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인터넷 역사상 가장 극적인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한때 인간의 창의성과 소통으로 가득했던 디지털 공간이 점점 봇과 AI에게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닌, 우리의 현실 인식 자체를 바꿔놓는 거대한 전환입니다.
‘죽은 인터넷 이론’이란 무엇인가?
2021년, 온라인 포럼에 한 익명의 사용자가 던진 충격적인 주장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은 공허하고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 간의 자유로운 교류라는 약속은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죽은 인터넷 이론(Dead Internet Theory)의 출발점입니다.
당시만 해도 이런 주장은 터무니없는 음모론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2년 후 ChatGPT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죠. 언어학자 애덤 알렉식이 지적했듯이, “예전에는 광기 어린 변두리 음모론이었지만, 이제는 훨씬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는 것입니다.
숫자로 보는 인터넷의 변화
데이터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사이버 보안 회사 임퍼바에 따르면, 2024년 봇 트래픽이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51%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인간을 넘어섰습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ChatGPT 출시 이후 구글 검색 결과 상위 20위 안에서 AI 생성 콘텐츠가 400%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변화는 광고 생태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애덜리틱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화이자부터 뉴욕 경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브랜드의 광고가 실제 사용자가 아닌 봇에게 전송되어 수백만 건의 광고비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AI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콘텐츠 생태계
창작자들의 위기
여러분이 매일 보는 블로그 글, 소셜미디어 포스팅, 심지어 뉴스 기사까지도 이제는 AI가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마고 블랑샤르”라는 가명으로 와이어드를 포함한 5개 매체에 기사를 기고한 작성자가 AI로 밝혀져 모든 기사가 삭제되는 사건이 발생했죠.
이런 상황에서 진짜 인간 창작자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이 AI 요약을 제공하면서 사용자들이 원본 사이트를 방문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는 창작자들의 광고 수익 감소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플랫폼의 계산된 선택
알렉식은 날카로운 지적을 합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콘텐츠를 억지로 제공하는 것이 사업적으로 이득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AI 계정이 많아질수록 인간 콘텐츠 제작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진화가 아닌 경제적 동기에 의한 의도적 변화임을 시사합니다. 플랫폼들은 더 저렴한 AI 콘텐츠를 선호하고, 이는 인간 창작자들을 더욱 주변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죠.
인간의 언어까지 바뀌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AI가 우리의 언어 사용 패턴까지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보고에 따르면, ChatGPT에서 자주 사용되는 “delve(탐색)”나 “meticulous(꼼꼼한)”와 같은 단어들이 2022년 이후 팟캐스트에서 더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OpenAI의 샘 알트만도 “실제 사람들이 LLM 언어의 독특한 특징을 습득했다”고 인정했죠.
우리는 이제 AI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AI처럼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실 인식의 왜곡과 사회적 분열
이런 변화는 단순한 언어적 현상을 넘어 집단적 현실 인식의 틀을 흔들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큐레이션하는 콘텐츠는 이미 극단적인 내용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여기에 AI가 생성한 콘텐츠까지 더해지면서 온라인 담론과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알렉식은 이를 “대규모 AI 정신병”이라고 표현합니다.
미국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실제보다 더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인식 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해결책을 향한 시도들
클라우드플레어의 제안
일부 기업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클라우드플레어의 CEO 매튜 프린스는 “인간은 무료로 콘텐츠를 얻고 로봇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봇들이 웹사이트에 접근할 때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여 창작자들의 수익을 보호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AI 개발자들의 딜레마
흥미롭게도 AI 개발자들 자신도 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ChatGPT 같은 모델들은 인터넷에서 학습하는데, AI가 생성한 저품질 콘텐츠(“슬랩”)가 늘어나면서 학습할 고품질 데이터가 고갈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4년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AI 모델이 자신이 생성한 데이터로 학습하면 성능이 “붕괴”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죽은 인터넷 이론이 현실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기술의 편리함을 추구하다가 인간의 창의성과 진정성을 잃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것인가?
이 문제는 단순히 기술적 해결책만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대응,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각자의 의식적인 선택이 필요합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콘텐츠와 인간이 만든 콘텐츠를 구별하고, 진정한 인간의 목소리를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참고 자료: Time, “Inside the ‘Dead Internet’ Theory—and Why It’s Sp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