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세계에서 생존과 성공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자금력도, 기술력도 아닌 바로 실행 속도입니다. Scale AI의 CEO 알렉산더 왕(Alexandr Wang)이 2019년 팀에 보낸 메모는 이 속도의 비밀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낙관주의가 현실을 만든다.
스타트업의 딜레마: 성장과 함께 사라지는 속도
왕은 후보자들에게 “요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같은 답을 합니다. 바로 스타트업 특유의 빠른 실행력을 잃고 대기업처럼 느려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N번째 팀원도 10번째 팀원만큼 임팩트 있게 일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규모가 커질수록 이런 효율성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림보 효과: 인간 심리가 만드는 속도의 함정
왕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예상 소요 시간이 실제 소요 시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오래 걸릴 거야”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오래 걸리고, “금방 끝날 거야”라고 생각하면 더 빨리 끝난다는 것이죠.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적 근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마라톤의 목표 효과
약 900만 건의 마라톤 완주 기록을 분석한 히스토그램을 보면 놀라운 패턴이 드러납니다. 전체적으로는 정규분포를 따르지만, 3시간, 3시간 30분, 4시간, 4시간 30분 등 ‘반올림 숫자’ 구간에서 유독 큰 피크가 나타납니다.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특히 0-1식의 명확한 목표(달성/미달성)에 특별히 잘 적응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4분 마일의 심리적 장벽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4분 마일’ 기록입니다. 오랫동안 모든 사람이 1마일을 4분 이내에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1954년 로저 배니스터가 이 벽을 깨자, 이후 많은 사람들이 연달아 4분 이내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심리적 기준선이 바뀌자 실제 성과도 함께 변화한 것입니다.
학생의 과제 마감일 현상
우리 모두 경험해본 현상이 있습니다. 과제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대부분 마감 직전에야 끝내는 것입니다. 마감일이라는 기준이 존재하면, 사람들은 그 마감 직전에 맞춰 과제를 완료하게 됩니다.
왕은 이 현상을 ‘림보 효과(Limbo Effect)’라고 명명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준선이 어디에 있든, 그 바로 아래를 아주 잘 맞춰서 통과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입니다.
긴급함 vs 예상 소요 시간: 실행 속도의 결정적 차이
긴급함이 극도로 높은 환경
서비스가 다운된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사이트가 멈춰 있는 매 순간이 치명적이기 때문에, 모두가 최대한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초기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가 실패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새로운 일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는 순간마다 상황이 크게 악화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실상 ‘마감일’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마감일은 곧 ‘지금’이죠.
현실적인 예상 소요 시간의 함정
하지만 ‘현실적인’ 예상 소요 시간을 설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예상 소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미리 계획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센티브 구조가 실제로 바뀝니다.
예상 소요 시간보다 더 빨리 끝낸다고 해서 특별히 체감되는 이득이 없지만, 반대로 예상 소요 시간보다 늦게 끝내면 손해(계획을 못 지킨다는 인식)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상 소요 시간에 맞춰 ‘림보 게임’을 하듯 일을 맞추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단순히 예상 소요 시간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속도가 느려집니다.
낙관적 목표 설정의 마법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왕은 아주 낙관적인 예상 소요 시간을 설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결과 분포에서 10번째 퍼센타일에 해당하는, 정말 빠른 시간으로 예상 소요 시간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평균적으로는 여전히 ‘긴급함’이 극도로 높은 환경보다 조금 더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10%의 경우에는 약간 느릴 수도 있지만, 그 이후에는 여전히 압박을 받으며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하게 됩니다.
즉, 낙관적인 예상 소요 시간을 설정하면 실제로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낙관주의가 현실을 바꾸는 것입니다.
현실에서의 비관주의 편향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제품팀에서는 예상 소요 시간을 짧게 잡았다가 못 맞추는 것보다 넉넉하게 잡는 게 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센티브 구조 때문에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실제로는 예상 소요 시간을 다소 비관적으로 잡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비관적인 분포로 예상 소요 시간을 잡으면, 결과는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소한 문제들이 계속 쌓여 결국 큰 타격을 입히게 됩니다. 낙관주의가 부족하면 어떤 제품, 팀, 미션도 서서히 죽어갑니다.
Scale AI의 실행 철학: 속도와 야망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Scale AI는 두 가지 핵심 신조를 세웠습니다:
- “속도를 높여라(Up the tempo)”
- “야망이 현실을 만든다(Ambition shapes reality)”
예상 소요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실행하는 것만이 림보 효과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입니다. 낙관주의 역시 효과적인 해법 중 하나이며, 진심으로 낙관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목표보다 더 빠르게 해내는 림보 게임을 계속할 수 있고, 결국에는 현실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통찰: 기대가 현실을 만든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원리를 일찍이 간파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는 그들을 지나치게 챙길 필요가 없다는 걸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웠습니다. 그들에게 위대한 일을 기대하면, 실제로 위대한 일을 해내더군요.
이는 단순한 격려가 아닙니다. 기대 자체가 성과를 결정하는 강력한 요인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낙관주의를 현실로 만들기
왕의 메시지는 모든 실행가와 창조자들에게 명확한 행동 지침을 제시합니다. 여러분의 낙관주의가 여러분의 현실을 바꾸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실행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아주 사소한 일조차 몇 주씩 걸리게 만드는 비관주의의 늪에서 벗어나세요. 우리의 낙관과 결의는 우리가 해낼 수 있는 모든 일에, 개별적인 작은 일부터 인생 전체에 걸친 성취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여러분은 어떤 ‘예상 소요 시간’에 갇혀 있나요? 그리고 그 기준선을 더 낙관적으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나요?
결국 현실을 바꾸는 것은 기술이나 자본이 아닌, 바로 여러분의 낙관주의입니다.
참고 자료: Alexandr Wang, “Optimism Shapes Re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