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악의 하루, 그날 투자자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미국 증시는 단 하루 만에 22.6% 폭락했습니다. 1929년 대공황의 최악의 날보다 거의 두 배나 큰 낙폭이었죠. 그런데 이 역사적인 순간에 투자자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패닉 셀링? 공포에 질린 투기꾼들의 광란? 놀랍게도 실상은 전혀 달랐다고 합니다.
경제학자 로버트 쉴러는 이 특별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거의 1,000건에 달하는 응답을 수집했고, 한 달 후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는 시장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은 컸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보는 빠르게 퍼졌지만 행동은 느렸다
1987년은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시세를 확인하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은 동부 표준시 기준 오후 2시까지 폭락 소식을 접했습니다. 기관 투자자들은 더 빨랐죠. 장 시작 후 한 시간 만에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불안감이 엄습하자 투자자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바로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 평균적인 개인 투자자는 그날 7.4명과 통화했습니다
- 기관 투자자는 무려 19.7명과 통화했습니다
- 개인 투자자는 평균 3.2회, 기관 투자자는 35회나 주가를 확인했습니다
감정의 전염, 공포는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투자자들이 경험한 구체적인 불안 증상입니다. 설문조사는 집중력 저하, 손바닥 땀, 가슴 답답함, 과민 반응, 빠른 맥박 등의 신체적 증상을 물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 개인 투자자의 20.3%가 이러한 증상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 기관 투자자는 무려 43.1%가 불안 증상을 겪었습니다
- 개인 투자자의 23.0%, 기관 투자자의 40.2%가 다른 투자자로부터 불안감을 ‘전염’ 받았다고 보고했습니다
한 응답자는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토요일은 월요일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절대적인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고심하는 하루였습니다. 월요일에 매도할까? 아니면 그냥 버틸까?
그리고 가장 놀라운 사실은, 10월 19일에 주식을 매도한 개인 투자자 중 53.9%가 공포의 전염을 경험했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개인 투자자의 35.0%와 기관 투자자의 53.2%는 폭락 며칠 전부터 1929년 대공황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행동은?
이 모든 불안과 공포, 그리고 수많은 전화 통화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주식을 사거나 판 사람은 놀랍도록 적었습니다.
- 개인 투자자 중 10월 19일에 실제로 매수 또는 매도한 비율은 단 5.2%였습니다
- 기관 투자자의 경우 31.1%가 보유량을 변경했는데, 이는 불안 증상을 경험한 비율(43.1%)보다 낮았습니다
즉, 시장이 역사상 최악의 하락을 기록하던 그날,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불안해하고, 이야기하고, 걱정했지만, 실제로 포트폴리오를 건드린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매도한 사람들의 이유: 가격 움직임과 자동화된 전략
기술적 지표와 손절매 규칙이 작동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매도에 참여한 소수의 투자자들은 왜 그랬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움직임’ 그 자체였습니다.
200일 이동평균선의 힘
투자자의 약 3분의 1이 200일 이동평균선이나 기타 장기 추세선을 돌파하는 가격 하락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차트가 빨간불을 켜자, 그들은 미리 정해둔 규칙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손절매 정책의 자동 실행
투자자의 10%는 손실을 제한하기 위한 정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10월 19일에 매도한 투자자 중 개인 투자자의 약 40%, 기관 투자자의 약 20%가 이 정책에 따라 매도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손실 제한 전략을 변경한 투자자 중 상당수가 폭락 후 한 달 이내에 정책을 새로 도입했습니다. 즉, 공포가 뒤늦은 규칙 도입을 촉발한 것이죠.
장기 전략의 포기
가장 극적인 반응은 장기 투자 정책을 완전히 포기한 경우였습니다. 개인 투자자의 13.2%, 기관 투자자의 6.6%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10월 19일에 매도한 투자자로 범위를 좁히면 개인 투자자는 38.5%, 기관 투자자는 27.8%로 치솟았습니다.
한 기관 투자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시장이 자유낙하하여 적절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매수한 사람들의 이유: 직감과 반등 기대
저점 매수보다는 기술적 반등 기대
놀랍게도, 매수에 나선 투자자들의 논리는 우리가 흔히 듣는 “저점 매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댔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의 직관
“직감”, “육감”, “반등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 같은 단순한 표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대형 투자자들이 뭔가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이론을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기술적 분석은 드물었습니다.
기관 투자자들의 논리
기관 투자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직감”, “과거의 증거와 상식”, “시장 심리” 같은 직관적 진술이 주를 이뤘죠.
가장 공통적인 주제는 “하락의 규모 자체가 반등의 증거”라는 것이었습니다:
- “반등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너무 빠르다”
- “이러한 하락은 그에 상응하는 상승 반응 없이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
핵심은 하락으로 인한 ‘할인된 가격’이 아니라, 하락의 ‘속도와 규모’였습니다. 아무도 저렴해진 우량주를 매수하는 장기적 기회를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시장 폭락을 증폭시킨 메커니즘
가격이 가격을 낳고, 공포가 공포를 낳는다
로버트 쉴러는 이 연구를 “피드백 루프 이론”으로 요약했습니다. 시장 폭락은 두 가지 채널을 통해 스스로를 증폭시켰습니다:
첫째, 주가 대 주가 채널
가격 하락 → 기술적 지표 붕괴 → 손절매 실행 → 추가 가격 하락 → 더 많은 손절매… 이 악순환은 자동화된 매도 규칙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둘째, 사회심리적 채널
불안한 투자자 → 다른 투자자들과의 소통 → 공포 전염 → 집단적 불안 증가 → 더 많은 소통과 주가 확인 → 공포의 확산…
이 두 채널은 매우 빠르게 작동했습니다. 주가는 매우 빈번하게 확인되었고, 소통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10월 19일에 실제로 매수나 매도에 나선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현대 투자자들에게 주는 교훈
감정은 전염되지만, 행동은 선택이다
1987년 블랙먼데이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 시장 폭락 시 대부분의 투자자는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 매도한 사람들은 주로 자동화된 규칙이나 공포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미리 설정된 손절매나 기술적 지표 붕괴가 매도를 촉발했습니다.
- 매수한 사람들도 가치 투자가 아닌 기술적 반등을 노렸습니다. “저렴해진 우량주”라는 생각은 거의 없었고, 대신 “너무 떨어졌으니 반등할 것”이라는 직관이 지배했습니다.
2025년, 우리는 달라졌을까?
지금은 1987년보다 정보가 훨씬 빠르게 전파되는 시대입니다. SNS와 실시간 뉴스, 유튜브 투자 채널들이 공포와 불안을 더 빠르게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폭락이 왔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주변 사람들의 공포에 전염되어 손절매할 것인가?
- 기술적 반등만 노리며 단기 매수에 나설 것인가?
- 아니면 진짜 저평가된 우량 자산을 찾아 장기 포지션을 구축할 것인가?
역사는 반복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운다면, 다음번에는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피로 물들 때, 진정한 투자자는 감정이 아닌 원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참고 자료: Novel Investor, “Revisiting the ’87 Cr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