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행동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일부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특히 투자 시장과 같은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이러한 전략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이토록 어려워할까요? 그리고 언제 이것이 최선의 전략이 될 수 있을까요?
이안류의 교훈: 자연이 가르쳐주는 역설적 대응법
해변에서 수영을 즐기다 보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이안류(rip current)입니다. 미국 생명 구조 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약 100명이 이안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으며, 해변 안전요원이 출동하는 사례의 80% 이상이 이안류 관련 사고라고 합니다.
이안류는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자연 현상입니다. 빛깔이 바뀐 파도, 고르지 못한 수면, 물결의 끊어짐과 같은 경고 신호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아무런 경고 없이 갑자기 발생하기도 합니다. 수영객들은 이안류에 휩쓸리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안류의 위험성은 그 강력한 힘에 있습니다. 순식간에 해안에서 수십 미터를 밀려나가게 되며, 올림픽 수영 챔피언 마이클 펠프스보다도 빠른 속도로 바다 쪽으로 휩쓸려 나가게 됩니다. 이처럼 압도적인 자연의 힘 앞에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생존 전략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미숙한 수영객에게 이 조언은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안류로 인한 익사 사고의 대부분은 조류가 수영객을 바닥으로 끌어내려서가 아니라, 공포에 빠진 수영객이 조류와 필사적으로 싸우다 지쳐버리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냉정함을 유지하고 해변과 평행으로 수영하면서 조류의 방향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응법입니다. 대부분의 이안류는 길어야 1~2시간 내에 소멸하므로, 체력을 보존하며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이는 핵심입니다.
투자 시장의 이안류: 시장 변동성에 대한 현명한 대응
이안류의 교훈은 투자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주식시장이 격렬하게 흔들릴 때, 개인 투자자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장의 급격한 하락이나 상승 국면에서 포트폴리오의 가치를 수시로 확인하며 불안해하는 것은 오히려 현명하지 못한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워렌 버핏은 “다른 사람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라”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는 시장의 광풍이 불 때 역발상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좋은 투자 전략이란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 놓는 것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장기 투자에서 성공의 99%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내’에 있고, 나머지 1%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대부분의 투자 자문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일상적인 시장 변동보다 극단적 상황에서의 대응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투자자들이 냉정을 잃어버린 1%의 기간에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장기적 성과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행동 강박의 심리학: 왜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어려운가?
그렇다면 위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요? 문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에 있습니다.
긴급 상황에서 정적으로 있는 것은 무책임하게 느껴지며, 심지어 잘못된 대응이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선택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이는 ‘통제의 환상’이라는 심리적 편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고 싶어하며, 행동을 통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뇌는 “가만있지 말고, 뭐라도 해!”라고 끊임없이 소리치며, 이 내면의 목소리에 따르는 것이 더 안심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 심리학자 대니얼 크로스비는 “투자자들이 시장 하락기에 느끼는 공포는 실제 물리적 위험에 대한 반응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뇌 활동 패턴을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즉, 주식 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마치 포식자에게 쫓기는 것과 같은 생존 본능을 자극하여 ‘도망치거나 싸우는’ 반응을 촉발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라는 조언은 가장 비합리적인 제안처럼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역설의 지혜: 언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가?
모든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정답은 아닙니다. 이 전략이 효과적인 때와 그렇지 않은 때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
- 단기적 시장 변동성에 대응할 때
- 감정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을 때
- 충분한 사전 계획과 전략이 마련되어 있을 때
- 통제 불가능한 외부 요인(이안류와 같은)에 직면했을 때
반면, 행동이 필요한 경우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 근본적인 투자 환경이 변화했을 때
- 초기 투자 계획과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 장기적 트렌드 전환이 명확할 때
- 불확실성이 아닌 위험에 직면했을 때
핵심은 사전에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감정적 대응이 아닌 냉정한 판단을 기반으로 행동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투자의 거장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자자의 최대 문제는 자기 자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본능이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무위(無爲)의 예술 배우기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의 지혜를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감정과 행동 사이에 간격 두기: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의사결정 전에 감정을 인식하고 가라앉히는 시간을 갖습니다.
- 장기적 관점 유지하기: 단기적 변동보다 장기적 목표와 전략에 집중합니다. 투자 일지를 작성하며 자신의 장기 계획을 상기시키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자동화된 시스템 활용하기: 감정적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동화된 투자 방식(정기적 분할 투자 등)을 활용합니다.
- 정보 소비 조절하기: 시장 변동성이 높은 시기에는 금융 뉴스와 포트폴리오 확인 빈도를 줄입니다.
- 환경의 역학 이해하기: 이안류와 같은 자연 현상이나 시장의 변동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함으로써 더 합리적인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결론: 행동하지 않는 용기
위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무기력이나 회피가 아니라, 깊은 이해와 자제력을 요구하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입니다.
이안류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 그 흐름을 수용하며 체력을 보존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이듯, 투자 시장의 급변동 속에서도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가 최선의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투자의 거장들이 강조하듯, 성공적인 장기 투자의 99%는 인내와 규율에 있고, 1%만이 적극적 행동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중요한 1%의 순간을 식별하는 안목을 기르고, 나머지 99%의 시간 동안 감정적 충동에 휘둘리지 않는 자제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다음 번 위기가 찾아왔을 때,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세요.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mullooly.net, “Why ‘doing nothing’ is so incredibly h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