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명이 바꾼 엔지니어 성장의 게임룰과 무너진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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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최근 신입 개발자 채용 공고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느끼셨나요? 단순한 경기 침체로 치부하기엔 뭔가 다른 변화의 기운이 감지됩니다. Pleo의 CTO이자 Monzo, Moo 등 글로벌 테크 기업을 거친 메리 윌리엄스가 LeadDev 컨퍼런스에서 던진 경고는 우리 모두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기술 업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이 변화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닙니다. 엔지니어로서 성장해온 기존의 공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충격적인 현실: 73.4% 붕괴된 신입 채용 시장

Ravio의 최근 연구 결과는 단순한 수치를 넘어 우리 업계의 미래에 대한 경종을 울립니다. 기술 분야 신입 직무 채용률이 73.4% 감소했다는 이 데이터는 ‘decimated(10% 감소)’라는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AI가 주니어 엔지니어의 역할을 대체하리라는 예측은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리더들은 여전히 “뛰어난 시니어 엔지니어는 어디선가 저절로 나타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윌리엄스는 이러한 나이브한 생각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시니어 엔지니어가 제우스의 이마에서 완전무장한 채 태어난 미네르바처럼, 어딘가에서 저절로 짠 하고 나타난다고 상상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산업에서 배우는 교훈

이 문제는 기술 업계만의 것이 아닙니다. 법조계에서는 AI가 과거 법률 보조원이 담당하던 판례 조사, 문서 정리 업무를 대체하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문제는 법률 보조원이 미래 변호사로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공급 파이프라인’이었다는 점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일부 변호사들이 AI의 ‘환각(Hallucination)’ 현상으로 생성된 거짓 정보를 그대로 법원에 제출했다가 견책을 받거나 자격이 박탈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AI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죠.

건축계의 변화도 시사점이 큽니다. 손 제도 시대에는 실수 하나가 며칠의 작업을 날리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극도의 신중함을 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도면의 모든 선에 담긴 의미와 구조적 관계를 몸으로 체득했죠.

하지만 3D 모델링 시대에는 한 번의 수정으로 모든 평면도와 입면도가 자동 변경됩니다.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반복적인 수작업을 통해 건물을 속속들이 이해하던 깊이 있는 학습 과정은 증발해버렸습니다.

과거 성장의 비밀: 무의식적 ‘의도적 수련’ 환경

그렇다면 과거의 주니어 엔지니어들은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윌리엄스는 그 핵심에 ‘의도적 수련(Deliberate Practice)‘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의도적 수련이란 잘 설계된 비디오 게임처럼 명확한 동기를 부여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며, 비슷한 과제를 반복하게 해 자연스럽게 실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훈련법입니다.

놀랍게도 과거 주니어의 업무 환경은 이 조건들을 완벽하게 충족했습니다:

  • 체스 모델: 마스터들의 기보를 연구하고 따라 하듯, 시니어의 코드를 보고 배우는 과정
  • 음악 모델: 어려운 악곡을 작은 단위로 쪼개 연습하고 점차 하나로 합치듯, 큰 기능을 작은 태스크로 나눠 해결하는 과정
  • 스포츠 모델: 경기력을 위해 근육을 단련하듯, 반복적인 코딩으로 문제 해결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과정

역량 발달의 4단계

이러한 의도적 수련을 통해 엔지니어는 자연스럽게 역량의 4단계를 밟으며 성장했습니다:

  • 1단계 – 무의식적 무능: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 운전으로 비유하면 운전대나 기어의 용도를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 2단계 – 의식적 무능: 무엇이 잘못된 지는 알지만 계속 실수하는 상태. 기어를 긁거나 깜빡이를 잊는 초보 운전자와 같죠. 가장 고통스럽지만 실제 성장이 일어나는 구간입니다.
  • 3단계 – 의식적 유능: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만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 상태. 막 면허를 따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하는 사람처럼 말이죠. 이 단계의 엔지니어가 주니어 멘토링에 가장 효과적입니다.
  • 4단계 – 무의식적 유능: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완벽하게 수행하는 상태. 운전 과정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능숙한 베테랑 운전자와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윌리엄스는 4단계의 전문가들이 오히려 가르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의 뇌는 수많은 결정을 직관적, 무의식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왜 그렇게 코드를 짰냐”는 질문에 “모르겠어요, 그냥 제 무의식이 결정했어요”라고 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죠.

AI 시대의 새로운 성장 전략

과거의 자연스러운 ‘의도적 수련’ 환경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주니어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훨씬 더 빨리’ 가르쳐야 할까요?

기존 역량의 진화

  • 기초 지식의 심화: 과거에도 DB, 클라우드, 네트워크 등을 배웠지만, 이제는 AI가 생성한 코드를 이해하고 판단하려면 기초가 더욱 견고해야 합니다.
  • ‘문제의 냄새’ 맡기에서 비판적 사고로: 과거에는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했던 잠재적 위험 감지 능력을, 이제는 “왜?”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AI의 제안을 맹신하지 않는 비판적 사고 능력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윌리엄스는 이를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가르치는 법을 모르는” 기술이라며, “철학 교수에게라도 조언을 구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역량들

  • AI 활용 능력: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등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는 기술입니다. 윌리엄스는 “AI가 Jira 티켓을 보고 스스로 일한다”는 말에 “10분 동안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며, AI에게 명확한 지시를 내리는 인간의 능력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이른 시점의 코드 리뷰: 과거에는 미드, 시니어가 되어서야 맡았던 코드 리뷰를 주니어 시절부터 수행하며 좋은 코드와 나쁜 코드를 분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 시스템 전체를 보는 눈: 주니어들이 과거의 ‘하위 태스크’가 아닌 더 큰 단위의 ‘스토리’를 맡게 되면서, 작은 기능 하나가 전체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더 이른 시점부터 이해하는 시스템 사고 능력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발견은 인터뷰에 응한 주니어들이 공통적으로 AI를 “같은 질문을 백 번 해도 화내지 않는, 무한한 인내심을 가진 멘토”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앞으로의 멘토링 방식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시니어와 리더의 새로운 역할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시니어 엔지니어와 리더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코딩 전문가’에서 ‘성장 촉진자’로 재정의해야 합니다.

5가지 핵심 액션 아이템

  • ‘가르치는 법’을 배워라: 자신이 ‘무의식적 유능’ 상태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암묵지를 명시지로 바꾸어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교수법을 의식적으로 학습해야 합니다.
  • ‘의도적 수련’ 환경을 설계하라: 주니어들이 의미 있는 피드백과 반복 학습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업무를 의도적으로 재설계하고 안전한 실패의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 ‘왜’를 설명하는 것을 멈추지 마라: “원래 그래”나 “모범 사례야”라는 권위적인 말 뒤에 숨지 마세요. “마치 세 살배기 아이와 다투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결정의 근본적인 이유를 인내심을 갖고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 스스로 AI 전문가가 되어라: 팀원들을 이끌기 위해선 리더 스스로가 AI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고 그 장단점과 위험성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 건강한 회의주의를 가르쳐라: LLM은 본질적으로 “아주아주 잘 만들어진 자동 완성”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시켜야 합니다. AI가 내놓은 모든 결과물을 의심하고, 출처와 공식 문서를 통해 교차 검증하는 ‘건강한 편집증’을 길러주는 것이 그들의 커리어를 지키는 길입니다.

파도를 막지 말고, 서핑을 배워라

메리 윌리엄스는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두 가지 만트라로 제시합니다.

고통은 필수지만, 괴로움은 선택입니다.

변화의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좌절하고 괴로워할지 아니면 이를 성장의 기회로 삼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바다를 막을 수는 없지만, 서핑을 배울 수는 있습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외면하거나 막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합니다. 해변에 앉아 파도가 잠잠해지기만 기다리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일이죠.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이 거친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고 나아가는 법, 즉 ‘서핑’을 배우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그 방법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변화의 물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변화를 거부하며 뒤처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만들어갈 것인가? 답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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