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그의 핵심 이론인 ‘전문화’가 전례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인공지능의 등장이 250년간 지속되어온 경제 패러다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경제 전문화의 두 가지 제약
시장의 범위라는 첫 번째 벽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경제 전문화를 제약하는 두 가지 요소를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시장의 범위”입니다. 작은 시장에서는 다양한 전문화된 사업을 유지할 만큼 충분한 수요를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인구 1,000명의 작은 마을에서는 전문 시계 수리공이나 고급 피아노 조율사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에서는 이런 전문직종들이 충분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죠. 이처럼 시장의 크기가 전문화의 깊이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불가피한 위험이라는 두 번째 장벽
두 번째 제약은 전문화에 따른 “불가피한 위험”입니다. 경제의 전문화 패턴은 구조적이기 때문에 변화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특정 기술이나 산업이 급작스럽게 쓸모없게 되면, 개인과 기업, 심지어 경제 전체가 어렵고 장기적인 전환기를 거쳐야 합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항공업, 관광업, 외식업에 특화된 기업과 개인들이 팬데믹으로 인해 극심한 타격을 받았죠. 반면 배달업, 온라인 쇼핑, 원격근무 솔루션 분야는 급성장했습니다.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전문화의 위험성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글로벌화 시대: 시장 범위 제약의 극복과 새로운 위험의 등장
제2차 대전 후 전문화의 세계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문화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디지털 혁명과 운송·통신 기술의 발전이 “시장의 범위”라는 첫 번째 제약을 급격히 완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개발도상국들에게 이는 게임 체인저였습니다. 1인당 GDP가 낮았던 국가들도 해외 시장과 기술에 접근하게 되자 비교 우위를 활용해 급속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고, 인도가 IT 서비스의 글로벌 허브로 부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위험 제약의 부활: 경제 안보의 시대
하지만 글로벌 전문화가 심화되면서 위험 제약이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기후 변화,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무역갈등 등 연쇄적 충격이 발생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경제적 안보를 국가 안보와 불가분의 관계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반도체 대중국 수출 제재,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유럽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 탈피 등이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효율성보다는 회복력과 자립성을 우선시하는 “디커플링”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전문화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
전문 지식 희소성의 종말
하지만 스미스의 전문화 모델은 곧 훨씬 더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생성형 AI의 등장입니다.
전통적인 전문화는 쉽게 획득하거나 이전할 수 없는 특정 지식과 전문성을 축적하는 데 기반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ChatGPT, Claude, Gemini 같은 AI 모델들이 거의 모든 분야의 전문 지식을 누구에게나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법률 서비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과거에는 변호사만이 가질 수 있었던 법률 지식이 이제 AI를 통해 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복잡한 법정 전략이나 협상 기술 등은 여전히 인간 변호사의 영역이지만, 기본적인 법률 자문은 AI가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인적 자본의 재편: 무엇이 살아남을 것인가
전문 지식의 희소성이 낮아지면 그에 따른 가격도 하락할 것입니다. 반면 이전하기 어려운 지식과 기술, 즉 쉽게 설명하거나 문서화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만이 가치를 유지하거나 더 큰 가치를 갖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가치가 하락할 분야:
- 정형화된 분석 업무 (재무 분석, 시장 조사 등)
- 번역 및 통역 서비스
- 기본적인 코딩 및 프로그래밍
- 표준화된 의료 진단
가치가 상승할 분야:
- 창의적 문제 해결과 혁신
- 복잡한 인간관계 관리
- 예술적 감성과 미적 판단
- 윤리적 의사결정과 리더십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향한 전환점
회복력과 효율성 사이의 새로운 균형
현재 우리는 250년간 지속되어온 전문화 패러다임의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위험 회피를 위한 부분적 디커플링이, 개별 경제 주체 차원에서는 AI로 인한 전문성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은 1인당 GDP가 낮거나 인구 규모가 작은 국가들입니다. 이들은 국내 수요 창출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세계 시장에 대한 접근성마저 제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
그렇다면 개인과 기업, 국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개인 차원에서는:
- 암묵적 지식과 경험 중심의 역량 개발
- 창의성과 감성 지능 강화
- 평생학습을 통한 지속적 적응력 확보
기업 차원에서는:
- 공급망 다변화와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
- AI와 인간의 협업 모델 개발
- 핵심 역량의 재정의와 차별화 전략 수립
국가 차원에서는:
- 경제 안보와 효율성의 균형점 모색
-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혁신
- 국제 협력과 자립성의 조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불변하는 원칙
애덤 스미스가 250년 전에 제시한 전문화 이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적용 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위험에 대한 인식 증가와 AI 기술의 발전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물결이 기존 패러다임을 재편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전문화의 본질인 ‘효율성 추구’와 ‘가치 창출’이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지만, 그 구현 방식은 시대에 맞게 진화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앞으로 10년 후에도 가치있을 전문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참고 자료: Project Syndicate, “Adam Smith at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