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80세가 넘어 여전히 30대의 기억력과 인지능력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닌 현실입니다. 바로 ‘슈퍼에이저(SuperAger)’라 불리는 이들인데요. 이들은 어떻게 나이를 거슬러 가는 싱싱한 뇌를 유지할 수 있는 걸까요?
오늘은 노스웨스턴대학 파인버그 의과대학의 연구를 바탕으로 슈퍼에이저의 비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슈퍼에이저란? 30년 젊은 뇌를 가진 80대
슈퍼에이저는 “최소 30년 젊은 사람의 기억 능력을 갖춘 80세 이상의 성인”을 말합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비해 현저히 젊은 정신 능력을 유지하는 이들입니다.
노스웨스턴대학 파인버그 의과대학 연구진은 자기공명영상(MRI)과 양전자 단층촬영(PET)을 활용해 슈퍼에이저의 뇌를 분석했습니다. 심지어 사망한 슈퍼에이저의 뇌를 기증받아 연구한 결과도 있는데요.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일반 노령층은 연간 약 2.24%의 뇌량을 손실하는 반면, 슈퍼에이저는 단 1.06%만 감소했습니다. 즉, 슈퍼에이저는 일반 노인에 비해 뇌 노화 속도가 절반 이하로 느린 것입니다. 이는 치매로부터 자연스럽게 보호받는 효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슈퍼에이저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노스웨스턴 의대의 노인병 전문의 리 에이 린드퀴스트(Lee A. Lindquist) 박사가 밝힌 4가지 생활습관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활동적인 삶: 최적의 운동량이 뇌를 지킨다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인 사람은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3배나 높습니다. 이를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신체 활동입니다. 일주일에 단 두세 번의 운동만으로도 발병률을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신체활동은 단순히 체중 관리를 넘어 산소 섭취량을 증가시켜 신체 전반의 기능을 최적화합니다. 심장 건강 증진은 물론, 근육 강화로 낙상 위험까지 줄여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죠.
슈퍼에이저를 위한 최적 운동량 가이드
나이가 들수록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슈퍼에이저가 되기 위한 최적의 운동량은 다음과 같습니다:
- 최대심박수 계산하기: 220에서 자신의 나이를 빼면 됩니다. 예를 들어 70세라면 최대심박수는 150입니다.
- 적절한 운동 강도 유지: 운동 초보자는 최대심박수의 50%로 시작해 점차 70%까지 늘리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 운동 시간과 빈도: 일주일에 3~5일, 20~40분 정도의 운동으로 충분합니다.
- 운동 강도 조절: 호흡에 무리가 없으면서 약간의 땀이 나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 고강도 마무리: 운동 마지막에 짧게 강도를 높이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김영수(가명, 83세) 씨는 은퇴 후 매일 아침 근처 공원에서 30분간 빠르게 걷기를 실천해왔습니다.
처음에는 10분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1시간도 거뜬해요. 덕분에 20년 전부터 복용하던 고혈압약도 줄일 수 있었고, 기억력도 또래보다 훨씬 좋다고 해요.
2. 정신적 도전: 뇌의 가소성을 높이는 새로운 경험
정신 활동은 신체 활동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스도쿠나 낱말 퍼즐과 같은 간단한 두뇌 게임도 좋지만, 진정한 뇌 자극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에서 옵니다.
새로운 주제의 책 읽기, 낯선 분야의 수업 듣기, 뜨개질 배우기, 평소와 다른 귀갓길 택하기 등 모든 새로운 경험은 뇌의 가소성(뇌가 변화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뇌 자극을 극대화하는 두 가지 효과적인 방법
- 새로운 언어 배우기: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언어가 곧 그 사람의 세계’입니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가 많을수록 그 사람의 세계는 더 넓어집니다. 특히 외국어를 배우면 뇌 속 신경세포의 결합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낯선 언어가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다가온다면, 긍정적 도파민의 원천이 됩니다.
- 글쓰기 실천하기: 글쓰기는 인간만이 가능한 고도의 지적 행위이자 최고의 뇌 자극제입니다. 손을 많이 쓰는 행위 자체가 뇌를 활성화시키고, 문맥에 맞는 단어 선택과 논리 구성 과정이 뇌를 싱싱하게 부활시킵니다. 긴 에세이가 아니라도 짧은 일기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박미영(가명, 85세) 씨는 은퇴 후 10년 동안 일본어를 독학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일본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볼 수 있어요. 매일 새로운 단어를 외우는 과정이 제 뇌의 운동이 됐어요. 손주들이 저보다 기억력이 더 나쁘다고 놀랄 정도예요.
3. 사회적 관계: 뇌 깊숙한 주의력 영역을 자극하는 인간관계
은퇴는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강한 사회적 관계는 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주의력 영역, 특히 ‘폰 이코노모 뉴런(Von Economo neuron)’을 자극하고 강화합니다. 이 영역은 사회적 관계와 인식을 처리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린드퀴스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슈퍼에이저는 일반 80대 노인보다 이 뉴런의 수가 4~5배나 많았습니다. 이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단순한 정서적 지원을 넘어 실제 뇌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입니다.
내성적인 사람을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 전략
모든 사람이 사교적인 성격은 아닙니다. 내성적인 사람도 효과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깊은 인간관계가 부담스럽다면, 내면을 많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활동부터 시작해보세요. 봉사활동이나 취미 동호회는 개인적 관계가 깊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작점입니다.
이종석(가명, 82세) 씨는 은퇴 후 지역 도서관에서 주 2회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작했어요. 하지만 책을 매개로 만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제 생각의 폭이 넓어졌어요.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게 되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죠.
4. 탐닉의 즐거움: 나이 든 후에도 욕망을 포기하지 않기
‘탐닉’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을 수 있지만, 슈퍼에이저에게 탐닉은 긍정적인 개념입니다. ‘탐닉’의 진정한 의미는 ‘나이가 들었다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나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순간, 뇌는 그 나이에 맞게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흥미롭게도, 린드퀴스트 박사에 따르면 적당히 술을 마시는 사람이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알츠하이머병 발생 가능성이 23% 낮다고 합니다. 물론 절제는 필수적이며, 과도한 음주는 알코올성 치매와 중독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탐닉과 해로운 중독을 구분하는 방법
탐닉과 중독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행위가 가져오는 감정에 있습니다. 즐겁고, 몰입하며, 정신적 에너지가 상승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탐닉입니다. 반면 점차 기분이 나빠지고 죄책감이 든다면 중독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나누는 즐거운 대화와 함께하는 와인 한 잔은 건강한 탐닉이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혼자 마시는 과도한 음주는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미숙(가명, 84세) 씨는 75세에 아크릴 페인팅을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 ‘그 나이에 뭐하러 새로운 걸 배우냐’고 했지만, 저는 그림 그리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 캔버스 앞에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품이 완성됐을 때의 성취감은 젊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거예요. 친구들은 제가 10년 전보다 더 젊어 보인다고 해요.
슈퍼에이저의 핵심 비결: 끊임없는 도전과 탐험
슈퍼에이저의 가장 큰 매력은 뇌 사진 속에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활발하게 작동하는 뇌의 회로, 그것이 그들의 비결입니다. 마음은 뇌를 자극하고, 뇌는 감정을 일으켜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슈퍼에이저가 되는 비결은 나이에 상관없이 한계를 두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탐험하는 마음가짐에 있습니다. 활동적인 신체, 호기심 가득한 정신, 따뜻한 인간관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네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나이를 거스르는 싱싱한 뇌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부터 슈퍼에이저의 생활습관을 하나씩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며, 우리의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강력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