국 2,800개 대규모 영농법인입니다. 만약 이들 중 30%가 친환경 전환에 관심이 있고, 그중 10%를 확보하는 게 목표라면, 84개 법인이 타겟입니다. 로봇 한 대 가격을 1억 원으로 잡으면 84억 원의 시장이죠.
ROI도 명확합니다. 15만 평 영농법인이 이 로봇을 사용하면 연간 인건비 절감액이 3,000만 원, 친환경 인증으로 인한 추가 수익이 8,000만 원입니다. 합치면 연간 1억 1,000만 원의 혜택이니, 1억 원짜리 로봇을 사도 1년 만에 회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니 투자자를 설득하기도 훨씬 쉬워집니다.
실전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문제 정의 워크시트
자,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아래 워크시트를 활용해서 여러분의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해보세요.
1단계: 고객 세그먼트 나누기 (MECE 원칙 적용)
- 세그먼트 A: [규모/특징/니즈]
- 세그먼트 B: [규모/특징/니즈]
- 세그먼트 C: [규모/특징/니즈]
우선 타겟: ___________
2단계: 3C 분석하기
- Customer(고객): 누구? 얼마나? 무엇을 원하나?
- Competitor(경쟁자): 현재 대안은? 왜 불만족하나?
- Company(자사): 우리의 독특한 강점은?
3단계: 문제 정의 문장 작성
[타겟 고객]은 [상황]에서 [기존 해결책]을 사용하지만 [왜 안 되는지] 때문에 [어떤 손실/불편]을 겪습니다.
4단계: 체크리스트로 검증하기
- [ ] 타겟 고객이 명확한가?
- [ ] 문제가 정량적으로 표현되었는가?
- [ ] 기존 해결책의 한계가 명확한가?
- [ ] 고객이 돈을 낼 만큼 심각한 문제인가?
- [ ] 경쟁자(무행동 포함)를 이길 수 있는가?
그리노이드 사례에서 배운 핵심 교훈
잘못된 접근
-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 함
- 고객이 계속 바뀜
- 경쟁 분석 부족
- 기술 중심 접근
올바른 접근
- 하나의 타겟, 하나의 문제에 집중
- 명확한 고객 세그먼트 선택
- 진짜 경쟁자(무행동 포함) 파악
- 고객 문제 중심 접근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시작점
스타트업의 90%는 “고객이 원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서 실패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 “고객이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객의 진짜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리노이드는 정말 혁신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AI 기술도 훌륭했고, 자율주행 기술도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누구의, 어떤 문제를, 왜” 해결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았죠.
여러분은 어떤가요?
- 여러분의 고객이 명확한가요?
- 그들의 진짜 문제를 알고 있나요?
- 왜 기존 해결책으로는 안 되는지 설명할 수 있나요?
- 경쟁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나요?
만약 조금이라도 망설여진다면, 오늘 소개한 프레임워크로 다시 한번 점검해보세요.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는 것, 그것이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시작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열정이 아무리 뜨거워도, 문제 정의가 잘못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문제 정의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나머지는 해결 가능한 문제들입니다.
오늘 당장 여러분의 비즈니스 모델을 꺼내서 물어보세요.
우리는 누구의, 어떤 문제를, 왜 해결하는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성공의 길 위에 있습니다.
본 글의 사실 정보는 공개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지만, 이해도 증대를 위해 일부 내용에 주관적 해석 및 가설을 포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