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제·금융 이론 모델은 틀리지만 그래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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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과 금융학을 공부하다 보면 종종 혼란스러운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분명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과 현실이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런 의문을 품어본 적 있으신가요?

이 모든 이론들이 완벽하지 않다면, 과연 우리는 왜 이것들을 배우고 있는 걸까?

통계학자 조지 E.P. 박스의 유명한 말이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모든 모델은 틀리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유용하다.

이 문장 하나가 경제학과 금융학의 본질을 꿰뚫고 있습니다. 완벽함을 추구하되 현실적 유용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죠.

시장 밸류에이션: CAPE 배수의 명성과 한계

한때의 영웅, CAPE 배수

2000년 닷컴 버블이 터지기 직전, 금융계에는 하나의 전설이 탄생했습니다.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가 개발한 CAPE(주기조정 주가수익비율) 배수가 시장 붕괴를 정확히 예측한 것입니다. 그의 저서 “비이성적 과열”이 시장 정점에서 불과 며칠 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 지표의 신화를 만들어냈죠.

CAPE 배수는 단순히 현재 주가를 과거 10년간의 평균 실질 수익으로 나눈 값입니다. 이를 통해 단기적 수익 변동성을 제거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2000년 당시 이 지표는 1929년 대공황 직전 수준까지 치솟았고, 실제로 시장은 곧바로 급락했습니다.

신화의 균열

하지만 2013년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연구진이 발표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엘로이 디몬이 이끈 연구팀은 2000년의 성공적 예측을 제외하고는 CAPE 배수의 예측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디몬은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우리는 밸류에이션 배수로부터 과거에 어떻게 수익을 냈는지 배울 수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배우기는 어렵다.

개발자조차 인정한 한계

더욱 흥미로운 것은 CAPE 배수의 개발자인 쉴러 교수 자신도 이 지표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2021년 한 칼럼에서 그는 “주식 시장은 이미 상당히 비싸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주가가 꽤 합리적이라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투자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절대적 기준으로는 비싸 보이는 시장도 다른 투자 대안과 비교했을 때는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채권 수익률이 극도로 낮았던 당시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시장 효율성: 상반된 노벨상 수상자들의 지혜

2013년 스톡홀름의 이례적 풍경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시상식은 경제학계에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정반대 견해를 가진 두 학자가 동시에 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유진 파마는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의 핵심 인물로, 시장이 항상 합리적이며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를 반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자산 거품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주가가 높을 때는 그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로버트 쉴러는 정반대 입장이었습니다. 시장이 종종 비이성적이며, 자산 거품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죠. 1990년대 후반 주가 급등이 대표적 사례라고 봤습니다.

모순 속에서 찾은 진실

노벨 위원회는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놀랍게도 둘 다 옳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주가 예측이 매우 어렵지만(파마의 관점), 장기적으로는 밸류에이션 지표가 도움이 될 수 있다(쉴러의 관점)는 것입니다.

파마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은 하나의 모델일 뿐이기 때문에 완전히 사실이 아니다. 어떤 모델도 완전히 사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용적인 용도에는 충분히 유용한 모델이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시장은 장기적으로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종종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죠.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피셔 곡선의 부침

한때 유효했던 관계

1950년대 개발된 피셔 곡선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간의 역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실업률이 낮으면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것이죠. 이 이론은 수십 년간 경제 정책의 핵심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관계의 파괴

하지만 2000년부터 2020년까지의 상황은 이 이론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실업률이 역사적 저점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은 극도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2019년 샌프란시스코 연준의 마리 딜리 총재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피셔 곡선에 관해서는 오늘날 대부분의 논의는 그것이 죽었는지 아니면 심각하게 병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세계화의 영향

이런 변화의 핵심 요인은 세계화였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수입하는 저비용 상품이 소비자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완벽한 경제 상황이었죠 – 높은 고용률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 관세 인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은 이런 균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로부터의 수입이 제한되면 피셔 곡선상의 트레이드오프가 다시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세금 정책: 래퍼 곡선의 논리와 현실

직관에 반하는 아이디어

1970년대 경제학자 아서 래퍼가 제시한 래퍼 곡선은 매력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세율을 낮추면 오히려 정부 수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세금 감면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여 결과적으로 더 큰 세수를 가져다준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곡선은 종 모양으로 표현됩니다. 0% 세율에서는 정부가 아무 수입도 거두지 못하고, 100% 세율에서도 아무도 일하지 않기 때문에 수입이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 수입을 최대화하는 최적 세율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래퍼의 주장이었습니다.

여전히 뜨거운 논쟁

문제는 그 최적 세율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핵심 논쟁거리입니다.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현재 세율이 최적점을 넘어섰다고 주장하는 반면, 진보적 학자들은 아직 여유가 있다고 봅니다.

투자자가 알아야 할 핵심 교훈

모델의 한계 인정하기

이 모든 사례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경제학은 완벽한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죠. 때로는 유효한 관계를 설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관계가 변할 수 있습니다.

CAPE 배수든, 시장 효율성 이론이든, 피셔 곡선이든, 래퍼 곡선이든 – 이들은 모두 현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다각도 분석의 중요성

투자에 있어서는 특히 이런 접근이 중요합니다. 하나의 지표나 이론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관점에서 시장을 분석해야 합니다. 밸류에이션 지표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시장에서 빠져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투자 대안과 비교해보고, 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죠.

유연성 유지하기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연성입니다. 시장은 계속 진화하고 있고, 과거에 유효했던 관계가 미래에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화, 기술 발전, 정책 변화 등은 모두 기존의 경제 관계를 바꿀 수 있는 요인들입니다.

결국 조지 박스의 말처럼, 모든 모델은 틀리지만 어떤 것들은 유용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이들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실용적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투자 결정에서도 이런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 자료: Adam M. Grossman, “Good in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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