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500억 매출을 올리는 Tate’s Bake Shop 창업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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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기업가들의 화려한 성과 뒤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좌절과 재기의 드라마가 숨어있습니다. 오늘은 11살 소녀의 가판대 쿠키 판매에서 시작해 연 매출 2,5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Tate’s Bake Shop의 창업자 캐슬린 킹(Kathleen King)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모든 것을 잃은 42세의 나이에 다시 일어나 더 큰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마트 진열대 위 테이트 베이크 샵 쿠키, 구글

11살 소녀의 특별한 쿠키, 첫 번째 성공의 시작

뉴욕 롱아일랜드 사우샘프턴 근처 노스 시 팜스에서 자란 캐슬린 킹의 이야기는 1960년대 한 농장에서 시작됩니다. 축구장 17개 규모의 넓은 땅에서 소 30-40마리를 키우던 가족 농장에서, 막내딸 캐슬린은 일찍부터 달걀을 모으고 채소를 따며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집 앞마당 가판대에서 채소와 달걀을 판매하던 중, 아버지는 11살 딸에게 “쿠키를 팔아 내년 학교 갈 옷을 직접 사렴”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이때부터 캐슬린의 쿠키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네슬레 초콜릿칩 봉지 뒷면의 톨하우스 레시피를 참고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차별화의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달라야 팔린다”는 직감으로 성인 손바닥만 한 거대한 쿠키를 구웠고, 맛있고 큰 쿠키는 금세 입소문을 타며 이 쿠키만을 사러 오는 단골손님들까지 생겼습니다.

내향적인 성격의 캐슬린에게 쿠키 굽기는 천직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름방학마다 하루 10시간씩 주방에서 쿠키를 구웠고, 그 수입으로 첫 차까지 스스로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제과점의 성공과 차별화 전략

1980년 5월, 부모의 독립 촉구로 캐슬린의 첫 번째 제과점 ‘Kathleen’s Bake Shop’이 문을 열었습니다. 여름 휴양지 특성상 성수기에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뉴욕타임스 음식 칼럼니스트의 소개 기사까지 실리는 행운도 따랐습니다.

하지만 비수기가 되자 상황이 급변했고,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캐슬린은 쇼핑백에 쿠키를 담고 직접 뉴욕 시내로 나가 고급 식품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Balducci, Zabar’s, Dean & DeLuca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다음 주에 100봉지 가져와 보라”는 허락을 받기도 하고, “이런 쿠키는 우리 엄마도 구워”라며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대량 생산된 프랜차이즈 쿠키가 주류였던 시장에서 그녀의 차별화 전략은 명확했습니다. 고급 버터와 직접 만든 홈메이드 쿠키를 마트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발견’이었습니다. 또한 고객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레시피를 끊임없이 개선했습니다.

그녀만의 독특한 평가 기준도 있었습니다. 직원이 시식을 하고 “맛있다”고만 말하고 돌아서면 실패, 하지만 다시 와서 한 입 더 먹는다면 성공이라는 실용적인 기준이었습니다.

파트너십의 함정과 모든 것을 잃은 순간

1990년대 초반 연매출 30억 원을 올리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캐슬린 베이크 샵이었지만, 40대가 된 캐슬린은 20년간 주 6일, 하루 18시간을 일한 끝에 여유와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회계사 밥 웨버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의 형 케빈 웨버와 함께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지분은 각자 1/3씩, 웨버 형제는 사업 확장을 맡고 캐슬린은 운영을 지속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약 90만 달러의 대금은 장기 분할 상환으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계약 직후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웨버 형제는 버지니아에 공장을 세우고 그녀가 제공한 레시피를 무시한 채 값싼 재료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품질은 급격히 무너졌고, 애플파이에 사과를 통째로 넣는 수준의 부실한 제품까지 나왔습니다. 급여는 자신들부터 챙기면서 지역 공급업체 대금은 미뤘고, 캐슬린은 제과점 수익으로 그들의 미지급금을 메워야 했습니다.

결국 지분 3분의 2를 쥔 웨버 형제는 2000년대 초 캐슬린을 해고했습니다. 법적 공방 끝에 웨버 형제는 ‘Kathleen’s Bake Shop’ 상호를 가져갔고, 캐슬린은 약 20만 달러의 채무를 떠안았습니다. 20년을 바쳐 키운 회사와 이름을 한순간에 잃은 것입니다.

절망에서 다시 일어선 42세, Tate’s Bake Shop의 탄생

42세에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진 캐슬린이지만, 지역 사람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빼앗긴 가게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고, 관광객들에게는 “이제 이 가게는 테이트라고 불려요”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 순간을 통해 그녀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내 하루를 이 두 사람의 악의에 집중하며 보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렇게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친절함에 집중하며 보낼 수도 있겠구나.

새로운 이름은 ‘Tate’s Bake Shop’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별명 ‘Tate’를 붙여 지역성과 진정성, 친근한 이미지를 담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건물 소유자는 캐슬린 본인이었기에 같은 자리에서 제과점을 재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과거 “나보다 이 일을 더 잘할 사람은 없다”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혼자 하려 했던 반면, 이제는 ‘포기하는 법’과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비즈니스 매니저 마이클 네이미를 고용해 제품별 수익률을 분석하고 이윤이 남는 제품에 집중했습니다. 단순한 생존형 운영이 아닌 비즈니스로서의 성장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글로벌 브랜드로의 성장과 성공적인 엑시트

테이트 베이크 샵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한때 학교였던 폐건물을 매입해 쿠키 공장으로 개조했고, 그곳에서 하루 150만 개의 쿠키를 생산하며 전국으로 유통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매년 30% 이상 성장하는 프리미엄 쿠키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방송 ‘Cooking Across America’에 소개되고 ‘Consumer Reports’에서 ‘최고의 쿠키’로 선정되며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Whole Foods, The Fresh Market 같은 중대형 고급 유통망으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캐슬린은 42세에 재시작할 때부터 이미 목표를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55세가 되면 반드시 삶의 균형을 찾기로 다짐했던 것입니다. 2014년 55세가 된 그녀는 프라이빗 에쿼티 회사 리버사이드에 지분 80%를 1억 달러(1,350억 원)에 매각했습니다.

불과 4년 후 리버사이드는 테이트 베이크 샵을 오레오를 만드는 거대 식품기업 몬델리즈에 5억 달러(약 6,750억 원)에 재매각했습니다. 현재 테이트 베이크 샵은 연매출 1억 8,000만 달러(약 2,500억 원)를 기록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균형의 중요성: 젊음과 성공 사이의 교훈

캐슬린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균형에 관한 것입니다. 첫 번째 회사를 잃은 뒤 가장 아쉬웠던 것은 돈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지 않는 젊음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면 정말 밤낮없이 몰입해야 하죠. 하지만 그런 몰입이 ‘나만큼 이걸 잘할 사람은 없어’라는 집착이 된다면, 그 사람을 가둬버려요.

그녀는 일정 기간의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강조합니다. 그 균형은 내가 하는 일 속에서도, 일과 삶의 관계 속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 판단력을 잃고 집착으로 자라나지 않도록 내려놓는 용기, 때로는 도움을 청하거나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달리던 발을 잠시 멈추고 균형을 잡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는 그 멈춤의 용기가 우리를 더 나은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캐슬린 킹의 이야기는 실패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진정한 성공은 무엇을 이루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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