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행복은 목표가 아니다: 해피콘드리아의 함정

끝없는 행복 추구의 악순환

심리학자 에드가 카바나스(Edgar Cabanas)는 우리가 빠져있는 행복의 함정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합니다. 그는 책 ‘해피크라시’에서 이렇게 말했죠.

더 나은 삶(행복한 삶)이 있다는 약속은 자기계발서, 코치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목표란 끝없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코 달성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자기계발서를 사는 사람들은 한 권만 사지 않습니다. 여러 권을 사죠. 만약 그 책들이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면, 그중 하나만 읽어도 충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전자기기를 사고 나면 금세 최신 버전이 나와서 절대 최신을 유지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더 행복한 삶’이라는 개념 자체가 끝도 없고 정답도 없는 잘못된 개념인 것이죠.

해피콘드리아라는 현대 질병

카바나스는 ‘해피콘드리아(Happycondriacs)’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는 건강염려증에서 착안한 용어로, 충분히 행복한데도 불구하고 더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 상태를 말합니다.

해피콘드리아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며, 여기에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남들처럼 좋은 차가 없어서, 연봉이 높지 않아서, 예쁘지 않아서… 내가 불행한 이유처럼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죠.

하지만 이것들이 충족되더라도 다음의 목표가 등장할 뿐입니다. 해피콘드리아의 삶은 끝나지 않는 영원한 굴레인 것입니다.

행복을 위한 조건 3가지: 자기결정성 이론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걸까요?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차드 라이언(Richard Ryan)이 발표한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 명쾌한 답을 제시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방식으로 성장, 변화, 발전하려는 동기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동기는 세 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의 충족에 의해 주도됩니다.

1. 자율성(Autonomy):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자율성은 외부 환경에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욕구를 말합니다. 개인이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경향이 있죠.

여기서 주의할 점은 자율성이 독립성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독립성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개념이지만, 자율성은 내적인 것으로 개인의 의지와 선택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의 지시를 받더라도 그 일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찾고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자율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유능성(Competence): 능력을 발휘하고 성장하는 기쁨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능력 있는 존재이기를 원하고,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를 바랍니다. 이 과정에서 너무 쉽거나 어려운 과제가 아닌,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적절한 도전을 통해 유능함을 지각하고 싶어 하죠.

개인이 스스로를 유능하다고 여길수록 도전을 추구하고, 어려움에 직면하여 성취감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러한 유능성에 대한 욕구 충족은 다음에 설명할 연결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능성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3. 연결성(Relatedness): 의미 있는 관계의 힘

연결성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의미 있는 관계를 경험하며, 사회 집단에 속하고 싶은 욕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포함하죠.

흥미롭게도 우리가 게임에 빠지는 이유도 바로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입니다:

• 캐릭터를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고(자율성)
• 게임을 반복하며 실력이 증가하고 등급이 올라가며(유능성)
• 누군가와 협동하거나 경쟁합니다(연결성)

영화 속 주인공의 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탑건>의 매버릭은 능력은 있지만 공동체와 충돌하던 인물이었죠. 하지만 동료의 죽음으로 각성하여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굿 윌 헌팅>의 윌 헌팅 역시 뛰어난 수학적 능력은 있었지만 사회에 어울리지 못했는데, 숀 맥과이어가 나타나며 그의 성장을 도와줍니다. 자율성과 유능성, 그리고 연결성이 모두 충족되면서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관계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행복 연구

정신과 의사 로버트 월딩거(Robert Waldinger)는 약 75년간 724명과 그들의 자손의 인생을 추적해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지 연구하는 엄청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해마다 그들의 직업과 가정생활, 건강 상태에 관해 설문했고, 기간이 길다 보니 연구를 다음 세대가 이어받는 식으로 진행되었죠.

로버트 월딩거는 이 연구의 네 번째 총 책임자로서, 75년간의 연구에서 얻은 가장 분명한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좋은 관계가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관계가 주는 세 가지 놀라운 효과

1. 고독은 독이다

연구 결과 가족, 친구, 공동체와 사회적 연결이 긴밀할수록 더 행복하고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은 행복감을 덜 느낄 뿐만 아니라 중년기에 건강이 더 악화되고, 수명이 짧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적 문제가 아닙니다. 신체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위험 요소인 것이죠.

2. 관계의 질이 양보다 중요하다

연구진은 대상자들의 인생을 80대까지 따라가며, 건강하고 행복한 80대가 누가 될지 예측해봤습니다. 그 결과 50세에 인간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사람들이 80세에 가장 건강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배우자 만족도가 높았던 사람들의 경우, 신체적인 고통이 심한 날에도 마음은 행복하다고 답했다는 점입니다. 반면 불행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은 신체적인 고통이 감정적인 고통에 의해 더욱 극대화되었다고 답했죠.

친구가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좋은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3. 좋은 관계는 뇌까지 보호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애착으로 단단히 연결된 관계를 가진 80대는 그렇지 않은 80대보다 더 건강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이 힘들 때 의지가 되어줄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기억력이 더 선명하고 오래 지속되었죠.

반면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이 의지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더욱 빠른 기억력 감퇴를 보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로버트는 좋은 관계가 언제나 원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연구 대상인 80대 부부 중 몇몇은 허구한 날 다퉜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가 의지가 되어줄 거라고 믿는 한, 그런 다툼은 기억력에 큰 타격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은퇴 후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

로버트 월딩거의 TED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이 있습니다:

75년간의 연구 가운데서 은퇴 후 가장 행복했던 사람들은 직장 동료와 친구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연구 대상들도 젊은 시절에는 대부분 부와 명성, 높은 성취를 추구해야만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75년 동안 연구는 거듭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은 그들이 의지할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요.

지금 이 순간을 행복으로 인식하기

행복은 선택이다

행복은 선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이 행복을 선택할 여유를 얻지 못하거나, 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미래에 있으리라 믿는 행복, 에드가 카바나스가 말하는 존재하지 않는 행복을 향하는 실수를 하죠.

여러분도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려보세요. 아마 의외로 단순한 것들이 떠오를 겁니다. 친구들과 함께 나눴던 실없는 대화와 고민거리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의지했던 공간, 가족과 함께 형편없는 음식을 먹으며 웃었던 기억, 떠났던 여행지의 날씨 따위 말이죠.

그때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행복하기 위해서 했던 것들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 정말 좋았는데’라는 기억으로 남아있죠. 현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금의 기억도 훗날 행복한 기억으로 남겠지만, 오늘의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죠.

감사와 애정의 힘

그렇기에 지금의 모든 것들과 내 환경,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더 감사하고 애정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라고 속삭입니다. 더 좋은 직장, 더 높은 연봉, 더 멋진 집…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이런 외적인 조건들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자율적으로 살고 있는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성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실천 방법

1. 작은 선택의 자율성부터 시작하기

큰 인생의 변화를 꿈꾸기 전에, 일상에서의 작은 선택들부터 의식적으로 해보세요. 오늘 점심 메뉴를 정할 때, 퇴근 후 시간을 보낼 때, 주말 계획을 세울 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선택해보세요.

2. 성장과 도전의 균형 찾기

너무 쉬워서 지루하지도, 너무 어려워서 좌절하지도 않는 적절한 도전을 찾아보세요.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취미를 시작하거나, 업무에서 조금 더 도전적인 과제를 맡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3. 관계에 투자하기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가족, 친구, 동료들과의 관계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세요. 단순히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세요.

결론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입니다. 언젠가 도달해야 할 곳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죠.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행복할 조건들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고 감사할 여유를 갖지 못했을 뿐일 수도 있어요.

오늘부터라도 작은 변화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조금씩 성장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보세요. 행복은 그런 일상의 작은 선택들 속에 숨어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