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쓰기를 문체와 사고의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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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글을 쓸 때 어떤 고민을 하시나요? 아마 대부분 ‘무엇을 말할까’‘어떻게 표현할까’ 사이에서 고민하실 겁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이자 작가인 폴 그레이엄이 던진 놀라운 통찰이 있습니다. 바로 좋은 문체와 올바른 사고가 분리된 두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글쓰기의 두 얼굴: 소리와 의미

좋은 글은 두 가지 차원에서 평가됩니다.

첫째는 문장의 자연스러운 흐름, 즉 읽기 좋고 듣기 좋은 글인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디어의 정확성과 깊이, 즉 올바른 결론을 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이 둘은 자동차의 속도와 색깔처럼 전혀 무관해 보입니다. 하지만 폴 그레이엄은 30년간의 글쓰기 경험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문장을 더 듣기 좋게 다듬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도 함께 정제된다는 것입니다.

상자 흔들기의 법칙

그레이엄은 자신의 첫 번째 책 편집 과정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페이지 레이아웃 때문에 문장을 한 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는데, 이런 임의적인 제약이 오히려 글의 질을 향상시켰습니다.

이는 마치 상자 속 물건들을 흔들면 더 빽빽하게 정렬되는 원리와 같습니다.

무작위적인 흔들림이지만, 중력이라는 일정한 법칙 하에서 물건들은 반드시 더 나은 배치를 찾아냅니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장을 다듬는 제약 속에서 아이디어는 더 명확하고 정확한 형태로 정리됩니다.

편집자들의 증언

실제로 많은 베테랑 편집자들이 이런 경험을 합니다. 원고의 분량을 10% 줄이라는 요청을 받으면, 처음엔 불가능해 보이지만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더 강력하고 명확한 글이 나옵니다.

불필요한 수식어를 제거하고, 중복된 설명을 정리하며, 핵심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글의 본질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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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이 만드는 사고의 구조

좋은 글은 특별한 리듬감을 가집니다. 음악처럼 규칙적인 박자는 아니지만, 생각의 구조에 맞춘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습니다.

짧은 문장은 단순하고 명확한 아이디어를, 길고 복잡한 문장은 미묘하고 다층적인 사고를 표현합니다.

이런 리듬감은 단순히 미적 장치가 아닙니다. 사고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구조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나무의 가지처럼 퍼져나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글은 이를 선형적인 문장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리듬은 복잡한 사고 구조를 독자가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읽기 쉬운 글이 만드는 선순환

문장이 자연스럽게 흐르면 읽기 부담이 줄어듭니다. 이는 독자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자신의 글을 가장 많이 읽는 첫 번째 독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레이엄은 에세이를 쓸 때 읽는 시간이 쓰는 시간보다 훨씬 많다고 말합니다. 어떤 부분은 50번, 100번도 다시 읽으면서 “뭔가 걸리는 부분이 없나? 어색한 느낌이 드는 곳은 없나?”를 체크합니다.

이때 글이 읽기 쉬울수록 문제점을 발견하기 쉬워집니다.

블로거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경험

많은 성공한 블로거들이 이런 원리를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고를 작성한 후 소리 내어 읽어보는 습관을 가진 작가들이 많은데, 이는 문장의 리듬감을 확인하는 동시에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실제로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은 대개 내용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적 일관성의 힘: 진실과 아름다움의 만남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말 잘하는 거짓말쟁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제로 아름답고 유창한 문장으로 완전히 거짓된 내용을 쓰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레이엄은 이런 경우에도 내적 일관성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거짓말을 쓰려면 그 거짓을 거의 믿는 수준까지 몰입해야 합니다.

결국 완벽하게 정돈된 사고 과정을 제시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다만 그것이 현실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따라서 아름다운 글이 반드시 참된 것은 아니지만, 내적으로 일관성이 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정직하다면, 내적 일관성과 진실성은 결국 하나로 수렴됩니다.

로프와 막대기: 문체와 사고의 결합 방식

그레이엄은 문체와 사고의 관계를 로프(rope)에 비유합니다. 막대기(rod)처럼 딱딱하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닥이 서로 얽혀 있는 유연한 구조라는 것입니다.

로프의 한쪽 끝을 당기면 다른 쪽도 자연스럽게 따라 움직이듯, 표현을 다듬으면 생각도 함께 다듬어집니다.

이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 활동에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디자이너가 시각적 요소를 조정하면서 메시지의 명확성을 높이고, 음악가가 선율을 다듬으면서 감정의 전달력을 강화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한계와 예외: 언제 이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원리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글쓰기에서만 문체와 사고의 연결고리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이미 완성된 실험 결과를 설명하거나, 다른 사람의 연구를 정리하는 글에서는 이런 상관관계가 약해집니다. 교과서나 기술 매뉴얼 같은 경우, 아이디어는 글 밖의 다른 곳(실험, 제품, 시스템 등)에 주로 존재하기 때문에 글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가 됩니다.

글쓰기를 위한 구체적 제안

1. 소리 내어 읽기 습관

매일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을 발견하면, 그 부분의 논리적 구조도 함께 점검해보세요.

2. 제약을 활용한 글쓰기 연습

의도적으로 글자 수나 문장 수 제한을 두고 글을 써보세요. 이런 제약이 오히려 핵심 메시지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3. 리듬감 있는 문장 구성

복잡한 아이디어는 긴 문장으로, 단순한 포인트는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문장의 길이 자체가 내용의 성격을 반영하도록 하세요.

글쓰기는 사고하기다

폴 그레이엄의 통찰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법”을 넘어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 자체를 발전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음에 글을 쓸 때, 단순히 “어떻게 표현할까”만 고민하지 마세요. “이 문장이 자연스럽게 들리는가?”를 동시에 질문해보세요. 그 과정에서 여러분의 아이디어도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결국 좋은 글쓰기란 표현과 내용이 함께 정제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문체와 사고, 소리와 의미가 하나의 로프처럼 얽혀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글쓰기의 비밀입니다.

여러분의 글쓰기 경험은 어떠신가요? 문체를 다듬으면서 아이디어가 함께 발전했던 경험이 있으시다면, 그것이 바로 이 원리가 작동했던 순간일 것입니다.

참고 자료: paulgraham, “Good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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