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자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대부분 컴퓨터 앞에서 홀로 의심에 찬 눈으로 인터넷을 뒤지는 외로운 사람을 상상하실 겁니다. 하지만 최근 5년간의 심도 있는 연구 결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흔들고 있습니다. 음모론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사회적이며, 감정적으로 풍부한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편견을 깬 5년간의 현장 연구
바스 대학교 경영대학원과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연구진이 진행한 이번 연구는 음모론자들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 직접 그들의 세계로 뛰어들었습니다. 연구팀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온라인 폐쇄 그룹부터 공개 모임, 컨퍼런스, 시위까지 다양한 현장에 참여했습니다.
팀 힐 박사는 연구 초기의 솔직한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종종 망상적이고 위험하며 화난 사람들로 묘사되는 그룹에 다가가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환영해주고, 호기심이 많으며 열정적이었습니다.
이런 발견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연구진은 5G 반대론자부터 평평한 지구 이론가, 백신 의심론자, 뉴에이지 영성 추구자까지 다양한 음모론 커뮤니티를 관찰하며 23명의 참가자와 32차례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음모론에 빠지는 3단계 여정
연구 결과,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게 되는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감정적인 여정이었습니다.
1단계: 신뢰의 균열
모든 시작은 기존에 신뢰하던 정보원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됩니다. 정부 기관이나 언론, 의료진 등 권위 있는 출처에 배신감을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취약해집니다. 이때가 바로 음모론이 파고드는 첫 번째 지점입니다.
2단계: 각성의 순간
두 번째 단계는 연구진이 “각성”이라고 명명한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함께 모여 세상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나가며, 마치 처음으로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 같은 강렬한 경험을 합니다.
20세 마사지사인 엘의 증언은 이런 경험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이제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있어요. 팬데믹이 우리에게 빛과 진실을 보여줬어요. 마치 계시 같은 경험이었죠.
3단계: 행동으로의 전환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들은 단순한 믿음을 넘어 실제 행동에 나섭니다. 시위 참여, 자료 수집, 자신만의 이론 구축까지. 이들은 “자신만의 연구”를 통해 공식 문서를 분석하고, 방대한 정보를 흡수하며 능동적인 참여자로 변모합니다.
따뜻한 공동체의 역설
힐 박사의 관찰은 음모론 커뮤니티의 놀라운 면을 드러냅니다.
음모론은 위안을 주는 단순한 답변을 제공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으로 공유된 감정, 소속감, 공동체를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이들의 모임은 매우 활기찼습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사람들이 일어나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박수와 환호가 이어지며 강한 연대감을 형성합니다. 로빈 캐니포드 교수는 이런 분위기를 “매우 긍정적이고 지지하는, 활기차고 환영받는 사회적 장”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공동체의 어두운 그림자
하지만 이런 따뜻한 공동체에도 대가가 따릅니다. 연구 참가자 중 한 명은 가족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반봉쇄 시위 참여로 형사 처벌까지 받았습니다. 음모론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소속감이 때로는 기존 인간관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티븐 머피 박사는 이런 양면성을 경고합니다.
이 그룹들이 소속감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개인 관계에서 분열과 고통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음모론 확산의 진짜 이유
이번 연구는 음모론이 단순히 개인의 성격이나 비이성적 사고의 결과가 아님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오히려 어려운 삶의 환경에서 해결책과 지지를 찾는 매우 인간적인 과정의 결과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인 공동체가 약화되고 개인이 고립되면서, 음모론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강한 소속감과 명확한 답변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여러분은 혹시 주변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복잡한 세상에 명확한 답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번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음모론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따뜻함과 소속감을, 우리의 일상 공동체는 과연 제대로 제공하고 있을까요?
음모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실을 교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해받고, 소속감을 느끼며, 복잡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음모론 현상은 우리 사회가 개인에게 제공하는 공동체의 질과 따뜻함에 대한 거울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더 건강한 방식으로 소속감과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자료: phys.org, “Conspiracy theory participation expands as research reveals participatory culture app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