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혁신가입니까? 개혁을 추진하는 리더입니까? 그렇다면 잠시 멈춰 서서 이 질문을 던져보세요.
내가 바꾸려는 것이 왜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었을까?
오늘날 빠른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에, 우리는 종종 기존의 것들을 낡고 비효율적이라 여기며 성급하게 개혁하려 합니다. 하지만 G.K. 체스터턴이 제시한 ‘울타리 원칙’은 이런 접근법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날카롭게 경고합니다.
체스터턴의 울타리란 무엇인가?
현명한 개혁가의 조건
체스터턴은 이런 우화를 들려줍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울타리가 있습니다. 현대적인 개혁가는 쾌활하게 다가가서 “쓸모없다고 생각하니 치워버립시다”라고 말합니다.
반면 현명한 개혁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러분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시면, 저는 분명 치워버리지 않겠습니다. 가서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돌아와서 그 쓸모를 알았다고 말씀하시면, 제가 철거하도록 허락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핵심 원칙은 명확합니다:
처음에 왜 울타리를 세웠는지 알기 전까지는 울타리를 철거하지 마십시오.
울타리가 존재하는 이유
울타리는 우연히 생기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그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에 세워진 것입니다.
체스터턴은 『이단』에서 가로등을 예로 듭니다. 사람들이 가로등을 철거하려 할 때, 어떤 이는 더 밝은 전등을 원해서, 어떤 이는 고철을 원해서, 또 어떤 이는 어둠을 원해서 행동합니다. 하지만 정작 ‘빛의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결국 밤이 되어 전쟁이 벌어지고, 아무도 자신이 누구를 공격하는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가스등 아래에서 논의했을 법한 것을 이제는 어둠 속에서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현대 조직에서의 체스터턴의 울타리
위계질서 없는 기업의 함정
최근 많은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하며 기존의 위계질서를 해체하려 합니다. 위계질서가 권력 남용을 허용하고, 하위 계층의 좋은 아이디어를 막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체스터턴의 울타리 원칙을 적용해봅시다. 위계질서가 왜 그토록 만연하게 존재할까요?
위계질서의 숨겨진 기능들:
- 명확한 의사결정 구조 제공
- 책임 소재의 명확화
-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신속한 지휘체계
- 조직 내 갈등 해결의 최종 판단자 역할
공식적인 위계가 없으면 보이지 않는 위계가 형성됩니다. 이때 가장 유능한 사람이 아닌, 가장 카리스마 넘치거나 공격적인 사람이 주도권을 쥐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사회적 규범의 복잡한 생태계
인간의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사회적 규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보기에는 임의적이고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규범들도, 실제로는 협력 촉진, 갈등 예방, 질서 유지라는 중요한 목적을 수행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존댓말 문화를 생각해보세요. 젊은 세대에게는 불편하고 구시대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시스템은 세대 간 존중, 사회적 안정성, 소통의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적용: 습관 바꾸기
나쁜 습관의 숨겨진 기능
여러분도 한 번쯤은 나쁜 습관을 고치려 노력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할까요? 체스터턴의 울타리 관점에서 보면, 나쁜 습관도 나름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습관이 충족시키는 숨겨진 욕구들:
- 담배: 스트레스 해소, 사회적 연결, 휴식 시간 확보
-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 지루함 회피, 즉각적 자극, 사회적 소속감
- 야식: 감정적 위안, 하루의 보상, 긴장 완화
단순히 습관을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해로운 대체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효과적인 습관 변화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 근본적 욕구 해결: 습관이 충족시키던 진짜 필요를 파악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해결
- 건설적 대체: 더 나은 습관으로 점진적 교체
혁신의 역설: 공작 꼬리 이론
로리 서덜랜드가 제시한 공작 꼬리 사례는 체스터턴의 울타리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는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포식자의 눈에 잘 띄고, 도망치기에도 불편합니다. 그런데 왜 진화 과정에서 제거되지 않았을까요?
꼬리의 숨겨진 가치는 바로 그 비효율성 자체입니다. “나는 이런 불리한 조건을 감당할 만큼 건강하고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만약 외부 관찰자가 공작새에게 더 실용적인 꼬리를 달아준다면? 당장은 효율적이겠지만, 유전적 우수성을 증명하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이는 기업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보기에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의식이나 절차들이 실제로는 조직의 가치관을 전달하고, 구성원들의 헌신도를 테스트하는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변화를 위한 실천 가이드
1단계: 존재 이유 탐구
변화를 추진하기 전에 다음 질문들을 던져보세요:
- 이것이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 누가, 왜 이런 방식을 도입했는가?
-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가?
- 현재까지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가?
2단계: 이해관계자 분석
- 이 시스템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 변화로 인해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 숨겨진 이해관계는 없는가?
3단계: 점진적 실험
급진적 변화 대신 작은 실험부터 시작하세요:
- 파일럿 프로그램 운영
- 부분적 개선 시도
- 변화의 영향 모니터링
4단계: 피드백 루프 구축
- 변화의 긍정적/부정적 결과 추적
- 예상치 못한 부작용 관찰
- 필요시 빠른 조정 가능한 체계 마련
균형잡힌 시각: 보수와 진보 사이
체스터턴의 울타리는 무조건적인 보수주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적 겸손을 바탕으로 한 신중한 진보주의를 추구합니다.
윌 듀런트와 아리엘 듀런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100개 중 99개 이상은 대체하려는 기존 방식보다 열등할 것입니다. 아무리 총명하고 박식한 사람이라도, 한 평생 동안 자신의 사회 관습이나 제도를 안전하게 판단하고 무시할 만큼 충분한 이해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는 변화를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질을 높이자는 제안입니다.
미래를 위한 과거의 지혜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벽을 쌓기 전에 저는 묻곤 했습니다. 무엇을 벽으로 막고, 무엇을 벽으로 막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불쾌감을 주는지.
체스터턴의 울타리 원칙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빠른 변화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때로는 멈춰서 생각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과거에 매달리지도, 성급하게 미래로 달려가지도 말고, 현재를 깊이 이해한 바탕 위에서 현명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음에 무언가를 바꾸고 싶을 때, 잠시 멈춰 서서 물어보세요.
이 울타리는 왜 여기에 있을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여러분은 진정으로 가치 있는 변화의 방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 자료: Farnam Street, “Chesterton’s Fence: A Lesson in Thin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