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불멸을 추구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는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기술 기업가들의 이야기가 화제를 모으고,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은 AI와 생명공학으로 불멸의 꿈을 좇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죽음을 부정하려는 이 모든 노력이 오히려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요.
불멸을 꿈꾸는 시대의 역설
브라이언 존슨과 불멸의 추구자들
올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Don’t Die: The Man Who Wants to Live Forever”의 주인공 브라이언 존슨은 하루에 수십 가지 보조제를 복용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며, 자신의 몸을 마치 최적화 알고리즘처럼 관리합니다. 그의 일상은 철저히 계산되어 있고, 모든 것이 수명 연장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조율되어 있죠.
레이 커즈와일은 더 나아가 인간이 AI와 융합하여 클라우드에서 사는 “불멸의 소프트웨어 기반 인간”이 될 미래를 그립니다. 이들에게 특이점은 죽음을 정복하는 순간이며, 기술은 인간을 생물학적 한계로부터 해방시킬 구원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교의 최근 연구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명 연장의 속도는 오히려 둔화되고 있으며, 최대 수명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말하는 불멸의 한계
하버드 챈 공중보건대학원의 윌리엄 메이어 교수는 우려의 목소리를 냅니다.
사람들의 주의력이 제한된 세상에서, 자신 있게 이미 노화를 치료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게 될까 봐 걱정됩니다.
실제로 어니언(The Onion)의 유명한 헤드라인 “세계 사망률 100%로 유지”는 우스갯소리지만 과학적 사실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이 단순한 진실을, 우리는 왜 이토록 부정하려 할까요?
죽음이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
철학자들이 발견한 죽음의 가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철학을 실천하는 자들의 유일한 목표는 죽음과 죽음을 위해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삶의 본질을 깨달으라는 의미죠.
고대 로마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전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승전 퍼레이드에서 노예가 승리한 장군의 귀에 “죽음을 기억하라”고 속삭인 것은 겸손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죽음의 인식이 오만함을 막고 삶의 진정한 가치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었죠.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을 시작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기서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의미 있는 삶, 진정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동양 철학이 말하는 무상함의 가르침
불교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인 “모든 복합적인 것은 무상하다”는 죽음을 포함한 모든 변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마라나사티(죽음에 대한 인식) 명상은 죽음의 불가피함을 깨달아 삶에 대한 감사를 일깨워주는 수행법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야만적인 어리석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죽음을 실천하는 것은 자유를 실천하는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현대인이 놓치고 있는 것들
스티브 잡스의 통찰: 죽음이 주는 명확성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는 일을 하고 싶을까?
그는 이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명확성, 관점, 그리고 지혜.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을 “삶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I 선구자 카이푸 리의 깨달음
“AI 슈퍼파워”의 저자 카이푸 리는 한때 자신의 삶을 “명확한 목표를 가진 최적화 알고리즘”으로 여겼습니다. 개인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그 목표에 기여하지 않는 것은 최소화하는 식으로 살아왔죠.
하지만 4기 림프종 진단을 받은 후 그는 깨달았습니다. 불교 승려 싱윈 스님의 말처럼,
끊임없이 계산하고 모든 것을 정량화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진정한 삶을 주는 유일한 것, 사랑을 질식시킵니다.
여러분도 혹시 삶을 하나의 최적화 문제로 접근하고 있지는 않나요? 더 많이 벌고, 더 오래 살고, 더 많이 성취하려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사랑과 연결, 그리고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진정한 특이점: 사랑과 연결의 가치
물질을 넘어선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
철학자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경험을 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경험을 하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는 브라이언 존슨과 레이 커즈와일 같은 현대의 불멸 추구자들이 놓치고 있는 핵심입니다. 그들은 인간을 오로지 물질적인 존재로만 보면서, 불멸의 영혼과 불멸의 육체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를 자신과, 타인과, 그리고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와 연결시켜 주는 힘입니다. 삶을 순전히 물질적이고 경험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볼 때, 우리는 이성과 합리성을 초월하는 삶의 다른 차원에 대한 접근을 잃게 됩니다.
죽음이 선사하는 궁극적 지혜
조안나 에벤스타인이 “Memento Mori”에서 지적했듯이, 삶의 모든 측면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현대 세계에서 죽음은 “궁극적인 모욕”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모욕” 때문에 우리는 겸손해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존재의 문제를 열어주는 열쇠였습니다. 우리의 필멸성을 마주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가장 큰 미스터리를 탐구하게 해 줍니다.
어떻게 좋은 삶을 살 것인가
죽음을 부정하는 것의 비용
사람들이 공허하고 목적 없는 삶을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정말 해야 할 일을 미루기가 너무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끝없는 분주함과 할 일 목록에 얽매여, 우리는 정작 체크마크를 받을 가장 중요한 일들을 하지 못합니다. 소셜 미디어에 삶을 기록하느라 정작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죽음이 주는 생생함
브라이언 존슨은 X(트위터)에 이렇게 썼습니다:
지금 존재하는 가장 멋진 질문은 우리가 죽지 않는 첫 번째 세대인지 탐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멋진 질문은 다른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죽음은 궁극의 생물학적 해결책입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관계의 가치를 이해하며, 사랑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지상에서의 삶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를 그 삶에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배우는 삶의 예술
죽음보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삶에 들어오도록 허용하지 않을 때, 우리는 죽음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명확성, 관점, 그리고 지혜를 잃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죽음을 부정하며 최적화 알고리즘처럼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유한함을 받아들이며 사랑과 의미가 가득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기억하세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만들어가는 모든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죽음을 친구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Time, “The Cost of Trying to Live 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