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도 한 번쯤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몇 시간 동안 숏폼 영상을 보거나 게임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밀려오는 공허함 말이죠. 분명 재미있었는데 왜 이렇게 허무할까요? 최근 동기 이론 연구에서 밝혀진 ‘쾌락적 무동기’라는 개념이 이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해줍니다.
전통적 동기 이론의 한계를 드러낸 새로운 발견
내재적 동기 vs 외재적 동기의 이분법적 사고
지금까지 우리는 동기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왔습니다. 외재적 동기는 급여, 승진, 상사의 칭찬처럼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고, 내재적 동기는 활동 그 자체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죠.
Ryan & Deci의 자기결정이론(SDT)에 따르면, 자율성, 역량,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욕구가 충족될 때 내재적 동기가 강화되고,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동기 상태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 관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즐거움의 역설: 재미있는데 왜 공허할까?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의 다니엘 베넷(Daniel Bennett) 박사팀이 디지털 경험 사용자들을 심층 분석한 결과,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흥미로운 집단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활동을 분명히 즐기고 있었지만, 동시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만족도도 낮았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쾌락적 무동기(Hedonic Amotivation)’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기존의 동기 이론에 중대한 도전장을 내민 개념입니다. 즐거움이 반드시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5가지 동기 유형: 새로운 스펙트럼의 발견
Bennett 팀의 연구는 단순한 내재적-외재적 동기 이분법을 넘어 5가지 동기 유형을 제시합니다:
1. 완전 무동기 집단
모든 동기 척도가 0에 가까운 상태로, 아무런 이유 없이 활동에 참여하는 집단입니다. 마치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은 상태죠.
2. 쾌락적 무동기 집단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입니다. 즉각적 즐거움(내재적 동기)은 경험하지만, 활동에 대한 명확한 가치나 목적 의식은 없는 상태입니다. SNS 스크롤링이나 넷플릭스 몰아보기가 대표적인 예죠.
3. 외재적 동기 중심 집단
오직 보상이나 처벌 회피를 위해서만 행동하는 집단입니다. KPI 달성을 위한 야근이나 벌금을 피하기 위한 규칙 준수 등이 해당됩니다.
4. 중간 수준 동기 집단
내재적, 외재적 동기가 모두 적당히 발현되는 상태로, 가장 일반적인 동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고품질 내재적 동기 집단
활동에서 즐거움과 함께 가치, 목적을 동시에 느끼는 이상적인 상태입니다. 자기결정이론에서 추구하는 최적의 동기 상태죠.
쾌락적 무동기가 문제인 이유
즉각적 보상의 한계
도파민 시스템은 ‘지금 이 순간’의 쾌락을 강화하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즉각적 즐거움은 의미와 연결되지 않으면 장기적 동기화로 발전하지 못합니다. 마치 설탕 러시처럼 순간적인 에너지를 주지만 곧 피로감을 남기는 것과 같죠.
30대 직장인 김모씨의 사례를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는 매일 퇴근 후 2-3시간씩 모바일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게임 자체는 분명 재미있었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내가 왜 이런 시간 낭비를 하고 있지?”라는 자책감이 몰려왔죠. 게임에서 얻는 즉각적 성취감은 실제 삶의 목표나 가치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율성 결여의 딜레마
재미있다고 해서 반드시 자율적 선택은 아닙니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행위는 즐겁긴 하지만 “내가 이걸 선택했다”는 감각이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즐거움은 금세 의무감이나 중독성으로 변질됩니다.
정체성 불일치의 공허함
활동이 자신의 핵심 가치나 장기 목표와 연결되지 않으면, 즐거움조차 “나답지 않다”는 반발심을 불러일으킵니다. 20대 대학생 이모씨는 매일 4-5시간씩 유튜브를 시청했지만, 정작 자신이 공부해야 할 전공 분야와는 전혀 무관한 콘텐츠들이었습니다. 영상 시청 자체는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진로와 동떨어진 활동에 시간을 쏟고 있다는 죄책감이 커졌죠.
지속 가능한 몰입을 위한 해결책
즐거움 + 의미의 결합
단순한 도파민 기반의 즐거움을 넘어서려면 “이것이 나에게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력 향상이나 팀워크 개발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활동의 질이 달라집니다.
자율성 욕구 충족
진정한 내재적 동기를 위해서는 더 많은 선택권과 통제감이 필요합니다. 알고리즘의 추천에 따라 수동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신, 자신만의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이죠.
성장과 정체성의 연결
단순한 반복이 아닌 점진적 도전과 자아 확장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매일 같은 패턴의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거나 더 높은 단계의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것이 장기적 만족감을 가져다줍니다.
조직과 개인을 위한 시사점
이 연구 결과는 조직 관리와 개인 성장 모두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단순히 “재미있게 만들면 된다”는 접근법의 한계가 명확해졌기 때문이죠.
기업의 gamification 전략이나 교육 프로그램 설계에서도 즐거움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직원들이나 학습자들이 활동에서 개인적 의미와 성장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해야 진정한 몰입과 지속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여가 활동이나 취미 선택에서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부합하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활동이 나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죠.
의미 있는 즐거움을 찾아서
쾌락적 무동기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즐거움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의미와 분리된 즐거움은 오히려 우리를 지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진정한 내재적 동기는 더 이상 “즐겁다”는 단어로만 정의될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한 몰입과 만족을 위해서는 즐거움에 의미감, 자율성, 그리고 개인적 성장이 더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상을 돌아보세요. 즐겁기만 하고 공허한 활동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