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와 진정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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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주의에 대한 편견

여러분은 ‘쾌락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술에 취해 흥청망청 놀아나는 모습이나, 육체적 욕망에만 매몰된 퇴폐적인 삶을 연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추구했던 진정한 쾌락주의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왜 쾌락주의는 마치 숨겨야 할 부끄러운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을까요?

지배층의 이중적 기준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권력자들의 이중적 기준이 숨어 있습니다. 지배세력들은 자신들만의 쾌락을 독점하려 하면서도, 일반 대중이 동일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장정일이나 마광수를 감옥에 보낸 검사와 판사들이 뒤로는 룸살롱에서 온갖 음란한 행위를 일삼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은 쾌락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쾌락을 둘러싼 권력 구조와 사회적 통제 메커니즘이 진짜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에피쿠로스가 정의한 진정한 쾌락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단순히 감각적 즐거움으로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쾌락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 자유이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쾌락과는 상당히 다른 개념입니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삶을 즐겁게 하는 것은 계속해서 술을 마시며 흥청거리거나 욕구를 무분별하게 만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풍성한 식탁을 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절제를 통한 진정한 자유

에피쿠로스는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쾌락은 모든 선택과 기피의 동기를 발견하고 공허한 추측들을 몰아내면서 멀쩡한 정신으로 헤아리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인 예로 살펴보겠습니다. 술을 마시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지만, 과도하게 마시면 다음 날 숙취로 고통받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때의 술은 진정한 쾌락일까요, 아니면 결국 불쾌함을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마찬가지로 맛있다고 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면, 그 순간의 미각적 즐거움은 곧 소화불량과 불편함으로 바뀝니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은 바로 이러한 몸의 고통과 마음의 혼란에서 벗어나는 자유였습니다.

정원학파: 평등한 공동체의 실험

에피쿠로스 학파가 ‘정원학파’로 불리는 이유는 아테네 근교에 정원을 만들어 공동체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공동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계급과 성별을 넘나든 평등한 공간

정원학파의 공동체에는 노예와 창녀까지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뜻이 맞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행복을 추구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마치 대안적 지식 공동체를 연상시킵니다.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함께 배우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여행을 함께 하는 그런 자유로운 공동체 말입니다.

지배층이 두려워한 진정한 이유

권위주의적 지배자들에게 이런 자유로운 공동체는 극도로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남녀, 세대, 지역, 계급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어우러지는 공간은 그들의 ‘갈라치기’ 전략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지배층은 사람들을 분열시켜 통제하려 하지만,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그러한 분열을 거부하고 인간의 본질적 평등을 실현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본 에피쿠로스 철학

쾌락주의자는 금욕주의자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진정한 쾌락주의자는 금욕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아타락시아(마음의 평온)’에 이르기 위해서는 절제와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무분별한 욕망의 추구는 결국 더 큰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진정한 자유는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지혜롭게 다스리는 데서 나옵니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로서의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자는 궁극적으로 진정한 자유주의자입니다.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유하는 것, 사회적 편견과 지배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목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갈라치기 전략에 맞서는 지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갈라치기 전략이 존재합니다. 세대갈등, 지역갈등, 성별갈등 등으로 사람들을 분열시키려는 시도들 말입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학파가 보여준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동체의 모델은 이러한 분열을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의 추구

쾌락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몸과 마음의 자유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에피쿠로스가 2300여 년 전에 제시했던 삶의 지혜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추구하는 쾌락은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속박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이러한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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