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난해지는 진짜 이유
어릴 적 500원으로 살 수 있었던 과자가 지금은 2,000원이 넘습니다. 월급은 조금씩 오르는데 통장 잔고는 늘 텅 비어 있고, 저축한 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녹아내립니다.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물가 상승’이라 부르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근본적인 작동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핵심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과자의 가치가 오른 게 아니라, 당신이 가진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돈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가치를 잃어가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자본주의의 심장부에 자리한 비밀입니다.
빚으로 돈을 만드는 시스템의 충격적인 진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돈은 어디서 올까요? 많은 사람들이 중앙은행이 금고의 금을 바탕으로 화폐를 찍어낸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완전한 착각입니다. 현대의 돈은 거의 대부분 ‘빚’을 통해 무(無)에서 창조됩니다.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전 세계는 명목화폐 시스템을 채택했습니다. 정부가 “이 종이가 돈이다”라고 법으로 선언했기에 가치를 갖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내재 가치가 없는 화폐 말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당신이 은행에서 1억 원을 대출받는 순간, 은행은 기존에 있던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통장에 ‘100,000,000’이라는 숫자를 입력할 뿐입니다. 이 순간,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1억 원이 창조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용창조(Credit Creation)의 실체입니다.
지급준비율과 돈의 무한 증식
은행이 무한정 돈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중앙은행이 정한 지급준비율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은 실로 경이롭습니다.
지급준비율이 10%라고 가정해봅시다. A가 은행에 100만 원을 예금하면, 은행은 10만 원만 보관하고 90만 원을 B에게 대출합니다. A는 여전히 자신의 통장에 100만 원이 있다고 믿고, B는 90만 원이라는 새로운 돈을 손에 쥡니다. 시중 통화량이 100만 원에서 190만 원으로 증가한 것입니다.
B가 받은 90만 원으로 물건을 사고 그 돈이 C의 계좌로 들어가면, 은행은 다시 9만 원만 남기고 81만 원을 D에게 대출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최초의 100만 원은 이론적으로 최대 1,000만 원까지 팽창합니다.
이자라는 함정: 멈출 수 없는 부채의 굴레
여기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근본적이고 무서운 모순이 드러납니다. 은행이 빚으로 돈을 만들었다면, 그 빚에 대한 이자는 도대체 어디서 나올까요?
중앙은행이 최초에 1억 원을 발행했고, 시중은행이 신용창조를 통해 총 10억 원의 통화량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봅시다. 대출 만기가 되어 모두가 빚을 갚아야 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합니다. 갚아야 할 돈은 원금 10억 원에 이자 5천만 원을 더한 10억 5천만 원인데, 시중에 존재하는 돈은 정확히 10억 원뿐입니다. 이자는 애초에 창조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누군가가 또 다른 빚을 내는 것.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으려면 이자를 갚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대출이 발생해야 하고, 이는 통화량의 끊임없는 팽창을 의미합니다.
자본주의의 화폐 시스템은 애초에 빚의 총량이 통화량보다 항상 많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채가 영원히,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플레이션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입니다.
주식: 인플레이션을 먹고 자라는 유기체
많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를 위험한 도박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주식은 인플레이션 시대에 자산을 지키는 가장 강력하고 논리적인 수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개별 기업은 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식 시장 전체, 즉 코스피나 S&P 500 같은 주가 지수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이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방법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상승합니다. 기업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당연히 상승한 비용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여 소비자에게 전가합니다.
한 제과점에서 밀가루 가격과 인건비가 각각 10% 올랐다고 가정해봅시다. 제과점은 빵 가격을 2,000원에서 2,200원으로 인상합니다. 이익률이 동일하게 유지되더라도, 매출과 이익의 숫자 자체가 인플레이션율만큼 자연스럽게 증가합니다.
주가는 기업의 미래 이익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합니다. 기업의 명목 이익이 인플레이션으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투자자들은 당연히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 할 것입니다. 물가 상승 → 기업 명목 매출 및 이익 증가 → 주가 상승이라는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주식은 단순히 숫자로 표현되는 이익에 대한 권리만이 아닙니다. 주식은 그 기업이 소유한 공장, 기계, 토지, 특허권 같은 실물 자산에 대한 소유권입니다.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므로, 반대로 실물 자산의 가치는 상승합니다. 10년 전 1억 원 하던 공장 부지가 지금 3억 원이 되었다면, 그 공장을 소유한 회사의 자산 가치 역시 3배로 증가한 것이고, 이는 주가에 반영됩니다.
레버리지의 마법
성공적인 기업은 자기자본만으로 사업하지 않습니다.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공장을 짓고, 기술을 개발하며, 시장을 확대합니다. 기업이 연 3% 금리로 돈을 빌려 연 10%의 이익을 낸다면, 그 차이인 7%는 주주들의 몫이 됩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이 더해지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기업이 10년 만기로 10억 원을 빌렸는데 매년 3%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10년 뒤 10억 원의 실질 가치는 현재보다 훨씬 떨어져 있습니다. 기업은 현재 가치가 높은 돈을 빌려 사업하고, 나중에 가치가 떨어진 돈으로 빚을 갚는 셈입니다.
이것은 빚이 없는 개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오직 빚을 활용하여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금: 시스템이 무너질 때의 최후의 보루
주식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바로 신용 위험입니다. 아무리 우량한 기업이라도 파산할 수 있고, 극심한 경제 위기에서는 주식 시장 전체가 폭락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시스템이 붕괴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산을 지켜줄 수 있는 궁극의 피난처는 없을까요?
인류는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금(Gold)입니다.
진짜 돈과 가짜 돈의 대결
금의 가치는 정부나 중앙은행의 약속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간 부여해 온 사회적 합의와 그 자체의 희소성, 변하지 않는 물리적 특성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명목화폐나 주식과 금을 구분하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점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국가들이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했다가 자국 화폐가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는 끔찍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2000년대의 짐바브웨, 최근의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은행 예금과 주식, 채권은 어떻게 될까요? 해당 국가의 화폐로 표시된 모든 금융 자산의 가치는 사실상 ‘0’으로 수렴합니다. 하지만 금은 다릅니다. 달러가 망하든, 유로화가 망하든, 금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금은 그 자체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진짜 돈’의 지위를 수천 년간 유지해왔기 때문입니다.
지구에 매장된 금의 양은 유한하며, 매년 채굴되는 금의 양은 전체 금 보유량의 약 1.5%~2%에 불과합니다. 이는 중앙은행들이 마음만 먹으면 통화량을 수십 퍼센트씩 늘릴 수 있는 명목화폐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팽창시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수록, 유한하고 희소한 금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더욱 빛날 수밖에 없습니다. 금에 투자한다는 것은 단순한 시세 차익을 넘어, 내가 가진 자산의 구매력을 장기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에 가입하는 것과 같습니다.
채권: 포트폴리오의 균형추
채권은 언뜻 보기에 인플레이션 시대에 가장 불리한 자산처럼 보입니다. 채권이란 정부나 기업이 돈을 빌리면서 발행하는 차용증서로, 투자자는 만기까지 정해진 이자를 받고 원금을 돌려받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명목화폐로 지급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인플레이션율이 채권의 이자율보다 높다면, 투자자는 실질적으로 구매력을 잃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채권 투자의 가장 큰 위험, 인플레이션 위험입니다.
위험의 반대편에 서다
그럼에도 수많은 투자자와 기관들이 여전히 채권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채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의 가격이 하락할 때, 그 손실을 방어해주는 안전판 역할입니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면, 사람들은 위험한 주식 시장에서 돈을 빼내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자산으로 이동합니다. 이때 가장 대표적인 안전자산이 바로 미국 국채입니다.
미국 정부는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발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채무 불이행 위험이 ‘0’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위기 상황에서는 전 세계의 돈이 미국 국채로 몰리고, 채권의 가격은 오히려 상승합니다.
주식과 채권을 50:50으로 배분한 투자자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경제 위기로 주식 가치가 -40% 폭락하더라도, 동시에 채권 가치가 +20% 상승한다면, 전체 자산의 손실은 -10% 수준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채권이 위험 관리의 핵심 자산으로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또한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채권 가격은 상승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주기적으로 성장과 침체를 반복하며, 중앙은행은 이에 대응하여 금리를 조절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채권은 이자 수익과 금리 하락기의 자본 차익을 통해 장기적으로 꾸준한 수익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파도를 타는 법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은 그 바다를 끊임없이 흐르게 만드는 거대한 해류와 같습니다. 이 해류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현금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결국 제자리에 머물거나 뒤처지게 될 것입니다.
돈의 가치가 계속해서 떨어지는 이 시스템 속에서, 현금은 가장 위험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왜 자본주의에서 인플레이션이 필연적인지를 신용창조와 이자 시스템이라는 근본 원리부터 파헤쳐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 주식은 기업의 성장과 실물 자산 가치 상승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엔진
- 금은 모든 것이 무너질 때를 대비한 궁극의 구명보트
- 채권은 거친 파도 속에서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안정적인 밸러스트
이 세 가지 자산은 각기 다른 특징과 역할을 가지고 있지만, 가치가 계속 희석되는 명목화폐로부터 우리의 부를 지키고, 장기적으로 자산을 증식시킨다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단기적인 시장의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이 거대한 흐름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을 이해하고, 인플레이션이라는 파도의 힘을 이용하여 주식, 금, 채권이라는 배를 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항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평범한 개인이 부를 쌓고 경제적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본질적인 길입니다.
이래도 자산 배분 안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