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제 끝났다”는 소리를 들어온 퍼플렉시티. 그런데 이 회사는 매번 더 강해져서 돌아왔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을까요?
구글과 오픈AI라는 거대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사용자들이 계속해서 퍼플렉시티를 찾는지 그 비밀을 파헤쳐보겠습니다.
컨퍼런스 무대 뒤에서 일어난 일
발표를 몇 분 앞둔 순간, 데모 화면이 멈췄습니다. 보통의 CEO라면 팀원에게 해결을 맡기고 발표 준비에 집중했을 텐데, 아라빈드 스리니바스는 달랐습니다. 그는 직접 노트북을 열고 코드를 확인하기 시작했죠.
이 장면이 상징적인 이유는 퍼플렉시티가 가진 핵심 철학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버그가 보이면 즉시 고치고,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실험하며, 사용자가 붙는지 확인하고 리텐션 곡선이 유지되면 과감히 확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속도의 철학입니다.
브라우저가 차세대 전장이 되는 이유
에이전트의 운영체제로서의 브라우저
스리니바스가 YC 무대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다음 전장은 챗봇이 아니라 브라우저”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전망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의미하죠.
크롬이 탭을 프로세스로 독립시켜 인터넷 사용 방식을 바꾼 것처럼, 퍼플렉시티의 브라우저는 질문과 작업 자체를 프로세스로 전환합니다. 회의 일정을 잡고, 이메일을 정리하고, 쇼핑을 대행하며, 부동산 조사나 금융 리서치까지 탭마다 비동기로 수행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일상의 출발점을 장악하는 전략
우리가 매일 열어두는 브라우저는 사실상 일상의 출발점입니다. 뉴스 확인, 은행 업무, 쇼핑, 협업 도구 사용까지 모든 것이 브라우저에서 시작되죠. 따라서 브라우저를 차지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하루 전체를 장악하는 전략적 선택이 됩니다.
구글의 딜레마가 만든 절호의 기회
광고 모델이라는 족쇄
퍼플렉시티가 브라우저 전장을 선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글의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습니다. 구글은 뛰어난 엔지니어와 압도적인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골든게이트 브릿지가 보이는 호텔을 추천해달라”고 묻는 순간을 생각해보세요. 가장 적합한 한두 개의 호텔을 바로 보여줄 수 있다면 경험은 완벽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구글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익스피디아, 부킹닷컴, 호텔스닷컴 등 광고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죠. 좋은 답변을 내놓을수록 스스로의 비즈니스를 훼손하게 되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합니다.
스타트업만의 기회
바로 이 지점에서 스타트업의 기회가 열립니다. 퍼플렉시티는 광고 매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실패해도 주가가 흔들리지 않고, 광고주를 설득할 필요도 없죠. 그래서 과감하게 ‘정답을 말하는 검색’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디어 집착보다 리텐션 신호에 주목하라
초기의 작은 신호들
퍼플렉시티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트위터 데이터를 SQL로 변환해 검색하는 작은 툴이었죠. 초기 사용자들은 “와, 이건 신기하다!”라고 감탄했지만, 스리니바스는 그 순간에 도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WOW”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초기 사용자가 느끼는 놀라움은 대부분 하루, 길어야 며칠이면 사라집니다. 남는 건 딱 하나, 계속 쓰는가 아닌가입니다.
리텐션 곡선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트위터 검색 도구와 뒤이어 만든 디스코드 봇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용자들이 단발적 반응을 보인 게 아니라, 며칠, 몇 주가 지나도 꾸준히 사용을 이어간 것이죠.
이 작은 신호가 퍼플렉시티의 확신이 되었습니다. “아이디어가 맞을까?”를 고민하는 대신, “사람들이 계속 쓰고 있는가?”를 지표로 삼았습니다.
브랜드는 정확도에서 태어난다
네트워크 효과가 약한 AI 서비스의 특성
AI 서비스는 다른 분야와 달리 네트워크 효과가 약합니다. 내일 당장 새로운 앱으로 갈아타도, 연락처나 대화방처럼 절대 놓칠 수 없는 자산이 묶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무엇이 사용자를 붙잡을까요? 퍼플렉시티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정확도입니다.
정확도에 대한 집착이 만든 신뢰
스리니바스와 팀은 처음부터 화려한 기능이나 디자인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틀리지 않는 답변에 집착했죠. 검색 기반 인용을 반드시 달고, 첫 토큰을 가장 빠르게 내보내며, 군더더기를 덜어낸 답변 UI를 만들어냈습니다.
새해 전날, 서버가 느려 한 질의에 7초씩 걸리던 시기에도 사용자들은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스크린샷으로 공유했죠. “늦더라도 정확하다”는 경험은 신뢰로 변했고, 그 신뢰가 곧 브랜드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속도가 유일한 방어막이다
“The only mode you have is speed”
YC 무대에서 스리니바스가 거듭 반복한 문장은 단순했습니다.
The only mode you have is speed.
스타트업이 가진 유일한 방어막은 속도라는 뜻입니다.
버그가 터지면 남에게 미루지 않고 직접 고칩니다. 사용자가 불편해하면 그 즉시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제품 개선과 실험 주기를 가능한 한 짧게 돌리고, 경쟁자가 따라오기 전에 이미 새로운 버전을 내놓습니다.
거대 기업과의 차별화 지점
구글과 오픈AI는 자본과 인재를 무한히 쏟아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스타트업은 다르죠. 자원이 부족한 만큼, 속도로 격차를 벌려야 합니다.
우리들의 흔한 착각 5가지
많은 창업자와 직장인들이 빠지는 착각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착각 1: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한다
이건 무조건 대박 날 거야.
하지만 시장은 아이디어의 위대함보다, 사용자가 실제로 계속 쓰는지를 묻습니다. 리텐션이 없는 아이디어는 종이 위의 낙서일 뿐입니다.
착각 2: 마케팅이 브랜드를 만든다
광고 문구와 멋진 로고가 브랜드의 전부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제품이 주는 경험을 기억하죠.
착각 3: 대기업은 절대 못 이긴다
많은 창업자가 “구글이 하면 끝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거대 기업에게도 움직일 수 없는 구조적 제약이 있습니다.
착각 4: 네트워크 효과가 없으면 오래 못 간다
메신저처럼 모든 친구가 모여야만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네트워크보다 강력한 건 ‘신뢰의 경험’입니다.
착각 5: CEO는 전략만 세워야 한다
현장에서 직접 버그를 고치는 CEO는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태도가 조직 전체에 스며들며 속도를 만듭니다.
성공은 속도 위에서 만들어진다
퍼플렉시티의 이야기를 하나로 압축하면 결국 속도입니다. 브라우저를 차세대 전장으로 선점한 과감한 선택, 구글의 딜레마를 기회로 읽어낸 냉철한 판단, 아이디어가 아니라 리텐션 신호를 붙잡은 집요함, 정확도를 브랜드로 쌓아올린 집착.
이 모든 흐름은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합니다.
느리면 죽는다. 빠른 자만이 살아남는다.
대기업이 가진 돈과 인재는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속도는 다르죠. 오늘 바로 실험하고, 내일 바로 고치며, 사용자가 붙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이것이 작은 팀이 거대한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창업이든 커리어든, 성공은 화려한 계획이 아니라 속도 위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단순한 진실을 끝까지 믿는 사람이 퍼플렉시티처럼 기회를 붙잡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문제를 발견했을 때 즉시 손을 댈 만큼 집착할 수 있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