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장인의 대체 불가능한 인재에 대한 생각

대체 김부장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신은 대체 불가능한 인재입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대체 불가능한 실력을 가졌다는 ‘에이스’급 이대리, 박과장들이 있습니다. 부서마다 한 명쯤은 있는 이들은 탁월한 업무 센스와 전문성으로 기복 없이 월등한 퍼포먼스를 만들고, 늘 자신감에 찬 모습에서 느껴지듯 조직에서 믿고 쓰는 ‘붙박이 주전’ 선수입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에이스 수식어가 달린 부장급 인물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들이 어디로 간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때의 그 박과장이 허구한 날 유관부서 팀장들과 술만 마시고 다니는 눈앞의 김부장이 되었을 뿐입니다.

대체 김부장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김부장에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저 회사와의 관계에서 과장 때 점하던 ‘갑’의 지위가 부장이 되고난 후 ‘을’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회사에게 ‘갑’인 직원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회사는 놓치기 싫은 귀중한 인재이기 때문에 갑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을’이 되면 회사의 결정에 따라 거취가 정해집니다. 별 볼일 없는 부서로 가라고 하면 가야 하기 때문에, ‘을’은 회사에 잘 보여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갑’에서 ‘을’이 되면 당사자는 본능적으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즉, 회사와의 관계가 ‘갑’에서 ‘을’로 뒤바뀌는 순간 목줄을 잡히게 됩니다. 이들은 더이상 예전처럼 임원이나 팀장의 황당한 요구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개기지 못하고, 과거와 달리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고, 때때로 팀원들을 향해 과도한 업무지시를 합니다. 의견을 말하기 전에 부서 간 이해관계와 누구 입에서 나온 지시인지 등의 역학관계를 생각하는 밸런싱 능력이 발달합니다.

이렇게 주관을 포기하고 회사의 입장에서만 말하는 김부장들도 사실은 이대리, 박과장처럼 당당하고 스마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는 결국, 뛰어났던 김부장이 어떻게 ‘을’로 전락하게 되는 지를 알아채지 못하면, 우리도 곧 같은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김부장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

잘 나가던 김부장들이 갑에서 을이 되는 건 퇴보했기 때문이 아니고, 경쟁 구조가 빚어낸 결과입니다. 그 뿌리는 획일화된 교육 제도에서 시작되는데, 한국에서는 확실한 비전과 실력이 있지 않는 한 고졸 학력 만으로는 소위 말하는 주류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노력하죠.

이는 단적인 수치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한국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70% 대로, 전 세계 1위입니다. 반면, 명문대가 즐비한 미국의 진학률은 50% 초반대 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선진국인 독일의 진학률은 고작 30% 대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한국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려주는 수치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중요한 시사점은 우리보다 소득이 높은 선진국에서 오히려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는 점입니다. 이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죠.

즉, 학사 없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이야기이며,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니 당연히 미친듯한 경쟁이 발생하게 되고, 이 경쟁구도는 취업 시장에 그대로 전이됩니다. 자격 요건이 된다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졸업 후에 대기업과 전도유망한 IT기업에 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고작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을 뽑는 기업 채용에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이 몰려들게 되고, 극한의 경쟁을 이겨낸 소수만이 선발됩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생존해 선발된 신입사원들은 이제, 더 밀도 높은 경쟁을 해야 합니다. 1,000명의 사원은 100개의 팀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야 하고, 100명의 팀장은 10개의 임원 자리를 두고 경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1,000명의 사원은 모두 프로리그 선수로, 제 아무리 대학리그를 씹어먹었던 실력자라 하더라도 프로리그에서의 경쟁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프로리그팀에 입단한 신입들은 학력과 스펙으로 가려뒀던 실력이 금세 까발려지고, 주전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주요 부서에 배치된 주전들은 대리, 과장의 기간 동안 기록한 스코어를 토대로 에이스의 칭호를 얻습니다. 그리고 에이스가 된 이들은 차장, 부장이 되어 팀장 타이틀을 따기 위한 득점왕 경쟁에 뛰어듭니다. 각 팀의 에이스들이 모였으니 능력치는 대부분 95점 이상입니다. 자, 만약 내가 축구팀 감독이라면 22골 10도움, 21골 11도움, 20골 12도움을 기록한 공격수 중 누구를 써야 할까요?

정답은 “아무나 쓰면 된다.”입니다. 이 말인 즉슨, 팀장 선발리그에만 진출해도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제 구조를 눈치채야 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양질의 선수들을 수두룩하게 배출했고, 넘치는 자원 속에서도 김부장은 여전히 시즌 20골을 사냥하는 특급 골잡이의 능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갑자기 ‘을’이 됩니다. 주변 모두가 특급 골잡이라면, 최고의 특급 골잡이라도 주전 경쟁을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어렵게 팀장 자리를 따내고 나면 승승장구할 것 같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헤어 나오기 어려운 덫에 걸리게 되는 시기입니다. 주변의 모두가 ‘에이스’급 능력이 기본인 상황에서, 더이상 능력은 차별화 요소가 아닙니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성’입니다.

‘사회성’. 즉, 키워주면 충성을 다할 친구인지, 군말 없이 하라는 대로 하는지, 뺀질 대지는 않는지, 사교적인지, 골프는 잘 치는지와 같은 정성적인 지표가 승부를 가르게 되어, 누구에게 묻더라도 그 친구 괜찮다는 말이 나오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공격수가 골만 잘 넣으면 될 줄 알았는데, 애먼 똥볼 크로스가 날아와도 끝까지 죽어라 뛰면서 공을 쫓는 근성을 보여줘야 감독이 미소 짓는 겁니다. 공격수라 해본 적이 없어도, 수비도 시키면 해야 합니다. 경기가 끝나면 얼른 집에 가고 싶어도, 라커룸에서 동료들과 시시덕거리며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고 친분을 다져야 합니다.

자신이 골을 넣어 경기에 이겼어도 인터뷰에서는 감독에게 공을 돌리는 센스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사내 정치로의 입문입니다. 여기서 잠시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사내 정치를 잘해 역전승을 거둔 선배들의 사례를 쉽게 들을 수 있어, 결과적으로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적성에 맞지 않거나 실패한 김부장들은 어떨까요? 환멸을 느끼고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못 떠납니다. 그들이 덫에 걸렸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팀장급과 부장급은 이직이 어렵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매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연봉이 많다는 것입니다. 연봉이 많다는 것은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신입사원 둘을 뽑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들을 뽑는 것이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팀장급과 부장급은 관리자로 채용해야 하는데, 만약 이들이 업무 파악에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기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낭패가 되어, 팀 단위의 손실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이직하려는 입장에서도 임원으로 스카우트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득이 별로 없습니다. 새 회사에서도 실력만으로 임원 자리를 꿰차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고, 그 회사에도 95점짜리 에이스들은 발에 차이는 상황입니다. 물론 사내정치는 더 어렵습니다. 시골 마을로 막 이사 온 이방인이 이장선거에 출마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결국 메타인지가 잘 되는 김부장들은 현실을 자각하고 몸을 낮춰 회사에 헌신하는 길을 택하게 되고, 자존심이 강한 이는 한 단계 낮은 리그로 내려가 중책을 맡는 선택을 합니다.

축구스타 호날두는 대리, 과장 시절 100점짜리 특급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에이스 시절에 취해 부장이 되고 나서는, 자신의 지위가 ‘을’로 변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회사에 잘 보일 필요가 있었는데 시종일관 목소리를 높이며 경영진과 맞섰고, 결국 최고의 직장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쫓겨나듯 퇴사 당했습니다.

호날두는 이 후 맨시티, 첼시, 레알 마드리드 등의 경쟁사들로 이직하기 위해 열심히 디엠을 보냈지만, 높은 몸값과 리스크에 거절당하고, 결국 하위 리그로 이적해 임원이 되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렇게 특급 선수들도 목에 힘만 주고 다니면 언젠가는 결국 추락하고 맙니다.

현재 시대를 살고 있는 이대리, 박과장들은 과거 김부장들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놓였습니다. 이제는 회사 안에서의 경쟁이 문제가 아니고, 득점왕에 올라도 생활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김부장 시절에는 월급을 많이 받고, 직장을 오래 다녀 노후를 준비하는 공식이 ‘진실’이었는데, 이제 ‘거짓’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회사 안에서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져, 희생과 인고보다는 둥지를 옮기며 몸 값을 올리는 선택을 점차 쉽게 합니다.

이제 이대리, 박과장들은 다시 한번 다음의 질문에 답해보세요.

당신은 대체 불가능한 인재입니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진심으로 응원하지만, 아니라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삶의 주도권을 내 손아귀 안에 쥐고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Epilogue

사실 어느 직장인이라도, 위와 같은 내용을 인식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알고 있어도 뾰족한 솔루션은 생각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알면서도 그저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는 거겠죠.

내 삶의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은 ‘시간’을 내 의지대로 사용한다는 뜻일 겁니다. 하루의 시간 중 내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일 수록,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뾰족한 솔루션이 없더라도,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라도 계속 도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시도하거나, 계속해서 새로운 나만의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만약 이런 노력들이 성공한다면 나와 내 가족에게 무한히 자유로운 ‘시간’을 선물해 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