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요즘 궁금한 게 생기면 어떻게 하시나요? 아마 대부분 검색창을 열거나 챗GPT에 질문을 던지실 겁니다. 빠르고 정확하니까요. 하지만 이 편리함 뒤에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없을까요?
2011년, ‘구글 효과’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단순히 기억력 감퇴를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한 ‘AI 효과’는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챗GPT의 주간 활성 이용자가 7억 명을 돌파한 지금, 우리는 기억력뿐만 아니라 사고력, 창의성, 그리고 인간관계까지 AI라는 제단에 내놓고 있는 건 아닐까요?
경험조차 검색하는 시대, 우리가 잃는 것들
소통 능력의 퇴화: 콜포비아를 넘어선 위기
MZ세대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콜포비아’ 현상을 아시나요? 전화 통화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이 현상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로버트 월터스의 조사에 따르면, 젊은 직장인의 59%가 업무에서도 전화보다 문자를 선호한다고 답했습니다. 절반에 가까운 50%는 업무 관련 전화 통화 자체를 불편해합니다.
하지만 AI 시대의 진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AI와의 소통이 간편하고 효율적이란 인식 때문에 사람과의 소통을 더욱 회피하게 되기 때문이죠. AI는 내 말을 무한대로 들어주고, 즉각적으로 답변합니다. 감정적 에너지 소비도 없죠. 하지만 이런 일방적 소통에 익숙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좋은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충만한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AI와만 소통하는 삶은 “불행한 섬들이 외롭게 떠다니는 미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을 고려하며 참을성 있게 의견을 주고받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회를 지탱하는 소중한 경험치입니다.
창의성의 위축: 경험이 사라지면 상상도 사라진다
여러분은 창의성이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시나요? 다음의 문장이 바로 그 답을 제시합니다.
창의성은 경험과 기억에 뿌리를 둔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단순히 경험을 보존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닙니다. 상상에도 관여한다는 점입니다. 경험에서 추출한 요소들을 재조합해 새로운 맥락에 맞게 변형할 때, 바로 그 순간 창의성이 발현됩니다. 풍부한 창의성을 위해선 폭넓은 경험이 필수적인 이유입니다.
프로그래밍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처음부터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실질적인 성장 기회를 잃는다고 합니다. 즉, AI 활용에 앞서 축적된 경험 아래 최소한의 기초체력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죠.
대학가의 충격적 사건
최근의 GPT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오늘날 대학 교육 현장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과제 제출 전날, 챗GPT 서비스가 15시간 동안 중단되었고, 과제를 미뤘던 학생들은 패닉에 빠졌죠. 결국 밤을 새워 손수 과제를 완성해야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학생들의 반응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학생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는 “AI와 강제로 단절된 덕분에 배움의 본질이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배움의 본질: 과정이 곧 성장이다
배움의 본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자료를 검토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그 여정. 바로 이 과정에서 인내와 성취감, 문제해결 방식이 길러지고 지적 근력이 쌓입니다.
AI가 자료 분석에는 탁월할지 몰라도, 몸으로 부딪혀 얻는 통찰은 오직 인간의 몫입니다. 이것이 바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배움의 핵심입니다.
기업의 위기: 성장 사다리의 단절
AI 의존이 기업 인재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심각합니다. 특히 가장 큰 위험은 성장 사다리의 단절입니다.
신입을 뽑지 않고 경력직만 채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스킬 부채(skill debt)’가 쌓여 경쟁력이 약화됩니다. 여기에 빅테크 AI 기술 의존까지 겹치면 기술과 인력 모두 외부 종속에 놓이는 구조적 위기에 빠집니다.
경험의 공백: 암묵적 지식의 단절
과거 신입사원들은 단순 업무를 맡으며 일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시행착오를 겪고, 상사와 동료에게 묻고, 작은 실수에서 배우는 과정이 곧 학습이었죠. 그러나 이제 이런 업무는 대부분 AI가 대신합니다.
문제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의 전수가 끊긴다는 점입니다. “팀장은 그래프보다 표를 선호한다”, “이 부서와는 메일보다 전화를 먼저 하는 게 빠르다” 같은 세세한 노하우는 문서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의 공백은 결국 조직의 방식과 문화를 단절시키는 치명적 문제로 이어집니다.
AI 시대에 더욱 빛나는 인간 경험
하지만 절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AI가 발전할수록 인간 경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큰 실제 세계에서 AI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AI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인간의 고유한 강점이 주목받게 될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양한 현상의 근저에 있는 원리를 파악해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능력, 이것은 AI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미래의 인재상: 확장형 리더
미래의 핵심 인재상으로 ‘확장형 인재(augmentative talent)’와 ‘확장형 리더(augmentative leader)’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AI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팀원처럼 리드하며 자신의 사고와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AI의 답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빈틈을 창의적으로 채우는 능력. 바로 이것이 AI 시대를 이끌 인재의 핵심 역량입니다.
교육과 리더십이 답이다
전문가들은 ‘AI 효과’를 극복할 방법으로 교육과 리더십을 강조합니다.
오늘날 교육 현장은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기보다 책상 앞에 앉아 시뮬레이션만 돌리고 있는 것이죠. 진정한 배움은 직접 탐구와 시행착오, 실패, 자기 성찰 등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사고하는 힘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발달하죠.
기업의 조직 리더에게도 새로운 역할이 요구됩니다. 과거에 리더가 지시자였다면 이제는 성장 경험의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니어에게 복잡한 문제해결, 부서 간 협업, 고객 소통 같은 과제를 의도적으로 맡기고 그 과정을 가르쳐야 합니다. AI를 신입의 대체재가 아닌 ‘효율적인 팀원’으로, 주니어는 그 ‘AI를 관리하는 팀장’으로 키워야 합니다.
경험과 AI의 조화로운 공존
인간의 경험이 밑바탕에 깔린 다음에 AI가 전략적인 역할을 수행하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AI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빠른 정보 처리, 방대한 데이터의 패턴 인식, 생산성 극대화. 하지만 인간의 직접 경험을 앞세워 AI를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AI가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는 파트너가 되도록 다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AI 리터러시와 인간 경험의 통찰력을 갖춘 융합형 인재. 이들이 바로 AI 시대를 이끌 주역입니다. 편리함에 모든 것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경험을 통해 진정한 성장을 이룰 것인가? 지금은 선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경험조차 검색하는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AI와 함께 성장하는 지혜입니다. 그 지혜의 출발점은 바로 우리 자신의 경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