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을수록 더 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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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월급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마음이 한결 넉넉해지는 그 순간 말이죠. “이번 달엔 가족과 외식이라도 해볼까?”, “친구들과 좋은 곳에서 커피 한 잔?”과 같은 고민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내 월급의 몇십 배를 버는 부자들은 어떨까요? 그들이 정말 더 착할까요? 오히려 돈 많은 사람들이 더 탐욕스럽고,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며 더 배려심 깊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이런 궁금증은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자들도 오랫동안 같은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과연 돈이 사람을 더 착하게 만들까요, 아니면 더 나쁘게 만들까요?

56년간의 거대한 실험: 전 세계 234만 명이 참여한 연구

2025년 심리학계에 파장을 일으킨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Psychological Bulletin에 실린 “Social Class and Prosociality: A Meta-Analytic Review”라는 논문은 이 궁금증을 과학적으로 파헤쳤습니다.

연구의 규모가 압도적입니다. 전 세계 60개 사회에서 56년간(1968~2024) 쌓인 471개의 연구를 종합 분석했고, 무려 234만 명의 데이터를 토대로 사회 계층과 친사회적 행동의 관계를 규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설문조사가 아닙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축적된 인류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 것이죠. 마치 인간 본성에 대한 거대한 사회적 실험의 결과물과 같습니다.

두 가지 상반된 가설: 어느 쪽이 맞을까?

연구진은 두 가지 상반된 이론적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위험 관리 관점: “팍팍할수록 서로 도와야 한다”

첫 번째는 위험 관리 관점(Risk Management Perspective)입니다.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은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전략을 택한다는 주장입니다. 상호의존적 관계망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더 공감적이고 협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서울 변두리의 한 원룸촌에서 혼자 살던 취업준비생 김씨는 옆집 대학생이 감기에 걸렸을 때 자신의 마지막 해열제를 나눠줍니다. 자신도 언젠가 아플 수 있고, 그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상호부조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자원 관점: “곳간에서 인심 난다”

두 번째는 자원 관점(Resource Perspective)입니다. 자원이 많은 사람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유가 더 크기 때문에 타인을 도우려는 행동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우리 속담 “곳간에서 인심 난다”가 이 논리를 정확히 요약합니다.

강남의 한 대기업 임원은 후배의 결혼식에 축의금 50만원을 부담 없이 건넵니다. 그에게 50만원은 한 달 생활비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죠. 여유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편견: 공정한 세상에 대한 착각

솔직히 말해보죠. 여러분은 어느 쪽에 더 끌리시나요? 대부분은 첫 번째 관점에 공감할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의리 있게 서로 돕는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죠. 부자들이 착하면 왠지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이런 기대를 심리학에서는 ‘공정한 세상에 대한 착각(just world fallacy)’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신은 공평하다”며 한 사람이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죠.

데이터가 밝힌 충격적 진실

그렇다면 실제 결과는 어땠을까요? 연구진이 밝힌 결론은 우리의 직관과 달랐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조금 더 친사회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즉, 상관계수 “r = .065”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였습니다.

“0.065라니, 너무 작은 수치 아닌가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 세계, 전 연령대, 모든 문화권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패턴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효과 크기 “r = .065”‘작지만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간주됩니다. 마치 매일 아침 1분씩 더 걷는 것이 결국 건강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듯, 이 작은 차이도 수백만 명의 행동에는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음보다는 행동, 비공개보다는 공개

연구에서 발견한 더욱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습니다.

의도보다는 실제 행동에서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 친사회적 의도: r = .039 (약한 관련)
  • 친사회적 행동: r = .079 (더 강한 관련)

이는 부자들이 단순히 착한 마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갑과 시간을 여는 데 더 익숙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의도를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에서 차이가 났던 것이죠.

공개 상황에서 더 적극적으로 베풀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 상위 계층의 친사회적 행동이 더 두드러졌습니다. 반대로 비공개 상황에서는 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부자들이 ‘티 안 나는 선행’보다 ‘인정받는 친절’에서 더 적극적임을 시사합니다. 사회적 명성이나 평판을 고려한 전략적 친절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럼에도 실제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는 의미 있는 혜택이 됩니다.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 현상

이 연구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문화적 보편성입니다. 국가 경제 수준, 불평등 정도, 종교성, 인구 밀도, 문화 규범 등과 무관하게 이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Lithuania, Malaysia, Brazil, Vietnam, Turkey 등에서는 이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Romania, Mexico, Taiwan, Thailand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계층이 더 친사회적 행동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것이 보편적 인간 심리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틀렸다

56년간의 심리학 연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돈이 없으면 가오도 없다.”

물론 이것이 돈이 없는 사람이 덜 착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그 착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울 뿐입니다. 월세와 생활비에 쪼들리는 상황에서 남을 도울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한 가지 희망적인 발견은 행동이 의도보다 더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당신의 좋은 의도를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에 옮길 때, 더 쉽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통찰

이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 자원의 여유는 실제로 친사회적 행동을 촉진합니다. 경제적 안정이 단순히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선순환에도 기여합니다.
  • 작은 실천이 큰 변화를 만듭니다. 거대한 기부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작은 친절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 사회 시스템의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합니다. 개인의 도덕성을 논하기 전에, 사람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우선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신의 경제적 여건이 나아졌을 때와 어려웠을 때를 비교해보세요. 정말로 여유가 있을 때 더 베풀게 되지 않았나요?

결국 중요한 것은 판단이 아니라 이해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친절을 실천하는 것이겠죠.

참고 자료: Wu, J., Balliet, D., Yuan, M., Li, W., Chen, Y., Jin, S., … & Van Lange, P. A. (2025). Social class and prosociality: A meta-analytic review. Psychological Bulletin, 151(3),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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