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 케빈 베이컨과 투자 포트폴리오, 얼핏 보면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주제가 실제로는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해줍니다. 오늘은 케빈 베이컨의 6단계 게임을 통해 진정한 분산투자의 의미와 효과적인 포트폴리오 구성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게임이란?
1994년, 미국 대학생들이 만든 “케빈 베이컨의 6단계” 게임은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개념을 보여줍니다. 이 게임의 핵심은 할리우드의 어떤 배우든 6단계 이내의 영화 출연 관계를 통해 케빈 베이컨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톰 크루즈는 “어 퓨 굿 맨”에서 케빈 베이컨과 직접 출연했으므로 1단계로 연결되고, 다른 배우들도 몇 단계를 거쳐 베이컨과 연결됩니다. 이는 겉보기에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놀라울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네트워크 이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투자 시장의 숨겨진 연결고리
기술주들의 동조화 현상
투자 포트폴리오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애플, 메타, 엔비디아 같은 기술 기업들은 각각 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타겟 고객층도 상이합니다. 애플은 소비자 전자제품을, 메타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엔비디아는 반도체 칩을 주력으로 합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주가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정책, 인플레이션 동향, 소비자 심리, 규제 환경 등 공통된 거시경제 요인들이 이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2022년 금리 인상기에 이들 기업의 주가가 동반 하락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역을 초월한 시장 연동성
더욱 놀라운 것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시장들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브라질, 인도,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의 주식들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정책 발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글로벌 자본의 흐름, 달러 강세/약세,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도 변화 등이 전 세계 시장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전 세계 모든 주요 증시가 동시에 폭락한 것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진정한 분산투자란 무엇인가?
숫자만으로는 부족한 분산투자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단순히 보유 종목 수가 많으면 분산투자가 잘 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20개의 서로 다른 기술주를 보유하는 것은 얼핏 분산투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술 섹터에만 집중 투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포트폴리오는 기술 섹터에 악재가 발생하면 보유한 20개 종목이 모두 동시에 하락할 위험이 큽니다. 2022년 메타버스 열풍이 식고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둔화 우려가 커졌을 때, 기술주들이 일제히 하락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상관관계 이해의 중요성
진정한 분산투자는 상관관계(correlation)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상관관계란 두 자산의 가격이 얼마나 비슷하게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1부터 +1까지의 값을 가집니다.
+1에 가까울수록 두 자산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1에 가까울수록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0에 가까우면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효과적인 분산투자를 위해서는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들을 조합해야 합니다.
위기 상황에서의 상관관계 급등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시장 위기 상황에서는 평상시 상관관계가 낮던 자산들조차 동시에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주식, 채권, 부동산, 심지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금까지 모두 동반 하락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상황을 ‘상관관계 급등(correlation spike)’ 현상이라고 하며, 이때 많은 투자자들이 분산투자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당황하게 됩니다. 따라서 평상시에도 충분히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 투자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효과적인 포트폴리오 구성 전략
섹터별 분산투자
진정한 분산투자를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섹터에 투자해야 합니다. 기술, 헬스케어, 금융, 에너지, 필수소비재, 산업재, 공공서비스 등 각기 다른 경기 사이클과 요인에 영향받는 섹터들을 골고루 포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금리가 상승할 때 기술주는 하락하지만 금융주는 상승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를 때는 에너지 섹터는 호황을 누리지만 항공이나 운송업은 타격을 받습니다. 이런 섹터별 특성을 활용하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자산군별 분산투자
주식에만 투자하는 것보다는 채권, 부동산투자신탁(REITs), 원자재, 현금성 자산 등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 투자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각 자산군은 서로 다른 위험-수익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합니다.
채권은 주식과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포트폴리오 안정성을 높여주고, REITs는 인플레이션 헤지 효과를 제공합니다. 금이나 원자재는 통화 가치 하락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보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지역별 분산투자
국내 시장에만 투자하는 것보다는 선진국과 신흥국 시장을 포함한 글로벌 분산투자를 고려해야 합니다. 각 지역의 경제 사이클이 다르고, 통화와 정책 환경이 상이하기 때문에 지역별 분산투자는 효과적인 리스크 분산 수단이 됩니다.
미국 시장이 부진할 때 유럽이나 아시아 시장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지역이 동반 하락할 수 있으므로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투자 스타일 및 기업 규모별 분산
성장주와 가치주, 대형주와 중소형주를 적절히 조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장주는 경기 확장기에 강세를 보이지만 금리 상승기에는 약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가치주는 경기 회복 초기나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보입니다.
대형주는 안정성이 높지만 성장성이 제한적이고, 중소형주는 변동성이 크지만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특성을 고려한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요합니다.
분산투자 실행 시 주의사항
과도한 분산투자의 함정
분산투자가 중요하다고 해서 무작정 많은 종목에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20-30개 정도의 종목만으로도 충분한 분산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그 이상으로 늘리면 오히려 관리 비용만 증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너무 많은 종목을 보유하면 개별 종목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어려워지고, 평범한 수익률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절한 수준의 분산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면서도 수익 기회를 놓치지 않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리밸런싱의 필요성
시장 상황에 따라 포트폴리오 내 자산 비중이 계속 변하므로, 주기적인 리밸런싱을 통해 목표 비중을 유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식 50%, 채권 50%로 시작한 포트폴리오에서 주식이 상승해 비중이 70%가 되었다면, 일부 주식을 매도하고 채권을 매수해 원래 비중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이런 리밸런싱을 통해 ‘고점에서 매도하고 저점에서 매수’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포트폴리오의 리스크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연결고리를 이해한 투자자가 승리한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게임이 보여주듯, 겉으로는 관련 없어 보이는 자산들도 실제로는 복잡한 연결고리로 엮여 있습니다. 성공하는 투자자는 이런 숨겨진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진정한 의미의 분산투자를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많은 종목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관계가 낮은 다양한 섹터, 자산군, 지역, 투자 스타일에 걸쳐 체계적으로 분산 투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시장 위기 상황에서도 포트폴리오를 보호할 수 있는 진짜 분산투자를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해야 합니다.
투자의 세계에서 모든 자산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케빈 베이컨 게임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소중한 교훈입니다.
참고 자료: Investopedia, “What Can Kevin Bacon Teach Us About the Market? More Than You Might Th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