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혹시 비싼 생수를 사면서 “이건 달라”라고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아니면 고급스러운 작은 병에 담긴 샴푸를 보고 “역시 품질이 다르겠지”라고 느껴본 적은요?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광고의 마법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1893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에서부터 시작된, 인간 본성과 깊이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1893년, 경제 대공황 속에서 펼쳐진 세계 박람회
1893년 미국은 세기 최악의 경제 공황을 겪고 있었습니다. 철도 파산, 금 공급 부족, 은행 붕괴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경제 활동이 무려 40%나 급락했죠. 상상이 되시나요? 오늘날로 치면 모든 상점의 절반이 문을 닫고, 직장인 두 명 중 한 명이 실직하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이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시카고 만국박람회는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6개월 동안 2,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박람회를 찾았는데, 이는 당시 미국 전체 인구의 약 40%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사람들은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던 걸까요?
세계 최초의 대관람차와 뱀 기름 연고의 등장
박람회장에는 조지 워싱턴 페리스 주니어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대관람차가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36칸의 거대한 관람석은 한 번에 2,100명 이상을 태울 수 있었고, 하루에 약 38,000명의 방문객에게 690에이커 규모의 박람회장을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죠.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은 박람회장 구석진 곳에 부스를 차린 클라크 스탠리입니다. 그는 방울뱀이 담긴 자루를 들고 구경꾼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퍼포먼스는 극적이었죠. 뱀을 끓는 물에 넣고, 떠오르는 기름 잔여물을 모아 병에 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명 높은 “클라크 스탠리의 뱀 기름 연고”였습니다.
이야기의 힘: 호피 인디언의 비밀?
스탠리는 자신의 연고가 류머티즘, 신경통, 좌골신경통, 허리 통증, 요통, 근육 경직, 치통, 염좌, 부종 등 모든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특히 호피 인디언에게서 이 비밀스러운 치료법을 배웠다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죠.
당시 의학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원시적이었습니다. 페니실린이 발견되기까지는 아직 35년이나 남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스탠리의 성공 비결은 의학 지식의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의 힘’이었습니다.
스탠리는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을 브랜드 이미지로 활용하고, “놀랍도록 강력한 진통제”, “모든 통증을 치료하는 최고의 연고”라는 강렬한 문구로 광고했죠. 물론 실제 효과는 전혀 없었지만, 사람들은 이야기에 매료되어 지갑을 열었습니다.
현대판 뱀 기름: 우리는 여전히 속고 있다
13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광고는 여전히 가격, 품질, 희소성, 그리고 터무니없는 약속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죠.
“The Attention Merchants”의 저자 팀 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속적인 합리주의와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주술적 사고의 매력에 굴복할 가능성은 인간의 정신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오직 광고주만이 그것을 깨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유니레버의 교묘한 실험: 수아브 vs 에바우스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한 유니레버의 실험은 이 개념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유니레버는 뷰티 블로거들에게 “에바우스(Evaus)”라는 이름의 작은 샴푸와 컨디셔너 병을 보냈습니다. 한 패션 블로거는 제품을 사용한 후 “부티크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이라고 극찬했죠.
여기서 반전이 시작됩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에바우스는 단순히 30온스 병에 3달러면 살 수 있는 일반 수아브 샴푸를 작고 예쁜 병에 담아 이름만 거꾸로 쓴 것이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성분도, 제조 공정도, 품질도 완전히 동일했죠.
블로거들이 스튜디오에 초대되어 카메라 앞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깜짝 놀라는 표정은 유니레버의 온라인 캠페인 영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시장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수아브 제품에 대한 “품질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가격이 곧 품질이라는 착각
이 실험이 성공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저렴한 제품은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가격만큼의 가치를 얻는다”는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이 비싼 제품을 구매한 우리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입니다.
피지 워터 광고를 들어보셨나요?
가장 가까운 대륙에서 1,600마일 떨어진 곳에서 가져옵니다. 피지에는 열대성 비가 내리는데, 이 비는 화산암을 통과하여 수원지에서 병에 담겨집니다. 피지 워터는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물입니다.
한 병에 몇천 원을 내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 멋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쁜 병 디자인도 한몫하죠. 하지만 실제로 일반 생수와 맛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투자의 세계에서도 통하는 이야기의 힘
이런 현상은 금융 시장에서도 나타납니다. 아마존이 상장 21년 만에 주가수익비율(PER)이 70배에 달했을 때의 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알파벳, 알리바바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죠. S&P 500 지수보다 4배나 높은 밸류에이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블룸버그가 조사한 52명의 애널리스트 중 51명이 보유를 권고했고, 그중 48명은 매수를 추천했습니다. 일부는 아마존이 “가치주”가 되었다고까지 주장했죠.
아마존은 전형적인 성장주입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자신이 “가치 투자”를 한다고 믿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이 더 안전하고 합리적인 접근처럼 들렸으니까요. 이것 역시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입니다.
광고업계가 금융업계보다 앞선 이유
광고업계 사람들은 행동 심리학이 금융 분야에 적용되기 훨씬 전부터 인간 본성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보다 여러분 자신을 더 잘 압니다. 그들의 역할은 팀 우가 표현했듯이 “마법 같은 사고의 매력에 우리를 굴복시키는 것”이죠.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우리 자신의 합리적 사고보다는 외부의 힘과 본능적인 인간 본성에 의해 좌우됩니다. 우리는 합리적이고 싶지만, 실제로는 감정적이고 이야기에 약한 존재입니다.
깨어있는 소비자가 되기 위하여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서 클라크 스탠리가 뱀 기름을 팔던 시대나, 2025년 우리가 피지 워터를 마시는 오늘날이나, 본질은 같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원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이야기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자신이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실제 제품의 본질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의식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번에 비싼 제품을 집어들 때, 한 번쯤 물어보세요.
내가 지금 제품의 품질을 사는 걸까, 아니면 이 제품에 덧씌워진 이야기를 사는 걸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여러분은 더 현명한 소비자, 더 깨어있는 투자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자료: A Wealth of Common Sense, “Surrendering to the Charms of Magical Thin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