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를 열면 수백 개의 게시물이 쏟아집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크롤하고, 가끔 ‘좋아요’를 누르지만, 정작 댓글을 달거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무관심이나 게으름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뇌의 작동 방식, 플랫폼의 설계 원리, 그리고 사회적 압력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뇌는 생각보다 소비를 선호한다
인간의 뇌는 태생적으로 에너지 절약형입니다. 새로운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행위는 상당한 인지적 비용을 요구합니다. 반면 스크롤링은 수동적 행동으로,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모하면서도 즉각적인 도파민 보상을 제공합니다.
능동적 사고는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키고 작업 기억을 동원해야 하는 고된 작업입니다. 반면 숏폼 영상을 보거나 피드를 넘기는 행위는 감각적 자극만으로도 만족감을 줍니다. 뇌는 본능적으로 후자를 선택합니다. 릴스, 숏츠, 틱톡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자극은 뇌에게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인 것이죠.
플랫폼은 생각을 방해하도록 설계되었다
SNS 플랫폼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사용자의 체류시간을 극대화해 광고 수익을 늘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깊은 생각이나 토론은 사용자를 멈춰 서게 만듭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입니다.
대신 알고리즘은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 노출합니다. 무한 스크롤 구조는 자연스러운 멈춤을 제거하고, 다음 콘텐츠로 계속 이동하게 만듭니다. 분노, 귀여움, 공감 같은 즉각적 감정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알고리즘의 우선순위를 차지합니다. 사용자가 멈춰서 생각하는 순간, 플랫폼은 수익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침묵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의견을 표현하는 순간, 우리는 노출됩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누군가 비난할 수도 있으며, 나중에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눈치 문화와 평판 리스크에 대한 민감성이 강합니다.
‘괜히 나섰다가 욕먹는다’는 집단 심리가 작동합니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자기검열이 더욱 강화됩니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평가를 의식하며,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관객’으로 남는 쪽을 선택합니다. 참여는 위험하지만, 침묵은 안전합니다.
좋아요는 소속감의 신호다
SNS에서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공감의 표현이라기보다, ‘나도 여기에 속해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생각의 표현이 아니라 집단적 소속감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제스처입니다.
반면 댓글은 개인의 의견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소속감보다 개인적 노출이 강하고, 그만큼 책임도 따릅니다. 좋아요는 낮은 리스크로 참여의 느낌을 주지만, 댓글은 높은 노출과 함께 잠재적 비판의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아요는 넘쳐나지만, 의미 있는 대화는 사라집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정답 찾기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질문하고 토론하는 습관을 길러주지 못했습니다. 비판적 사고보다 빠른 판단을, 복잡한 논리보다 감정적 반응을 선호하도록 학습되었습니다.
SNS는 정보를 소비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학교가 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감정을 소비하는 놀이공원으로 변모했습니다. 생각의 기술 자체가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쉬운 선택을 합니다. 좋으면 잠깐 멈추고, 싫으면 넘기는 단순한 반응 패턴에 익숙해졌습니다.
참여는 무의미한 노동처럼 느껴진다
‘참여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이 만연합니다. 댓글과 토론은 의미 있는 대화보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로 여겨집니다. 좋아요 수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가치 체계 속에서, 깊이 있는 생각보다 짧은 영상과 밈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할 힘이 없는 게 아닙니다. 생각할 이유를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의미 있는 대화가 바이럴 콘텐츠에 밀려나고, 진지한 토론이 ‘무거운 것’으로 치부되는 환경에서, 침묵은 합리적 선택이 됩니다.
1%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는 다르게 행동합니다. SNS를 수동적 소비의 공간이 아닌 능동적 학습의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상적 감정이 오가는 장이 아니라, 깊이 있는 대화가 이어지는 공간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됩니다.
이들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이어가며, 생각의 불씨를 지킵니다. 희소하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 1%가 서로 연결될 때, SNS는 다시 의미의 플랫폼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꾼 것은 항상 생각하는 소수였습니다.
침묵은 선택의 결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너무 위험하며, 너무 보상이 없습니다. SNS는 그 피로와 위험을 회피하는 데 최적화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질문을 던집니다.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 속에서 배움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그리고 그 생각을 누군가와 나눴습니까?
침묵하는 99%에 머물 것인가, 대화하는 1%가 될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