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통찰력 있는 분석을 통해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역설적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세력들이 이러한 진보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현상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학의 성과 vs 반동 세력의 저항
백신과 기후변화, 두 분야의 놀라운 성과
피터 호테즈와 마이클 만, 두 저명한 과학자가 공저한 “Science under siege”는 현재 과학계가 직면한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호테즈가 지적했듯이, 백신 기술은 전반적으로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특히 새로운 mRNA 백신은 그야말로 과학적, 의학적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단 1년 만에 개발된 mRNA 백신은 기존 백신 개발에 소요되던 10-15년의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시켰습니다. 이는 수십 년간 축적된 기초과학 연구와 첨단 생명공학 기술이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마이클 만이 개발한 “하키 스틱” 차트로 유명한 기후변화 연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생에너지 기술의 발전으로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이 상상 이상으로 현실적이 되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비용은 지난 10년간 각각 80%와 70% 이상 급락했으며, 이제 화석연료보다 경제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상황입니다.
반동 세력의 위험한 움직임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RFK 주니어와 그의 동료들은 백신 반대 운동을 통해 수천 명, 어쩌면 수백만 명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트럼프 일당 역시 재생에너지라는 획기적인 기술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회의론을 넘어 명백한 진보 거부로 볼 수 있습니다. 과학적 증거와 데이터보다는 정치적 이념과 기득권 유지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의 놀라운 반전 스토리
1990년대 초반의 암울한 전망
크루그먼 교수는 1990년대 초반을 기준점으로 삼아 미국의 변화를 분석합니다. 당시 “미국의 아침”이라는 짧은 행복감이 사라진 후, 미국은 다시 저조한 성장과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게 추월당하고 있다는 인식에 시달렸습니다.
1992년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의 베스트셀러 “세계경제전쟁”은 미국이 일본과 유럽과의 경제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Rising Sun” 역시 미래가 일본의 것이라는 전제를 담고 있었죠.
당시 많은 전문가들과 대중들은 미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조업 경쟁력 상실, 기술 혁신 둔화,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 등이 주요 우려 사항으로 제기되었습니다.
예상을 뒤엎은 놀라운 성과
그러나 실제 결과는 어떨까요? 서로가 선택한 세 경쟁국(일본, 유럽연합, 미국)의 1992년부터 2024년까지 실질 GDP 성장률을 보면 놀라운 반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 기간 동안 다른 선진국들을 압도하는 경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우월한 성과의 상당 부분은 신기술 도입과 생산성 향상에 성공하여 다른 부유한 국가들에 대한 확실한 우위를 확립한 데 기인합니다.
특히 정보기술 혁명, 바이오테크놀로지, 금융 혁신 등의 분야에서 미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혁신 생태계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인플레이션 안정화의 지속적 성과
19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에 맞서 거둔 승리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을 바탕으로 한 통화정책 운용을 통해 예상 인플레이션이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이는 중앙은행의 신뢰성과 일관된 정책 기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독립적인 연방준비제도가 인플레이션을 다시 통제 불능 상태로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중의 신뢰가 이러한 안정성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도시 안전의 극적인 개선
1990년대와 현재의 극명한 대조
우익 인사들은 여전히 미국의 주요 도시들이 범죄로 가득 찬 지옥 같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데이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30년 또는 35년 전 대도시는 지금보다 그 디스토피아적 비전에 훨씬 더 가까웠습니다. 1960년 이후 현재까지 여러 주요 도시의 살인율 변화를 보면, 극적인 개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87년 출간된 톰 울프의 “The Bonfire of the Vanities”를 읽어보면 당시 뉴욕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설 속 한 인물은 “뉴욕에서 살고 싶다면 단열, 단열, 단열해야 한다”며 “도시 전쟁의 참호”로부터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도시 생활의 현실
크루그먼 교수가 뉴욕의 한 야외 카페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이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를 상징합니다. 도시 생활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통계상의 개선이 아닙니다. 실제 도시 생활의 질적 향상, 공공안전 시스템의 발전, 도시 계획의 혁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진보 거부의 심층적 원인 분석
특별 이익 집단의 정치적 압박
진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 일부는 특별한 이익 정치, 특히 화석연료 업계의 로비 활동에 있습니다. 기존 에너지 산업은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발전을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석유, 가스, 석탄 기업들은 수십 년간 구축해온 인프라와 정치적 영향력을 보호하기 위해 체계적인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학적 연구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치인들에게 로비 활동을 펼치며, 대중 여론을 조작하려 시도합니다.
본능적이고 이념적인 저항
하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많은 부분이 본능적이라고 분석합니다. MAGA 유형의 사람들은 재생에너지를 ‘깨어 있고 남성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진짜 남자들은 물건을 태우는 것’이라는 원시적 사고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합리적 분석보다는 감정적, 상징적 차원에서 작동합니다.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 터빈보다는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더 ‘남성적’이고 ‘강력해’ 보인다는 비논리적 인식이 그 바탕에 있습니다.
처벌과 공포의 세계관
트럼프와 MAGA 세력의 또 다른 특징은 모든 것을 처벌과 공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미국이 다른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힘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을 개방하는 국제 협약을 체결하고 준수함으로써 번영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기술주의자들에게 통화 정책을 맡겨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 무장한 사람들의 통제가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의 자발적 협력을 통해 도시가 안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복잡한 현대 사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현재 미국이 직면한 위험과 과제
성공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정책들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들은 미국의 과거 성공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공의 기반을 적극적으로 약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과학 연구에 대한 예산 삭감, 교육 시스템에 대한 공격, 이민 정책의 후퇴, 그리고 석탄과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오염 에너지원으로의 회귀 시도 등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에 대한 공격은 특히 우려스럽습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유지되어온 물가 안정성을 위험에 빠뜨리고, 스태그플레이션을 되살릴 가능성을 높입니다.
불완전하지만 분명한 진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이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높고 심화되는 불평등으로 인해 성장의 혜택이 매우 불균등하게 분배되었고, 지식 기반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일부 지역과 사람들이 뒤처지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는 분명한 진보가 있었습니다. 경제 성장, 기술 혁신, 도시 안전성 개선, 인플레이션 안정화 등 다방면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문제는 현재 미국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망치기로 결심했다는 점입니다.
진보의 미래를 위한 성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학과 기술의 발전, 경제적 성취, 사회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왜 일부 세력들은 이를 거부하고 과거로 돌아가려 할까요?
이는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과 반지성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현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단순하고 확실한 답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과학적 사고와 충돌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진보를 위해서는 성과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합니다. 과학과 이성에 기반한 정책 결정, 포용적 성장을 위한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과 데이터를 존중하는 문화가 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참고 자료: Paul Krugman, “Why Does the Right Reject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