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는 언제, 어떻게 그 여정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선구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최근 결정은 삶의 완성과 존엄한 죽음에 관한 깊은 대화의 장을 열었습니다.
90세의 나이에 상대적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인생의 의미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카너먼 교수의 마지막 선택과 그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마지막 인터뷰와 의미 있는 선택
2024년 3월,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Lives Well Lived” 팟캐스트의 출연 요청을 받았습니다. 교수의 답변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90세의 나이로 비교적 건강했지만, 3월 27일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통해 생을 마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카너먼 교수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저는 십대 시절부터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고통과 수치심으로 보낼 필요는 없다고 믿어왔습니다. 저는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활동적이며 인생의 많은 것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저는 행복한 남자로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신장은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고, 정신적 실수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90세입니다. 이제 떠날 시간입니다.
이 결정은 쉽게 내려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 설득했지만, 결국 그의 선택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인터뷰는 3월 23일에 진행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카너먼 교수는 쾌활하고 활기차게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다음 날 인터뷰가 매우 즐거웠다는 편지를 보냈고, 계획대로 3월 27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락사와 자기결정권에 관한 사회적 논의
카너먼 교수의 선택은 안락사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관한 중요한 논의를 촉발시켰습니다. 많은 국가와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말기 환자에게 자발적인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완료되었다고 판단하여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습니다.
카너먼 교수는 스위스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는 결정권을 가진 성인이 확고한 의사를 가지고 있다면 법적으로 죽음을 위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안락사가 허용되는 법적 조건과 그 범위에 대한 국제적 차이를 보여줍니다.
삶의 질과 자율성의 중요성
오리건 주의 안락사 사례 연구에 따르면, 말기 환자들이 안락사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율성 상실(89%), 즐거운 활동에 참여할 수 없음(88%), 존엄성 상실(64%)이었습니다. 가족에게 부담이 된다는 느낌(42%)도 있었지만, 다른 요인들보다는 덜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통계는 우리가 삶의 질과 자율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카너먼 교수의 경우처럼 지적으로 활발한 사람에게는 정신적 능력의 저하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객관적 의미에 대한 철학적 질문
카너먼 교수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그가 자신의 작업이 객관적인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연히 그것을 존중하고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좋기 때문에 그 일을 좋아합니다.
인터뷰어가 인생에 객관적으로 좋은 것들이 있다고 반박했을 때, 카너먼 교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제 인생을 잘 살아왔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것은 느낌입니다. 저는 제가 한 일에 대해 그럭저럭 행복합니다. 만약 객관적인 관점이 있다면, 저는 그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주와 우주의 복잡성을 보면, 제가 하루 동안 하는 일은 관련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 발언은 우리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객관적인 의미가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주관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인가?
우주의 광활함 속에서 개인의 성취와 기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존엄한 죽음을 위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
카너먼 교수의 죽음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우리가 인생의 완성과 존엄한 죽음에 대해 부끄러움이나 금기 없이 자유롭게 토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여러 우려를 제기합니다:
- 일부 노인들은 심리 상담을 통해 삶에 대해 더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다
- 의사가 말기 질환이 아닌 환자에게 이런 시술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한가
- 노인들이 가족에게 부담이 된다고 느껴 삶을 끝내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적절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죽음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심리 상담을 의무화
- 심각한 의학적 상태가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새로운 전문 분야 개발
- 개인의 선택이 외부 압력이 아닌 자발적인 것인지 확인하는 절차 마련
삶의 완성을 위한 개인적 성찰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이야기는 우리 각자에게 깊은 개인적 성찰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인가? 언제 우리의 삶이 완성되었다고 느낄 것인가? 어떻게 존엄하게 그 여정을 마무리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주제에 대해 열린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카너먼 교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쇠약해지기 전에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대신, 우리는 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통찰을 깊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최종 성찰: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이야기는 단순히 안락사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그 여정을 마무리할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그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으신가요? 우리 사회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보다 열린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으며,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카너먼 교수의 마지막 선택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 의미와 존엄성에 대한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그 마무리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참고 자료: The New York Times, “There’s a Lesson to Learn From Daniel Kahneman’s D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