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은 매우 치열한 삶의 전쟁터를 축소해 놓은 곳 같습니다. 새벽에 서울 한복판의 응급실에 가 본 적이 있다면, 응급실에 오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취객이고, 대부분이 술을 마시다 머리가 깨지거나, 어딘가가 부러져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제정신도 아닌 상태라 매우 거친 행동을 하겠죠?
만약 이런 환경을 일터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극한의 상황에서 극한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마음의 건강을 챙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들이 누굴까요? 바로 응급실 의사들입니다.
몸과 마음에 병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인데, 실제로 정신과 의사들이 우울증에 잘 걸린다고 합니다. 인간은 최악의 상황에 처하면 밑바닥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데, 평범한 일상에서도 밑바닥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약 평범한 일상에서도 밑바닥을 수시로 드러내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면, 반드시. 내 삶에서, 주변에서 멀리 떨어뜨려야 합니다. 그들은 인간을 가장한 괴물일 뿐이니까요.
다음은 누군가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응급실 의사로 살아가는 친구에 대한 글입니다. 인간의 밑바닥을 매일 접하며 살아가는 응급실 의사의 고된 삶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응급실 의사를 둔 친구의 이야기
고등학교 때 부터 친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공부를 엄청 잘해서 의대에 갔어. 학교 다닐 동안은 서로 바빠서 연락 거의 못하다가 최근에 연락 닿아서 가끔 보거든?
걔는 응급의학과 가서 응급실 의사로 일하고 있더라. 멋있지?
근데 고등학생 때는 진짜 순하고 누가봐도 몽실몽실하고 착한 범생이 스타일이었는데 응급실 다니더니 인간혐오..? 한국혐오..? 같은 거에 걸린 것 같아.
그렇다고 외국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말끝마다 X조선이 그렇지 뭐~ 또는 X조선 노친네들이 그렇지 뭐~ 이런다?
한번은 만나서 같이 인스타 맛집 놀러갔는데 메뉴판이 전부 영어더라고.
메뉴판 쭉 보면서 뭐 먹을지 고르고 있는데 옆자리 할아버지가 친구 어깨를 탁 잡으면서 “아가씨~ 이거 영어라서 잘 모르겠어. 나 좀 도와줘~” 이러더라고.
나도 물론 싫었지. 갑자기 어깨 잡는 할아버지도 진짜 무례하고.
근데 또 노인 분이 영어 못해서 도움 청하는건데, 대놓고 거절하기도 뭐하고 해서 곤란했는데 친구가 어깨 탁 쳐내면서 대꾸도 안 하고 고개를 휙 돌리더라고.
할아버지가 “어? 어? 아가씨?” 이러면서 계속 말거는데, “아이씨!” 하고 짜증내더니 종업원 불러서 “자리 옮겨주세요!” 이러더라.
옮기면서 할아버지 딱 쳐다보면서 “X발 진짜 조까타서” 이러고 옮겼는데, 그 눈빛이 너무 살벌해서 할아버지도 친구한테 한 마디도 더 못 붙였어.
진짜 뭔가.. 어.. 사람이 바뀐 거 같고 찐 당황..
내가 하고싶긴 하지만 못하는 걸 해 준 기분이 들기도 하고 할아버지한테.. 저래도 되나..?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내가 당황해서 “야..” 했더니 친구가 “야 저런 노인들은 메뉴 추천해주면 맛없다고 와서 돈내놓으라 하고 진상부린다. 인생에 엮이면 안돼. 상대도 하면 안돼. 쳐다도 보면 안 돼.” 이러는 거야.
그 말 하는데 박력이라 해야될지.. 쌓였던 한? 살기? 같은게 느껴진다 해야될지..
평소에는 몽실몽실하고, 순둥하고 내가 아는 친구인데 저소득층의 못 배운 사람들이 약간 억척스러운 행동을 보일 때면, 어떤 폭탄 스위치 같은 게 있어.. 그런게 보일 때면 눈빛이 홱 변해서 싸늘하게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 처럼 쳐다보는데, 박력있다 해야될지.. 그 눈빛 하나로 사람을 제압하는 기세가 있더라고.
또 한번은 길거리에서 파는 국화빵을 사먹으려 하는데 3개만 시켰거든. 그런데 국화빵 아줌마가 갑자기 2개 더 들은 5개짜리 종이봉투를 팍 내밀면서 5개 사먹으라고 하더라고.
5개짜리가 1000원 더 비싸니까 강매하는거지. 근데 그 친구가 손등 스냅으로 봉투 ‘탁’ 쳐내면서, 아줌마는 쳐다도 안 보고 “네 죄송합니다. 3개요” 이러더라고.
아줌마가 그 탁 치는데 밀려가지고 뭐가 좀 우루루 무너졌어. 그래서 아줌마가 “아이고! 이걸 어뜨케 어뜨케!” 이러고 엄살 부리고 있는데, 친구가 무표정하게 “3개요, 3개. 3개. 없어요? 야, 가자.” 그리고 내 손목 끌고 돌아서더라고.
돌아서면서 또 살기 어린 눈빛으로 변해서 인간들 진짜 조까타서.. 이러더라.
나중에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 이야기하는데 “죽을 뻔 한거 살려줘도, 지가 무단횡단 하다 차에 쳐 받쳐서 실려 왔어도 나 한테 돈 내놓으라 그래. X발 노인네들 진짜 그냥 디져버리지.”
진짜 육성으로 이랬음.
그때 싫다기 보단, 음.. 친구가 좀 낯설어 보이기도 하고, 오히려 그게 산전수전 다 겪은 응급의사 같아 보이기도 하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짠하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어.
술 취한 아저씨가 누구랑 싸워서 머리 깨져서 실려와서는 간호사 한테 추근대거나, 고성지르다 끌려나가는 건 예삿일이고, 이미 사지 다 깨져서 죽어서 온 환자를 사망선고 했다고, 유가족이 와서 의사 멱살 잡거나 뭐 던져서 난동부리기도 한대.
하도 난리를 쳐서 제법 애틋한 사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연락 끊긴지 10년은 넘은 자식이라던가, 이런 경우도 많대.
또 한번은 자살시도 하다 실려온 여자를 살려서 돌려보냈더니, 또 똑같은 짓 해서 실려오고, 여자는 자기한테 왜 살렸냐고 악 지르고, 그 부모는 또 자기한테 보험금 얼마냐고 묻고, 그건 보험회사에 물어보라 하면 또 자기한테 악지른대.
만만한 간호사 멱살 붙잡고 진상 부리고, 경비원 호출해서 끌려 나가고, 새벽 4시에 비몽사몽 간에 그 난장판을 보고 있으면, 그냥 가족이 싹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대.
아, 또 생각난게 아동학대 의심되서 경찰에 신고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 마다 부모가 병원에 쳐들어와서 의사 새끼 누구냐고 난동 부리고 간대.
문신 떡칠한 아저씨가 친구를 대놓고 사진 찍으면서 “너 내가 기억했다” 이런 적도 있대.
자긴 애기가 응급실 오는게 싫대. 아기는 너무 좋은데. 응급실에 실려오는 아기 따라오는 부모가 싫대.
그 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너무 깊어서 친구를 비난할 수가 없었어.
자긴 인간의 밑바닥을 너무 많이 봤대. 그래서 바닥을 금방 드러내는 못 배운 인간이 싫대.
안 됐다.. 싶다가도 내 친구같은 의료인이 최전선에서 버티고 있어줘야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응급실 사람들한테 좀 잘 해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