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혹시 이런 장면을 본 적 있나요?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이 ‘이제 본격적으로 성장할 때’라며 채용 공고를 쏟아냅니다. 10명이던 팀은 6개월 만에 50명이 되고, 1년 후엔 100명을 넘어섭니다. 투자자들은 “빠르게 스케일업하라”고 독려하고, 창업자는 조직도를 보며 뿌듯해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예전엔 하루 만에 결정되던 일이 이제는 회의만 세 번 거칩니다. 런칭까지 2주면 충분했던 기능이 이제는 두 달이 걸립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회사는 무너집니다.
데이터가 말하는 진실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를 뒤흔든 데이터가 있습니다. CB Insights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망한 966개 스타트업을 분석한 결과, 가장 큰 사망 원인은 ‘조기 스케일링(premature scaling)’이었습니다. 시장을 잘못 읽어서도, 가격 정책 실패도, 고객 이탈도 아닙니다. 바로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사람을 뽑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이겁니다. 메타 분석에 따르면, 탁월한 인재가 아닌 평범한 직원을 한 명 늘릴 때마다 조직의 전체 생산성은 0.9%씩 떨어진다고 합니다. UCLA의 레고 조립 실험이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2명으로 구성된 팀은 36분 만에 작업을 완료했지만, 4명 팀은 56분이 걸렸습니다. 사람이 많다고 빨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느려진다는 거죠.
20억 원의 운명을 가르는 것
같은 20억 원의 투자금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 시나리오 A: 뛰어난 인재 5명으로 구성된 팀
- 런웨이: 약 3년
- 1인당 매출: 400만 달러
- 의사결정 속도: 즉각적
- 커뮤니케이션 비용: 최소
- 시나리오 B: 평범한 직원 20명으로 구성된 팀
- 런웨이: 6개월 미만
- 1인당 매출: 100만 달러
- 의사결정 속도: 평균 92일
- 커뮤니케이션 비용: 기하급수적 증가
Forbes가 1,842명의 창업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00명 규모의 스타트업은 제품 관련 의사결정에 평균 92일이 걸린다고 밝혔습니다. 92일이면 10명 규모의 경쟁사는 이미 제품을 출시하고, 테스트하고, 다음 버전까지 준비한 시간입니다.
인스타그램이 증명한 인재 밀도의 힘
숫자로 보면 더 극적입니다.
- 인스타그램: 직원 13명일 때 페이스북에 1조 원(10억 달러)에 매각 → 1인당 가치 770억 원
- 유튜브: 직원 65명일 때 구글에 1.5조 원에 인수
- 왓츠앱: 직원 55명으로 9억 명 사용자 확보, 19조 원(190억 달러)에 페이스북 매각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극도로 높은 인재 밀도(Talent Density)입니다. 넷플릭스가 이 개념을 강조했지만, 그 본질은 이미 2000년대 초중반, 닷컴 버블 붕괴 후 구조조정을 통해 발견된 것입니다.
반면 애플은 직원 1인당 238만 달러의 매출을 냅니다. 메타는 219만 달러, 엔비디아는 206만 달러입니다. 그런데 골드만삭스는 어떨까요? 49,000명의 직원이 필요합니다. 애플 한 명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내기 위해 말이죠.
관료주의라는 물리 법칙
이건 단순히 관리 문제가 아닙니다. 물리학적 현상입니다.
3,2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메타 분석 결과, 팀 규모가 커질수록 복잡도는 선형이 아닌 지수적으로 증가합니다. 파나소닉의 공장 데이터는 생산 라인 당 50명을 넘어서면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UC 샌디에이고의 Jennifer Mueller 교수는 이를 ‘관계적 손실(relational loss)’이라고 부릅니다. 팀이 커질수록 개인이 느끼는 지원과 소속감이 줄어든다는 거죠. 갤럽 조사에 따르면 10명 이하 기업의 직원 참여도는 42%지만, 대기업은 30%에 불과합니다.
외부 전문성이라는 해법
여기서 흥미로운 대안이 나옵니다. McKinsey가 자율 팀을 연구한 결과, 외부 전문가를 활용한 팀이 내부 평범한 인력을 쓴 팀보다:
- 품질: 3배 향상
- 비용: 40% 절감
- 속도: 2.6배 빠름
스트라이프가 이 접근법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시리즈 B까지 직원을 50명 이하로 유지하면서 수십억 달러의 결제를 처리했습니다. 어떻게? 컴플라이언스, 사기 방지, 지역 확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파트너사를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력서가 아니라 결과를 샀던 거죠.
드롭박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 4명에서 IPO까지, 핵심 제품에만 극도로 집중하고 나머지는 최고 수준의 외부 전문가를 활용했습니다.
허영 지표의 함정
많은 스타트업이 직원 수를 성장의 지표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PitchBook이 1,100개 테크 엑싯을 분석한 결과는 명확합니다. 직원 1인당 매출을 최적화한 기업이 헤드카운트를 키운 기업보다 엑싯 배수가 240% 높았습니다.
스냅챗은 100명 미만의 직원으로 1억 명의 일일 활성 사용자를 확보했습니다. 시그널은 50명 이하로 5천만 사용자에게 암호화 메시징을 제공합니다. 반면 전통 미디어 기업들은 훨씬 작은 규모의 사용자를 서비스하는 데 수천 명이 필요했죠.
AI가 가속화하는 변화
그리고 이제 AI가 등장했습니다.
과거 10~15년간의 ‘빠르게 규모를 키워라(Blitzscaling)’ 논리는 점점 낡은 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뭔지 아시나요? DAU나 MAU가 아닙니다. “직원 1인당 매출이 얼마죠? 1인당 영업이익은요?”입니다.
속도가 아닌 밀도의 시대
앞으로의 비즈니스는 지난 10~15년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속도(Speed)’보다 ‘밀도(Density)’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다음 10년의 승자가 될 프레임워크는 이렇습니다:
- 상위 1% 인재를 채용하라, 평범한 인력 말고
- 직원 1인당 매출을 추적하라, 헤드카운트 말고
- 전문성은 외부에서 구매하라, 내부 충성도 말고
- 사람을 추가하기 전에 시스템을 구축하라
- ‘우리 회사 커 보인다’는 허영을 거부하라
거울 앞의 질문
여러분의 모니터에 이 메모를 붙여두세요.
골드만삭스가 애플의 마진을 맞추려면 49,000명이 필요한데, 우리는 왜 골드만삭스를 따라하고 있는가?
이 메모가 떨어질 때, 여러분의 런웨이도 함께 떨어집니다.
성공한 모든 스타트업은 같은 선택 앞에 섭니다. 초기 성공을 만든 린(Lean) 문화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90%처럼 규모를 키우다 망할 것인가. 작은 팀이 작동한다는 건 이미 증명됐습니다. 왓츠앱, 인스타그램, 스트라이프가 그 증거죠.
진짜 질문은 이겁니다.
창업자가 통념을 무시하고 오래 지속되는 무언가를 만들 용기가 있는가?
TechCrunch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폐업한 스타트업은 966개로, 2023년 769개보다 25% 증가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제품-시장 적합성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찾은 후 스스로를 고용해서 죽였습니다.
여러분의 팀은 지금 몇 명인가요? 그리고 그들 각각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인가요?
참고 자료: David Kim, “The scaling paradox: Why elite startups abandon their winning formu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